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가치주 20년 주기...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성장이 필요한 기업은 배당보다 M&A 주력해야"
"무차입-현금보유량 많은 기업들 주주행동주의 타깃"
"지배구조 후진성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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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가 창간 31주년을 맞은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 세상에 완벽한 투자 전략은 없습니다. 하지만 본인에게 딱 맞는 전략은 한 가지 있습니다. 본인의 자금 성격, 본인의 성향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꾸준한 스터디로 찾은 가치주들 역시 조만간 빛을 볼 것입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올해 3월은 그야말로 '악몽의 달'로 불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들의 투매가 계속되면서 3월 19일 코스피 지수는 1457.64까지 폭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 7월 23일(1496.49)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였다. 증시가 바닥을 모르고 계속해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면서 여의도 증권가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그러나 2개월이 흐른 5월 현재, 코스피는 빠른 속도로 반등해 어느덧 2000선 돌파를 눈앞에 뒀다. 코스피가 2000선까지 반등할 수 있었던 건 단연 ‘개미’의 힘이 컸다. 개인투자자들은 외국인의 매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삼성전자 등 우량주 위주로 매수세를 강화하면서 국내 증시에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여의도 증권가가 코로나19로 일희일비할 때, 누구보다 침착했던 이가 있었다. 바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다. 이 대표는 비로소 그가 굳건하게 믿던 ‘가치주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직감한 듯 했다. 가치투자 1세대로 1997년 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금융시장의 산전수전을 겪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경험칙이었다. 창간 31주년을 맞은 에너지경제신문은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본사에서 이채원 대표를 만나 국내 증시의 현 주소를 진단해봤다. [대담=에너지경제신문 송재석 금융부장/ 정리=나유라 기자]
다음은 이채원 대표와의 일문일답.
-어느덧 올해 상반기도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어떻게 보냈는지.
▲ 굉장히 힘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안전자산 선호 현상 때문에 펀드를 운용하는데 있어서 피해가 훨씬 더 컸다. 그러나 3월 이후 지수가 V자로 반등해서 회복은 빨랐다. 어떤 종목은 주가가 반토막 났다가 세 배 급등한 것도 있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악성 매물이 다 정리되면서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한국밸류자산운용이 발간한 2020 애뉴얼리포트(Annual Report)를 보면 2019년은 가치투자를 하는 투자자 입장에서 역사상 가장 힘든 한 해였다고 회고했는데.
▲ IMF나 리먼 브라더스 때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 함께 무너지면서 절대 수익률 자체가 무너졌다. 그러나 2019년은 달랐다. 주력 펀드 수익률이 벤치마크 수익률을 하회했다. 가치투자 입장에서 보면 2019년은 3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 1999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1999년은 신기술이나 통신주가 각광받으면서 가치주들이 별 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이로 인해 당시 매니저들은 진짜 죽을 정도로 고생했다. 1999년, 2019년에 이어 20년 뒤에도 어떠한 위기가 올 것이다.
- 가치주 사이클이 20년 주기라는 것인가.
▲ 그렇다. 20년 주기다.
- 대표님 말씀대로 가치주 펀드가 최근 성과가 다소 좋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제 가치투자를 보는 시각을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무조건 내재가치보다 저렴하다고 들어갈 때 그게 현재 시장에도 어울리는 전략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어떻게 보는가.
▲ 원칙은 불변인 것 같다. 가치의 3대 요소는 수익성, 안정성, 성장성이다. 저렴한 주식이 좋다는 것은 성장주 투자하는 분들도 동의하는거다. 미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이 고평가 돼있는데 투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투자자들은 아마존 주식이 미래가치 대비 저평가됐다고 보고 매수하는 거다. 그런데 그게 누가 맞고 틀릴지는 10년, 20년이 지나봐야 아는거다. 우리같은 가치주 투자자들은 멀티플이나 밸류에이션이 높은 종목에 투자하는 것을 지양하는거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 성장가치냐 자산가치냐 수익가치냐에 따라 종목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뀔 수 있다. 국내 증시의 패러다임이 현재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바뀔 것이라는 건 지금도 느끼고 있다. 성장주 상승세는 서서히 둔화될 것으로 본다. 어떤 종목이든 영원히 오를 수 없다. 기업이 때로는 쉬어갈 수도 있고 역성장할 수도 있다. 기업이 성장하더라도 주가는 떨어질 수 있다. 이미 현재 주가에 미래 성장성에 대한 가치가 다 반영됐다고 느낄 경우 주가는 오히려 하락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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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가 창간 31주년을 맞은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 지난해 5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헤지펀드를 내놨다. 가치투자 하우스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헤지펀드를 내놓은 것을 두고 다소 의외라고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헤지펀드가 다른 헤지펀드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 우리의 헤지펀드는 ‘가치투자’라는 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우리 하우스가 국내 주식에만 한정돼 있다보니 매니저들도 기업을 보는 역량을 키우는데 다소 한계가 있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헤지펀드를 통해 가치투자에 대한 스펙트럼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우리는 펀더멘털 롱숏을 지향한다. 바이오를 롱하면서 철강주를 숏하는 다른 하우스와는 다르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손실을 최소화하면서도 지수를 웃도는 성과를 낼 수 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내놓은 세 개의 사모펀드 가운데 주주 행동주의를 가미한 사파이어밸류업 사모펀드는 운용 초기임에도 나쁘지 않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 주주행동주의와 사모펀드의 만남은 다소 새롭다. 실제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2년 전부터 세방, 넥센, KISCO홀딩스 등 주요 기업에 주주서한을 전달하지 않았나. 주주가치 제고, 자사주 활용 방안 등 주주가치 증대를 위해 다방면으로 수탁자 책임을 이행한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상장사들 역시 배당에 대해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코로나19로 경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배당을 확대하기보다는 유보금(현금)을 쌓아두는 것이 절실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배당을 무조건 하는 것이 꼭 주주가치제고와 직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상장사에 배당을 하지 말라고 주주서한을 보낸 경우도 있다. 성장이 필요한 기업들은 보유한 현금을 배당보다는 설비투자와 인수합병(M&A) 등에 활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우리가 주목하는 기업은 차입금이 없으면서도 현금보유량은 많은데 배당도, 투자도 하지 않는 기업이다. 현금이 8000억원 있으면서도 배당도 안하고 투자도 하지 않고 정기예금에만 투자하는 것은 자본효율 측면에서 부적절하다. 당장 자사주를 매입, 소각해서 주가를 끌어올려야 한다. 미국에서는 보유한 현금을 자사주 소각과 매입 등에 투자해 주가를 3배 이상 끌어올린 기업도 있다. 주주들도 이를 염두하고 상장사를 향해 자본 활용에 대한 계획 등을 요구할 수 있다.
- 배당주 하면 대표적인 업종이 바로 은행주다. 국내 은행주 배당수익률은 작년 말 기준으로 4~5%대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은 국내에서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현금보유량도 많은 편이다. 그럼 은행주도 굉장히 매력적인 가치주인가.
▲ 정량적으로는 아주 매력적인 가치주다. 그런데 정성적인 부분, 즉 기업의 지배구조 관점에서 볼 때는 좋지는 않다. 워런 버핏이 꼽은 최고의 지배구조는 대주주가 지분을 충분히 갖고 있고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본인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대주주는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해 계속해서 감시하는 역할만 한다. CEO가 능력이 없으면 즉각 해고하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국내 은행을 보자. 예를 들어 KB금융지주. 외국인 비중만 높고 주인은 없는 회사다. 또 은행업이라는게 라이선스 사업이다보니 정부의 관여를 안 받을 수가 없다. 만일 뚜렷하게 주인이 있는 개인기업이었으면 자사주 매입, 소각, 배당 확대 등 각종 수단을 다 동원했을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바로 지배구조의 후진성에서 출발한다. 금융당국이 배당보다는 중소기업 지원 등을 권고하고 있는 점도 주가에 부담이다. 은행주가 언젠가는 제값을 받을 날이 오겠지만 현재 주가 수준은 내수와 부동산 경기에 대한 우려 등 모든 것을 다 반영하고 있다.
- 가치투자하면 또 워런 버핏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워런 버핏도 코로나19로 상당한 주식들이 평가손실을 입으면서 3개월간 무려 60조원을 잃었다고 한다. 영원히 매도하지 않을 주식만 산다던 워런 버핏이 미국의 주요 4대 항공주를 매입한 지 불과 3, 4년 만에 대거 팔아치우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결국 전통적인 가치투자의 정의도 변하고 있는건가.
▲ 그렇지 않다. 코로나19는 특수한 상황인 것 같다. 한가지 예를 들면 우리는 코로나19가 오히려 기회라고 보고 코로나19로 가장 타격이 컸던 업종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업들 가운데 절대로 망하지 않을 기업, 차입금이 없고 현금보유량이 많은 기업들을 봐야 한다. 기업들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19는 누가 이 사태를 버티느냐의 싸움이기 때문에 무차입과 현금보유량이 중요하다. 숙박, 소비재, 의류, 여행업종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도 브랜드 가치나 최소한의 사업 경쟁력은 있어야 한다. 이런 기업들은 코로나19가 해결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 버핏도 이러한 관점에서 항공주를 매입했을 것이다. 버핏이 올해 항공주를 팔아치운 것은 코로나19가 예상과 달리 장기화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코로나19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만일 델타항공이 부채가 적고 현금보유량이 많았다면 버핏 역시 가치투자 관점에서 주식을 더 매입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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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가 창간 31주년을 맞은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 대한민국 증시에 한때 신라젠을 중심으로 바이오주 열풍이 불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바이오주가 더욱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가치투자 관점에서 보면 바이오주 역시 현재의 주가순자산비율(PBR) 관점에서 보면 고평가 영역에 들어갈 것 같은데.
▲ 바이오주에 대한 전망은 굉장히 밝다고 생각한다. 제약주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업종이었다. 투자자들이 염두해야할 것은 2017년과 같은 바이오주 열풍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바이오업종에 속한 모든 기업들이 급등하는 국면은 지나간 것 같다. 앞으로는 실적이나 임상시험 등 성과에 따라 종목별로 주가가 차별화되는 장세가 나타날거다. 그러한 종목을 미리 선별할 수 있는 안목만 있다면 바이오주 역시 충분히 접근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 올해 3월 개인투자자들의 ‘동학개미운동’도 화제를 모았다. 3월 급락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은 동학개미운동을 통해 삼성전자를 대거 매수했다. 가치투자 관점에서 삼성전자는 어떻게 보는가.
▲ 삼성전자는 가격에 따라 가치주일 때도 있고 성장주일 때도 있다. 주가가 저렴할 때는 가치주이고 가치보다 비싸지면 성장주가 되는거다. 현재 삼성전자는 수익성, 안정성, 성장성을 고루 갖춘 훌륭한 가치주다.
- 마지막으로 동학개미운동의 승리를 꿈꾸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 달라.
▲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우리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가장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좋은 것들을 산다. 그런데 일부 투자자들을 보면 어떤 이벤트에 편승하거나 누구의 말만 듣고 혹 해서 대규모의 자금을 넣는 사례가 많다. 투자자들이 기억해야할 것은 이 세상에 완벽한 투자전략은 없지만 본인에게 딱 맞는 투자전략은 하나쯤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운용하는 자금의 성격이 무엇인지. 여윳돈인지, 아니면 절대로 잃어서는 안되는 자금인지. 본인의 투자 성향은 무엇인지를 꼭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들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 기술적 분석에 관한 책, 가치투자에 관한 책들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전략들을 가동한다면 투자에 있어서도 실패할 확률이 낮을거다.
- 대표님이 가치투자의 길을 택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인가.
▲ 그렇다. 저는 워낙 보수적이고 소박한 투자를 지향한다. 돈 잃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개인적으로 못 벌어도 좋으니 잃지는 말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가치투자가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니다.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가치투자자들은 진짜 잘 참는다. 매도하지 않고 몇 십 년 동안 들고 기다린다. 이러한 전략들은 결코 모두에게 맞지 않는다. 성공적인 투자의 핵심은 꾸준한 공부라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1964년 서울 ▲ 1988년 동원증권 입사, 국제부 동경사무소, 국제부 역외펀드운용 ▲ 1996년 동원투자신탁운용. 주식형 펀드 운용 ▲ 2000년 동원증권 주식운용팀장 ▲2004년 동원증권 자산운용실 상무 ▲2005년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 ▲ 2006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 2017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 및 CIO ▲ 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