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해생어은, 은생어해의 반작용 이치를 알면 정치가 보인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9.18 09:12

윤덕균 한양대 명예교수


직역하면 해생어은(害生於恩)은 은혜를 베풀었는데 해코지가 나오고, 은생어해(恩生於害)는 해코지가 도리어 은혜가 된다는 반작용 법칙이다. 일반인은 은혜에서 은혜가 나오는 은생어은(恩生於恩)과 해에서 해가 나오는 해생어해(害生於害)의 순작용 법칙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정치판에서는 전혀 다른 양태로 전개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08년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당시 국방부는 아동문학가 고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 민속학자 주강현의 ‘북한의 우리식 문화’, 케임브리지대 교수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교양서 23권을 군대 내 반입 차단 불온 도서로 선정했다. 그러자 금지한 도서들의 판매가 평소보다 7~10배 늘어났다. 특히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하루 주문량이 10배가량 늘었다. 국방부의 시대착오적 발상이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나오는 출판계에 역설적인 도움을 준 전형적인 은생어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키운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고 박정희 대통령이다. 1967년 7대 총선에서 박정희는 목포지역 여당 후보 육군 소장 출신 김병삼을 김대중의 대항마로 직접 낙점했다. 체신부 장관을 지낸 그는 지역 사회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선거전이 치열해지자 박정희가 직접 목포로 내려갔다. 선거법을 위반해 가면서 청중 2만 명을 모아놓고 지원 연설을 했다. 목포 선거구는 김대중과 박정희의 대결장으로 변했다. 이번에는 아예 목포에서 국무회의를 열었다. 회의 주제는 오직 ‘목포 발전’이었다. 장관들은 목포에 수많은 공장을 짓겠다는 등 경쟁적으로 개발 계획을 쏟아냈다. 인구 17만 명의 도시에서는 날마다 축제가 열리고 장밋빛 공약이 쏟아졌다. 각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정부 여당은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 어느 때부턴가 시민들은 "박 대통령이 왜 김대중을 죽이려 하느냐"며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대통령감이니 싹을 미리 잘라버리려는 수작 아니겠는가" 김대중은 목포 시민들에게 큰 인물론으로 호소했다. 선거전은 ‘지역 개발론 대 큰 인물론’으로 펼쳐졌다. 인제 보궐 선거로 6대 국회에 진출한 초선의원 김대중은 박정희 덕분에 7대 국회의원에 재선되면서 바로 대통령 후보로 인증을 받았다. 박정희의 해코지가 은혜로 바뀌는 은생어해였다.

양녕대군이 전국을 유람하던 때의 일이다. 당시 함길도의 관찰사가 매일 아침 피 묻은 몽둥이에 절을 한다는 해괴한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관찰사를 만나서 사연을 듣게 된다. 관찰사는 본인이 어렸을 때 빈궁하여 부자 집에서 머슴을 살았다. 그런데 부자는 일 년이 지나자 새경을 안 줄 요량으로 그를 도둑으로 몰아서 몽둥이로 폭행한 다음 동구 밖에 버렸다. 새벽에 정신이 들어 보니 피 묻은 몽둥이와 함께 버려져 있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어 피 묻은 몽둥이를 들고 바로 절로 들어가 학문을 닦아 과거에 급제하여 관찰사까지 되었다. 처음에는 부자가 원수같이 생각돼 원한을 갚으려고 부자를 찾았는데 이미 망하고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부자가 원수가 아니라 은인이었다. 만일 그 부자가 관찰사에게 친절하게 대해 줬다면 그는 머슴에 안주했을 텐데 몽둥이로 패 줘 각성하게 해준 은혜가 컸다. 그래서 초발심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아침마다 피 묻은 몽둥이에 정성을 들인다는 이야기였다. 얼핏 보면 피 묻은 몽둥이는 관찰사에게 해코지인 것 같았지만 은혜가 된 은생어해였다.

최근에 정치적인 혼란을 가중하는 극우와 극좌의 행동들이 있다. 극우들의 행동은 보수에게는 해생어은으로 진보에게는 은생어해로 작용한다. 마찬가지로 극좌들의 행동은 보수에게는 은생어해로 진보에게는 해생어은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진보의 가장 큰 우호 집단은 극우이고 보수의 가장 큰 우호 집단은 극좌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이 정치공학적 반작용의 법칙이다. 애국 운동도 마찬가지다. 본인들은 애국이라고 하는 것이 국가에게는 해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일본의 아베신조 전 총리가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응해서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 조치에 나섰다. 수출 규제 품목은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감광제인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고순도 불화수소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해코지를 입어야 하는 한국의 소부장 기업에는 메기 효과의 은혜가 나타나고 은혜를 입어야 하는 일본 소부장 기업에는 해코지가 나타난 형국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2013년에는 과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이후에도 계속 공물 봉납을 하는 등의 애국 행보를 보일 때마다 중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그 수혜는 한국 제품이 항상 입어 왔다. 전형적인 은생어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제품의 최우수 홍보대사로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표창받아 마땅하다.

최근 24번의 부동산 대책의 실패가 해생어은의 반작용 이치를 모르는 데서 기인한다. 모든 부동산 대책이 무주택자, 임차인들의 보호를 위해서 이뤄졌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은혜로 시작한 부동산 정책이 무주택자 임차인의 해코지로 끝나는 것은 정치공학적 반작용을 무시한 데서 비롯된다. 정치는 작용과 반작용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이다. 이를 1차원 셈본 방정식으로 풀려고 하는 아마추어 정치인들의 자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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