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사주, '가족' 같은 회사 아닌 사규·매뉴얼 제대로 만들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7.13 15:49

우재원 공인노무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속 이어지는 정답 없는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에 관한 것이다. 크게 성선설과 성악설 그리고 성무선악설로 나뉜다. 동양에선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그리고 고자의 성무선악설이 있다. 이 가운데 맹자와 고자의 물의 비유를 통한 논쟁이 흥미롭다. 고자는 사람의 본성은 물과 같다고 비유하며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에는 선악의 분별이 없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을 선한 쪽으로 인도하면 선한 인간이 되고, 악한 쪽으로 밀어내면 악한 인간이 된다고 봤다. 이에 맹자는 물은 동서의 분별은 없지만, 위·아래의 분별은 있다고 말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인간의 선함과 같은 것이며, 물이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선한 것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주장이 맞는지 누구도 명쾌하게 판단할 순 없으나 인간에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선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간의 선함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또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 또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다. 어떤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향하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유대인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레위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갔다. 이와 달리 유대인들에게 이교도 하층민으로 멸시를 받는 사마리아인은 여행 중에 그를 보고서는,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고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 돌봤다. 여기에 여관 주인에게 돈까지 주며 돌봐 달라고 부탁도 했다. 예수는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 진정한 이웃이라고 하며 그와 같이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코로나 19로 인한 고통과 혼란의 시기에 결혼을 미룬 간호사, 임관하자마자 대구로 달려간 간호장교, 자가 격리 중인 이웃집 현관 손잡이에 음식을 걸어주는 사람 등 보상이 없이도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많다. 누가 강제로 시키거나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코로나 19라는 큰 재난 앞에서 스스로 선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은 중요하지만 기준 자체가 너무나 모호한 것이기에, 막연히 선함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정해줘야 할 부분이 있다.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근로계약관계가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노동 관련 분쟁 사건을 처리해 오면서 느끼는 점은 정말 악한 사람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막연하게 상대방의 선함을 기대하고 있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사용자는 항상 근로자에게 잘해줬는데 배신당했다고 분노를 표출하고 , 근로자는 회사를 위해서 충성했는데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억울해 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거나, 실제로 확실하게 운영 가능한 사규나 매뉴얼이 없는 경우다. ‘가족 같은 회사’이므로 이것저것 따지면서 법을 지키거나 규칙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용자의 마인드, 막연하게 알아서 잘 챙겨준다는 말만 믿고 급여나 승진·징계 등에 관한 회사 규정도 제대로 모른 체 일을 시작하는 근로자의 행동 등이 분쟁의 씨앗이 된다.

친구들끼리 연 회비 10만원의 계모임을 만들어도 회칙부터 정하는데, 연매출 10억 이상의 법인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제대로 된 취업규칙조차 구비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월 3만원을 납입하는 보험에 들 때에도 몇 번을 물어보고 보험약관을 확인하는 등 혜택을 검토하지만,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생활은 사규는 고사하고 근로계약서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다. 거래처 챙기고 영업하기도 바쁜데 혹은 취업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언제 그런 것 다 확인할 수 있냐 반문할 수 있고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정(情)을 강조하며 알아서 잘 챙겨준다는 가족 같은 회사보다 사전에 정해진 규칙이나 매뉴얼에 따라 운영되는 회사가 더 좋은 회사다. 시켜만 주면 뭐든지 열심히 하겠다는 구직자보다는 꼼꼼히 회사 시스템과 매뉴얼을 확인하고 질문하는 구직자가 더 현명하고 일도 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장님과 직원사이에 따뜻하고 포근한 정(情)으로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고 기대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운영 가능한 사규와 매뉴얼을 잘 만들어서 효율적인 회사 운영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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