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1단계 무역합의 서명식(사진=AP/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미국과 중국의 1단계 무역합의에서 약속한 중국의 미 에너지 수입 목표치 달성이 불가능해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중국의 에너지 수요가 줄어든 탓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이 약속을 이행하고 있지 않다면 무역합의를 파기하겠다고 경고한 만큼 미중 무역합의의 향방이 안갯속으로 빠진 셈이다. 합의가 파기되면 관세율을 올리거나 다른 제품에 대한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미 상무부의 5월 수출 통계를 분석한 결과 중국은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20억 달러에 달하는 미 에너지 제품을 구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은 올해 1월 미국과 1단계 무역합의를 타결하면서 향후 2년간 농산물 330억 달러를 포함해 미국산 재화와 서비스 총 2000억 달러 규모의 구매를 약속했다. 특히 중국은 1단계 무역합의를 통해 석유, 천연가스, 정제유, 석탄 등 미국의 에너지 제품을 올해 250억 달러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당초 지난해 12월 15일부터 부과할 예정이었던 중국산 제품 1600억 달러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또 1200억 달러 규모의 다른 중국 제품에 부과해온 15%의 관세를 7.5%로 줄이기로 했지만 25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제품에 부과해오던 25%의 관세는 그대로 유지한 상태다.
그러나 중국의 1∼5월 미 에너지 제품에 대한 실제 구매액은 목표치 달성을 위해 해당 기간동안 수입해야 할 금액의 18%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중국이 남은 기간에 수입을 늘려 약속을 이행하려면 매달 30억 달러의 미 에너지 제품을 수입해야 한다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 5월까지 누적 수입보다 더 많은 제품을 매달 구매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로 에너지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이러한 시나리오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시각이다. 특히 목표치를 수입량이 아니라 수입액을 기준으로 정하는 바람에 낮은 유가까지 고려하면 중국으로서는 더욱 곤란한 상황이 됐다.
중국의 석유 수요는 코로나19 사태 전 수준에 근접하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이같은 수요 회복세가 지속될지 의문을 품는 전문가들도 있다. 앞서 IHS마킷은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중국의 원유 수요가 코로나19 사태 전 수준의 90%까지 회복했다고 보고서에서 밝힌 바 있다.
6일 석유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지난 5월 중국의 석유 수입규모는 전월대비 20% 급증한 하루 1134만 배럴에 그쳐 새로운 기록을 세웠지만 최근들어 중국의 강렬한 활동량에 김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이어 "중국 항구에 유조선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6, 7월 매수세가 확실히 약해졌다"며 "지난 봄 중국에서 급등한 수입량을 보인 배경에는 유가가 유례없는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란 해석에 힘이 실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여름철 석유 매수세가 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특별한 사정 때문이기는 하지만 중국이 다른 부문에서는 1단계 무역합의 약속을 상당 부분 이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 에너지 업계의 불만이 크다.
실제 WSJ에 따르면 약속한 총 330억 달러의 미 농산품에서 중국은 지난 5월까지 54억 달러어치 수입했다. 농산물이 가을에 주로 수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목표치 달성 가능성이 충분하다.
연내 840억 달러를 구매하기로 한 공산품도 5월까지 195억 달러를 수입해 에너지 부문에 비하면 훨씬 양호하다.
이런 가운데 서부 텍사스의 산유지를 지역구로 둔 조디 애링턴(공화) 하원의원 등 다수의 의원이 지난달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의 미 원유 수입을 늘리기 위한 조치를 하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책임론, 홍콩보안법 등으로 미중 간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할 지는 미지수다.
실제 WSJ는 미국이 홍콩이나 대만 문제 등에 대한 이슈들에 대한 압박이나 간섭을 계속할 경우 1단계 무역 합의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중국이 미국에 조용히 발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WSJ은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단의 중국 측 대표인 류허(劉鶴) 부총리가 지난 6월 18일 상하이에서 열린 루자쭈이(陸家嘴) 금융 포럼에 보낸 서면 축사를 거론했다. 류 부총리는 축사에서 "마땅히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하고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공동으로 중미 1단계 무역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WSJ은 지난 6월 17일 하와이에서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양제츠 중국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회담도 거론했다. 당시 양 정치국원은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이행 약속을 재확인하면서도 미중 양측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WSJ은 회담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중국의 한 관리는 양 정치국원의 ‘함께 협력’ 언급에 대해 "미국은 지나친 간섭을 삼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미국이)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