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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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연구자, 항해자 그리고 탐험가. 그가 풀어내는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

박숭현 박사는 통상적으로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전형적인 ‘과학자’와는 다소 다른 면모를 가진 인물이다. 스스로도 ‘항해자’ 혹은 ‘탐험가’라고 불리는 것을 즐긴다. 무엇보다 그의 주 무대는 연구실이 아니다. 연구실은 그에게 있어, 해양 탐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 혹은 해양 탐사를 마친 후에 자료를 정리하기 위한 공간에 불구하다.

그의 본질은 바다 위에 있다. 공식적으로 통계가 나온 바는 없지만 어쩌면 자신이 한국에서 배를 가장 많이 타는 과학자가 아닐까, 하며 넌지시 웃음 짓는 저자의 기저에는 어린 시절 쌓아올린 바다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여기에 불을 붙이기까지 이 열망은 기억 한켠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으나, 결코 사라지지는 않은 채 숨죽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그렇게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탐사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기에는 다소 어렵고 전문적인 연구 내용만이 아니라, 탐사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선상 체험이 포함돼 있다.

발파라이소에서는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시를 떠올리며, 마드리드에서는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 그림을 생각하고, 하와이에 가서는 서든 록(Southern Rock)을 찾아 듣는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과학 탐사를 배경으로 한 탐사기이지만, 마치 한 편의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여느 과학자들의 기록과 그의 탐사기를 구별 짓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박숭현 박사는 2015년에 세계 최초로 남극권 중앙 해령의 열수 분출구와 신종 열수 생명체를 발견하며 화제를 모았는데, 이때 열수 분출구에 붙인 이름이 ‘무진’이며, 키와(kiwa)속의 신종 게는 아라온호의 이름에서 따서 ‘키와 아라오나(kiwa araona)’라고 명명했다. 이중 ‘무진’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딴 이름이다. 무진의 안개를 떠올리게 하는 열수의 형상과 탐사 과정에서 드리운 여러 가지 불확실한 감정 및 모호한 느낌을 오롯이 담은 명명이라고 했다. 문학과 철학을 사랑하는 저자이기에 가능했던 명명이다. 그의 모든 글에는 이런 특유의 감성이 녹아 있다. 보이지 않는 저편, 단단한 해저에 잠든 매력적인 이야기를 캐내어 우리 가슴에 스며드는 언어로 풀어내는 힘이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지구과학, 역사, 문화, 모험 그리고 탐사에 대한 내용 등 다양한 재료들이 혼합된 비빔밥 같은 책"이라고 표현한다. 요리사의 솜씨가 서투르다면 전부 다 제맛을 잃어버릴 만한 개성 강한 재료들이다. 그러나 박숭현이라고 하는 솜씨 좋은 요리사는 이 재료들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기분 좋은 한 끼를 선사한다. 무더운 여름에 간접 체험을 통해서 극지가 주는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 바다가 품고 있는 지구에 대한 비밀을 알고자 하는 사람, 언제고 극지 혹은 바다로 직접 나아갈 꿈을 꾸는 사람, 이 모든 이에게 저마다 필요한 맛을 느끼게 해줄만한 책이다.

저자는 "땅만 바라봐서는 지구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강조한다. 말 그대로 지구의 순환은 태양과 우주, 생물체와 지구 내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서 이루어지는 ‘전지구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바다 또한 그 거대한 순환의 한 축을 이룬다. 바람과 지구의 자전 그리고 대륙의 분포 등 지형적 요소가 조합돼 표층 해류의 움직임을 만들고, 해수의 순환은 지구의 기후를 결정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를 연구하는 것은 지구를 연구한다는 것이고, 나아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제목 : 남극이 부른다
저자 : 박숭현
발행처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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