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기소·보험업법 개정 논의에 이재용 부회장 리더십 발휘 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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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장기화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 격화되는 미·중 갈등속 화웨이 제재에 따른 불확실성. 미국 반도체업체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설계업체 ARM 인수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미칠 파장. 일본 총리 교체로 다시 불거진 ‘반도체 소재·장비 수입 리스크’까지.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를 둘러싼 글로벌 경영환경은 결코 순탄치 않다. 이런 경영환경속에서 대내적 상황은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 발휘를 되레 어렵게 하고 있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관련 검찰이 이 부회장을 끝내 기소한데 따른 재판이 시작되는데다 국회에서는 삼성의 지배구조에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는 보험업법 개정안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사법리스크에 입법 리스크가 겹치면서 삼성그룹의 위기를 키울 수 있다는 재계의 지적이다.
◇ 사법리스크에 입법리스크까지...발목 잡힌 이재용 부회장
1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검찰의 이재용 부회장 기소, 국회의 보험업법 개정안 추진 등으로 큰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
당장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인한 재판 절차가 내달 22일 시작된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지난 1일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관계자 11명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검찰의 자체 개혁 장치인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뒤엎은 이례적인 조치다.
지난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 부회장 측은 합병 과정이 합법적이었다고 맞서고 있어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문제는 이 부회장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국정농단 사건’ 관련 재판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3년 6개월 넘게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데 이어 검찰이 다른 내용으로 이 부회장을 기소하며 삼성그룹은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 시차를 두고 한꺼번에 두 개의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인데, (그룹 총수가) 이렇게 될 경우 사실상 회사의 경영 활동은 정지상태가 된다"고 귀띔했다.
이런 상황에 더해 국회에서 ‘공정경제 3법’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도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특히 이 중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의 통과 여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의 타 회사 주식 보유 비중에 대한 평가기준을 취득 당시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한다는 게 골자다. 현재 보험사는 총 자산의 3% 이하로만 대주주나 계열사 주식을 소유할 수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5억 816만주 중 상당수를 팔아야 한다. 삼성전자 주가 6만원 기준 31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인데, 시장에 쏟아지는 물량은 20조원 가량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생명은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삼성전자 최대주주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 부회장이 지배한 삼성물산에서 시작해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에도 큰 타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입법리스크’로 계열사 지도를 모두 바꿔야하는 큰 숙제를 떠안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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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 코로나19부터 미중전쟁까지 글로벌 시장 '요동'...삼성그룹 활로 찾기 '無'
재계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는 삼성그룹이 자칫 국내 입법·사법리스크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부터 미중 무역갈등까지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리더십 공백까지 생긴다면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걱정이 나온다.
실제 삼성그룹이 경쟁하는 글로벌 시장은 현재 큰 파도를 만나 출렁이고 있다. 당장 코로나19로 제조업 사업장을 정상 운영하기 힘들어졌다. 미국, 유럽 등 주요국에서 환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간 무역갈등으로 삼성그룹의 ‘새우등’이 터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당장 미국의 제재로 삼성전자는 15일부터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하게 됐다. 휴대폰 등 분야에서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양국간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산할 경우 수출 비중이 높은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임했다는 것도 큰 변수다. 작년 7월 한일간 갈등이 시작되며 반도체 시장에 긴장감이 높아진 상태다. 시장에서는 새로 선임된 스가 총리가 반도체 소재 뿐 아니라 장비의 수출까지 제한해 우리 정부와 날을 세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그룹의 발이 묶이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는 합종연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 엔비디아가 영국 ARM을 인수하기 위해 47조원(400억달러)을 베팅한 게 대표적이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최강자인데,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를 품에 안으며 삼성전자와 경쟁 상대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가 ARM의 설계도를 이용하고 있는데, 라이선스 비용을 올리거나 설계도 공급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한다.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이 리더십 발휘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과감한 경영행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2016년 9조 3000억원을 쏟아 하만을 인수한 이후 조 단위 인수합병(M&A)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또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굵직한 M&A가 필수라고 본다. 삼성이 올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을 위해 133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비전 2030’을 제시했지만, 단순 투자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 불확실성이 높아진 탓에 미국, 중국 등 대부분 국가가 자국 기업에 특혜를 주며 보호 장치를 가동하고 있지만 유독 삼성그룹만은 본국에서 다양한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며 "수십조원 현금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M&A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