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시장의 새로운 복병 ‘원유 재고’…"마이너스 유가 부추긴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4.02 14:11

▲미 셰일 원유시추기(사진=AP/연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간에 ‘유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직격탄을 맞고 있는 가운데 유가회복을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움직임이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도 원유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글로벌 원유 저장용량이 한계에 달할 것이란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 원유시장에서는 ‘마이너스(-) 유가’에 진입한 모습들이 포착된 만큼 유가 하락을 막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트럼프, "사우디·러시아, 곧 유가전쟁 끝내는 데 합의할 것"


▲WTI 가격 추이(사진=네이버금융)


국제유가는 4월 첫 거래일인 1일(현지시간) 다시 약세를 보였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0.8%(0.17달러) 내린 20.3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4거래일 만에 반짝 반등했다가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WTI는 이날 장중 19.90달러까지 떨어지며 20달러 선을 내주기도 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6월물 브렌트유도 오후 3시3분 현재 5.58%(1.47달러) 급락한 24.8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 간의 가격 인하 및 증산 등을 통한 유가 전쟁은 원유시장의 꾸준한 악재로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타스 통신은 이날 자체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석유회사들이 4월 1일부터 증산에 들어갈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사우디에 맞서 증산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이는 원유시장 안정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김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통해 국제 원유시장 상황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고 양국이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에도 최근 러시아와 사우디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이들 두 나라가 "수일 내로" 유가 전쟁을 끝내는 데 합의하고 원유 생산 감축과 가격 회복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석유산업이 파괴됐다"며 "이는 러시아에 매우 나쁘고, 사우디에 매우 나쁘다. 양측에 매우 나쁘다. 나는 그들이 합의에 이를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같은 소식에 2일 한국시간 오후 12시 50분 기준 WTI와 브렌트유는 각각 전일대비 배럴당 0.95(4.68%)달러, 1.43(5.78%)달러 오른 21.28달러, 26.17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역시 사우디와 러시아에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촉구했다. 에너지부의 셰일린 하인즈 대변인은 "세계적으로 전례 없이 수요가 줄어든 이 시기에 생산을 늘리는 것은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며, 이는 우리가 파트너들에게 기대하는 신중한 계획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미국은 세계 원유시장의 변동성을 다루기 위해 세계 최대 생산업체들과 함께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석유업체 대표들을 금요일(3일)에 만날 예정이다. 개별 석유업체 대표들을 금요일이나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 만날 예정"이라며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해 많은 회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3일 백악관에서 엑손모빌 대런 우즈, 셰브런 마이크 워스, 옥시덴탈 비키 홀럽 최고경영자(CEO) 등을 만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시추와 수압파쇄 등 혁신적인 기술을 자랑하는 셰일업계는 채굴 원가가 높기 때문에 유가 폭락 국면에서는 버티기 어려운 구조다. 그러나 미 석유업계는 코로나발 수요침체로 파산위기에 내몰리면서 연방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 정부 역시 셰일업계를 구출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 글로벌 원유 저장 공간 점점 빠듯…‘떠돌이 원유’ 늘어날 것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원유시장을 살리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유시장에는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코로나19발 수요침체와 산유국들의 증산으로 인한 원유시장의 이중고가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원유 저장용량이 머지않아 곧 한계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1일(현지시간) 국제유가가 하락한 것은 미국의 원유 재고가 증가했다는 소식이 악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주 원유 재고가 1380만배럴 늘어난 4억6902만배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6년 이후 최고 증가 폭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더욱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컨설팅업체 유라시아 그룹은 리서치노트를 공개하면서 "글로벌 원유 재고는 향후 몇 주 이내 최대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산유국들이 증산정책을 철회한다 하더라도 글로벌 봉쇄조치로 인한 잉여 공급량의 규모가 거대해 글로벌 저장용량이 올해 중반쯤 한계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라시아 그룹은 또 "항구들과 정유업체들은 이미 유조선들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는 유가하방에 추가 압력을 넣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WSJ 역시 사우디에서 유조선들이 원유를 가득 싣고 출발하지만 정작 사겠다는 곳이 없어 해상을 떠도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의 한 정부 관리는 "구매자가 없어 유조선들이 도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사우디 항구에서) 원유를 싣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문 연구기관 JBC에너지는 "이달 하루 평균 600만 배럴의 원유가 말 그대로 갈 곳이 없는 떠돌이 원유가 될 것이고 5월에는 그 양이 하루 평균 700만 배럴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 갈 곳 없는 원유, 마이너스 유가 부추긴다


▲해상유전(사진=AP/연합)


떠돌이 원유 현상이 심화될 수록 생산업체들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돈을 얹어주면서까지 원유를 가져가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마이너스 유가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중순 아스팔트 제조용 고밀도 유종인 ‘와이오밍 아스팔트 사우어’는 배럴당 마이너스 19센트로 가격이 제시됐다.

유가가 한 자리수로 거래되고 있는 상황도 펼쳐지고 있다. 최근 CNBC에 따르면 서부캐나다원유(WCS) 가격은 배럴당 4.18달러 수준까지 내려와 맥주 한 잔 값보다 더 싸진 상황에 이르게 됐다. WCS는 WTI에 대비 품질이 낮아 통상 배럴당 8달러에서 15달러 수준으로 거래되지만 4달러대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골드만삭스는 "유전 폐쇄 비용을 고려하면 생산자들은 원유를 처리해주는 이에게 돈을 지불하려고 할 것"이라며 "땅 위에 있는 원유는 마이너스 가격이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고 미국 CNBC 방송은 전했다.

이와 관련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유전 폐쇄 비용을 고려하면 생산업체들은 원유를 처분하려는 누군가에게 돈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이어 "이는 특히 내륙산 원유는 마이너스 가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가격측면에서 WTI가 브렌트유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브렌트유는 영국 북해 해상에서 생산되는 반면 WTI는 생산지가 육지에 둘러싸여있어 접근가능한 저장시설과의 거리가 500마일(약 800km)에 달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보고서에서 "매일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원유 중 500만 배럴가량은 생산 비용도 상쇄하지 못하는 수준의 가격이 매겨질 것"이라며 "유가 붕괴는 다른 에너지 부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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