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에너지전환은 산업부 주도" vs 환경부 "세부 목표치 없어 검토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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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앞으로 15년간 국가 에너지 수급 전략인 제9차 국가 전력수급 기본계획이 부실하게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6일 지적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중심이 돼 2년 단위로 마련토록 돼 있는 이 9차 계획의 초안이 최근 유관 부처 협의 단계에서 환경부로부터 퇴짜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산업부의 9차 계획 초안에 온실가스 배출량 등 구체적인 환경 목표치가 제시되지 않아 환경부가 이 초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9차 기본 계획 수립의 시한은 지난해 말까지였다. 그러나 이 시한을 무려 6개월을 이미 넘긴 상태다.
특히 이번 9차 계획 수립부터 초안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산업부가 초안을 마련, 환경부에 검토요청하는 과정에서 환경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할 수 있는 기초적인 환경목표치조차 제시하지 않아 환경부 내에서 불만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이를 두고 학계와 관련 업계는 산업 지원 부처인 산업부와 환경 규제 부처인 환경부가 9차 기본계획 수립을 놓고 엇박자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한다.
겉으론 두 부처가 현재 대립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산업부는 에너지전환 정책 주무부처로서 기본계획 수립은 산업부가 주관하는 것으로 환경부의 의견은 참고사항임을 은연 중 내비치고 있다.
반면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법 등 제도상으로 온실가스 배출 규제 등 환경부의 입장이 기본계획에 반드시 담겨야 한다며 부처 입장 관철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 학계 등에선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추진한 에너지전환 정책 추진으로 온실가스 배출 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세울 수 없는 산업부 고민의 일단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환경부는 산업부가 수립 중인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9차 계획)’에 대해 ‘국가정책과의 부합성을 검토하기엔 전반적인 내용이 부실하니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60기인 석탄발전기 30기를 폐지하기로 했으나 정작 이를 추진하는 세부 내용이 없어 온실가스나 미세먼지 감축과 같은 국가환경정책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9차 계획은 2034년까지 전반적인 전력수급의수요관리, 발전 설비계획에 등을 주요내용으로 포함하고 있다.
논란이 일자 환경부는 즉각 "9차 계획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는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른 절차를 준수하며 진행 중"이라고 반박했다. 환경부 측은 "9차 계획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가 공론화 과정 없이 부처 간 의견을 주고받는 비공개로 진행하는 사안"이라며 "산업부에서 보완서 접수 시 환경부는 검토기관, 전문가 검토 등 의견수렴을 거쳐 평가서를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예정된 수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부가 현 정부에서 수립한 제8차 전력수급계획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당초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안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작년 연말 환경영향평가법을 개정하고 9차 계획부터는 수립과정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제도화했다. 산업부의 독주를 막기 위한 제도였는데 산업부가 끝내 이에 부합하는 계획을 수립하지 않자 결국 환경부가 제동을 건 모양새다.
◇ "탈원전·탈석탄 동시 추진, 이산화탄소 줄일 방법 없어"
전문가들은 정부가 탈원전·탈석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온실가스·미세먼지 감축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를 추진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안전과 환경’, ‘깨끗한 에너지’를 주창하며 만든 에너지전환정책이 정작 환경부에 퇴짜를 맞은 황당한 상황"이라며 "이산화탄소를 줄이겠다고 목표는 제시했지만 탈원전을 하고 나니 달리 이산화탄소를 줄일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업부는 환경부 국장을 전력정책심의위원회의 위원 가운데 하나로 위촉하고 다수결로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사실상 환경부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밀어붙여왔다"며 "온실가스를 저감할 방법이 없는데도 허수의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늘리고 전력수요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억지전망에 따라 계획을 수립해놓고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우격다짐식 주장을 해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당초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산업부의 소관인데 환경부가 과도하게 개입해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전업계 실무자들은 "현 정부 들어 에너지산업에 여러 변화와 규제가 많아진 건 사실"이라며 "공기업 입장에서는 기존 산업부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환경부와 국가기후환경회의의 요구사항도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측은 월권이나 침범이 아닌 시대와 주변상황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입장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월권이나 침범이라기 보다는 선진국이 될수록 에너지 정책수립 과정에서 미세먼지 등 환경적인 부분에 대한 고려가 커지면서 발생하는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에너지업계에서는 당초 지난해 말 발표하기로 했던 9차 계획이 계속 미뤄지고 있음에도 구체성이 결여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온실가스 문제 외에도 △노후 석탄·원전 기준 부재 △재생에너지 발전원별 보급 세부 목표 누락 △신한울 3·4호기 원전 관련 내용이 빠진 점 △이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 요인, 에너지안보 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