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원격근무 일상화된 기업들…원유시장의 '새로운' 복병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6.01 14:35

▲(사진=에너지경제신문)


국제유가가 지난 한 달 동안 약 90% 가까이 급등하면서 1개월 기준 역대 최대의 상승폭을 기록했지만 전문가들은 글로벌 원유시장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연중 고점을 찍었던 올해 1월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대를 유지하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 등 원격근무가 일상화가 되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의 새로운 복병으로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근무를 수용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원유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급등세를 보이면서 5월 마지막 거래일을 마감했다. 특히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의 경우 지난달 약 90% 가까이 오르며 한 달 기준 역대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7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5.3%(1.78달러) 뛴 35.49 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7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0.11%(0.04달러) 오른 35.33 달러를 기록했다.

WTI는 지난 달 88% 상승했다.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 폭의 상승으로 1990년 9월 기록했던 44.6%의 기존 기록을 깼다.

국제유가는 올해 4월 코로나19 여파와 5월물 만기와 맞물려 한때 ‘마이너스’까지 추락하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였지만 이후 수요 증가와 경제 정상화 움직임 등에 힘입어 꾸준히 상승해왔다. 다만 전문가들은 유가가 역사상 최대의 낙폭을 기록한 후 소폭 반등한 것에 불과하다며 올해 1월 기록했던 65.65달러까지 도달하기에는 한참 멀었다고 지적했다. 즉, WTI 배럴당 35달러로 축하할 분위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회사인 KPMG의 레지나 메이여 글로벌 에너지부문장은 "유가가 지난 한 달 동안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WTI 가격이 배럴당 30달러 선을 돌파한 건 올해 4월과 비교했을 때 긍정적인 결과이지만 업체들이 생산활동을 재개하기엔 역부족이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시장은 현장보다 더 낙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낙관적인 시각으로 원유시장을 바라보기엔 너무 이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메이여 부문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시장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아 하방리스크는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늘어나는 원격근무, 수요에 부정적인 영향


▲지난 5월 WTI 가격 추이(사진=네이버금융)


이 가운데 원격근무가 원유시장의 새로운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시행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었지만 이러한 추세가 대유행 이후에도 지속될 경우 원유수요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번스타인은 최근 투자노트를 공개하면서 "원격근무의 도래가 원유수요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통근과 출장용 항공편의 감소는 수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각 배럴의 정제된 원유에서 45% 가량이 휘발유를 위해 사용되는 만큼 휘발유는 전체 수요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 RBC는 미국 휘발유 수요의 약 28%가 출퇴근을 위해 사용된다고 밝혔다.

국제유가가 수요와 공급의 역학관계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원격근무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많아질수록 원유 수요에 변화가 생기면서 유가는 결국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최근 들어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재택근무 확대 방침을 밝히는 등 원격근무가 글로벌 IT 업계 근무의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잡고 있는 모양새다.

앞서 소셜미디어 트위터는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직원들에게 원할 경우 영구히 재택근무를 허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위터는 또 매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9월 이전에 사무실이 문을 열지 않을 것이며 다시 문을 열 때는 "조심스럽고 계획적이며 사무실별로,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9월 이전에는 극소수의 예외를 빼고는 출장도 없고 올해 남은 기간 대면 행사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트위터는 올해 3월부터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구글은 이달 6일부터 일부 직원들이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출근 인원은 사무실 정원의 10%로 제한된다. 구글은 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 사람들은 원할 경우 올해 연말까지도 재택근무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역시 코로나19로 촉발된 분산형 업무 방식, 즉 재택근무를 중심으로 회사 운영 방식을 영구적으로 재조정하겠다고 밝히면서 10년 내에 전 직원의 50%가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으로 말했다. 페이스북의 전체 직원은 4만 5000여명에 달한다.

캐나다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쇼피파이(Shopify)도 사무실 중심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토비 루트케 쇼피파이 CEO는 내년까지 사무실을 폐쇄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이후에도 대부분의 직원이 영구적으로 원격근무를 하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 영구적 수요증발 가능성도 배제 못 해

▲마이크로소프트의 협업 솔루션 ‘팀즈’로 화상 회의를 하는 모습.


이렇듯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도입된 재택근무가 더 보편화할 것이란 관측이 많아지면서 전문가들은 원유수요가 과거 수준으로 아예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전 글로벌 원유수요는 하루 약 1억 배럴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조사업체 S&P 글로벌 플래츠의 댄 클라인 수석 기획자는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사무실을 보유한 기업들은 원격근무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며 "재택근무가 앞으로 어떻게 자리잡을지 판단한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일정 비율의 근로자들이 통근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S&P 글로벌 플래츠는 앞으로 하루 100만∼150만 배럴의 원유수요가 영구적으로 손실될 것으로 내다봤다.

클라인 수석 기획자는 여기에 줌, 스카이프,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등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직원들이 많아질 경우 항공연료 수요에 더 큰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항공측면에서 하루 150만∼200만 배럴의 원유수요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증권사 레이몬드 제임스도 비슷한 시각을 펼치고 있다. 이 회사는 "실업률이 증가하고 온라인 교육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점 역시 수요를 갉아먹는다"며 "2021년, 2022년 차량용 연료 수요가 코로나19 사태 전 수준 대비 각각 160만 배럴, 40만 배럴 감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공연료 수요의 경우 레이몬드 제임스는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200만 배럴, 80만 배럴어치 날라갈 수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원유 수요가 더 빠른 시일 내 고점을 찍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원격근무가 뉴노멀로 자리잡을 경우 피크 수요가 더 빠르게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클라인 수석 기획자는 "원유 수요가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원격근무를 통해 수요 손실이 가중될 경우 수요 침체는 더욱 가파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유례 없는 변화를 불러일으킨 만큼 앞날을 가늠하기엔 한계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미 경제매체 CNBC는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유례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산유국들이 합의한 감산 규모도 전례가 없는 수준이다"며 "사람의 행동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전망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코로나19를 계기로 대중교통 이용을 꺼려하고 저유가로 인해 개인 자가용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 유가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10개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원유 감산기간 연장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1일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빠르면 이번 주 화상회의로 열릴 OPEC+ 회의에서 애초 이번 달까지인 감산을 1∼ 3개월 정도 연장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급변하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단기적인 조치들이 나올 것이라고 관측했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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