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천만 배럴 감산' 제안에...산유국 "미국도 감산 동참하라" 압박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4.06 07:48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저유가로 고전하고 있는 셰일업계를 살리기 위해 1000만 배럴 규모의 감산을 제안한 가운데 산유국들이 미국도 감산 합의에 동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메르 알갑반 이라크 석유장관은 산유국 사이에서 감산 합의가 새롭게 성사된다면 미국 등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고 5일(현지시간) 촉구했다.
 
알갑반 장관은 이날 "새 감산 합의는 OPEC+(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밖에 있는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같은 주요 산유국도 지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알갑반 장관이 OPEC+ 소속 일부 산유국 석유장관(또는 에너지장관)과 전화 통화한 뒤 새로운 감산 합의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고 전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수하일 마즈루에이 에너지부 장관도 5일 "OPEC+뿐 아니라 모든 산유국의 조화롭고 일치된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감산 합의가 성사된다면 모든 산유국이 원유 시장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신속하게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산유국들이 미국을 향해 감산에 동참하라고 촉구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의 유가전쟁이 시발점이 됐다.

OPEC+는 코로나19 위기로 원유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6일 모여 감산량을 늘리는 안을 놓고 논의했지만 합의가 결렬됐다.

이에 사우디는 감산 시한이 끝난 4월1일부터 2월 산유량(일일 970만 배럴)보다 27% 많은 일일 1230만 배럴을 생산한다고 선언했고 이를 실행했다.
   
사우디의 대규모 증산으로 국제 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이하로 폭락했다.

채굴 단가가 높은 셰일오일 산업을 보호하려면 유가를 높여야 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와 러시아의 불화에 개입, 하루 1000만∼1500만 배럴 규모의 감산을 제안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러시아와 잇따라 전화통화를 하며 중재에 나섰다. 결국 OPEC+는 사우디의 제안으로 당초 오는 6일 긴급 화상회의를 하려 했지만 9일로 미뤄졌다.
  
감산 합의 결렬을 두고 사우디와 러시아는 서로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면서 공방을 벌였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제안을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나 사우디의 입장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산유국들이 본격적으로 미국을 향해 감산에 동참하라고 요구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그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유가를 끌어올려 셰일업계를 살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셰일오일은 채굴 단가가 배럴당 50달러대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가 두 달째 접어들면서 미국 내 석유 수요가 급감했고, 산유국 간에 유가 전쟁까지 맞물리자 셰일오일 업계에선 벌써 경영진 교체와 파산, 구조조정 소식이 들려왔다. 

그간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 덕분에 미국은 감산하지도 않으면서 셰일오일을 증산해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다시 부메랑처럼 트럼프 대통령에 돌아온 셈이다.

친미 산유국들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초대형 위기를 맞이해 미국이 감산만 요구하지 말고 직접 '솔선수범'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무리하게 감산 물량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일일 1천만 배럴은 러시아와 사우디 각자의 하루 산유량과 맞먹는 만큼 최대 산유국 미국도 감산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양이라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감산에 동참하기보다는 OPEC+를 압박하는 방법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저유가로 미국의 에너지 업계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수입 원유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 결렬 책임을 놓고 불화를 빚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갈등이 미국의 반사 이익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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