3개월간 매주 1회 RP 매입…자금 신청액 전액 공급
과거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도 없던 조치
"경제충격, 금융위기 때보다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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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
한국은행이 한국판 양적완화 카드를 꺼냈다. 3개월간 금융회사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한은은 2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4월부터 6월까지 일정 금리수준 아래서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 없이 공급하는 주 단위 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고 실물경제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는 게 한은 설명이다. 100조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되는 정부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에 충분한 자금이 공급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도 있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기간 후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경과 기간에 따라 이자를 붙여 다시 사는 채권이다. 한은이 공개시장운영으로 RP를 매입하면 시장에 유동성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
한은의 무제한 유동성 공급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하지 않았던 유례 없는 조치다. 매입대상도 국채, 통화안정증권, 산업은행의 산업금융채권, 수출입은행의 수출입금융채권, 은행채 등에서 8개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채권으로 늘렸다. RP 입찰 참여 금융기관에 증권사 11곳도 추가했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QE)는 금리가 제로(0)로 떨어진 후 더는 수단이 없을 때 돈을 공급하는 방식이라 한은의 지원제도와 성격이 조금은 다르다"면서도 "시장 수요에 맞춰 유동성을 전액을 공급하기에 양적완화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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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왼쪽 두번째)가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방안 실시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
한은이 유례 없는 조치를 내놓은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충격이 금융위기 이상으로 크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윤 부총재는 현재 경제충격 크기를 두고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해선 모두가 그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라며 "(1997년) 외환위기 땐 위기가 아시아 일부에 한정됐고 한국에 구조적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그 때 충격보다 더 클지는 지나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1차 대책과 함께 100조원의 긴급 구호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은 또한 현재의 경제충격에 대비해 경제위기 때 이상의 특단을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한은은 앞으로 3개월 간 매주 화요일에 91일 만기의 RP를 일정 금리 수준에서 매입할 계획이다. 매입 한도는 사전에 정해두지 않고 시장 수요에 맞춰 금융기관 신청액 전액을 공급한다. RP 거래 대상이 되는 적격증권만 제시하면 매입 요청한 금액을 모두 사들이겠다는 의미다. 입찰금리는 기준금리 연 0.75%에 0.1%포인트를 가산한 0.85%를 상한선으로 잡았다.
한은은 7월 이후에도 시장 상황과 입찰 결과 등을 고려해 조치 연장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조치로 실제 유동성이 어느 정도 추가 공급될 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윤 부총재는 "이번에 (RP 대상증권으로) 추가된 대상증권은 발행 규모로 봤을 때 약 70조원으로 추정된다"면서도 "정확히 얼마나 매입 요청이 들어올지는 추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기획재정부와 한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국내은행 외화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을 기존 80%에서 70%로 5월말까지 한시 조정하기로 했다. 국내은행이 외화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조치다. 또 4월부터 6월말까지 외화부채에 대한 금융회사 외화건전성 부담금은 면제하기로 했다.
[에너지경제신문=송두리 기자, ds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