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사진=AP/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글로벌 금융권에서 ‘친환경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이를 촉구하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금융권에서는 화석연료에 대한 융자를 줄이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분야에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19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자금조달의 비중을 조절해 고객들이 파리기후협약(파리협약) 목표를 이행하도록 촉구하고 2050년까지 글로벌 탄소중립에 힘쓰겠다고 이달 발표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기술에 투자 비중을 늘려 고객과 함께 탄소발자국을 절감하겠다는 의미다.
WSJ는 "은행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투자자들로부터 더 많은 자본을 얻을 수 있다고 고객에게 주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계 글로벌은행 HSBC 또한 2050년까지 모든 고객들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최대 1조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이달 초 밝혔다. 은행은 또 2030년까지 자사 사업장에서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밖에도 낫웨스트 은행, 바클레이즈 등은 북극 시추와 석탄 회사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시티그룹 역시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고객들과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연초 선언하기도 했다. WSJ에 따르면 바클레이즈는 유럽에서 가장 큰 화석연료 융자은행이다.
스위스계 UBS그룹도 북극 시추와 관련 융자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은 석탄과 관련된 금융을 2030년까지 중단하고 현재 거래 중인 화석연료 업체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최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0조 달러어치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위한 실현방안을 마련하도록 촉구했다.
WSJ의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미국 6대 은행 중 시티그룹, 글도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웰스파고 등 5개 은행은 작년부터 북극지역 신규 탐사와 시추활동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댄 설리번 상원의원(공화·알래스카)을 포함한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연방정부가 은행들의 자금조달 중단을 막을 수 있는지 또는 중단과 관련해 처벌이 가능한지를 검토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로비를 벌이고 있다.
설리번 의원은 "이러한 은행들이 미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를 차별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은행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화석연료 업체들에 대한 투자가치가 떨어지는 조짐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했다.
국내 금융권도 세계적인 친환경 행보에 발맞춰 사회적 책임 강화에 나섰다. KB금융은 KB국민은행 등 모든 계열사가 업계 최초로 탈석탄 금융을 실천하겠다고 지난달 선언했다. KB금융은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신규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채권 인수에 대한 참여를 전면 중단한다.
이를 계기로 신한금융그룹과 우리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 NH농협금융그룹 등도 ESG(환경·사회·거버넌스)경영을 강조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신한은행이 환경과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적도원칙에 지난달 초 가입하기도 했다.
◇ 글로벌 금융권 친환경 지원 확대..."독으로 돌아올 수 있어"
이처럼 금융권이 앞다퉈 친환경 금융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이번 선언을 계기로 이들 금융사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손떼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셰일오일의 생산량이 과거에 비해 둔화되면서 관련 업체들도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있다. 이에 미국 은행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업계에 자금을 새로 조달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로 위축된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청정에너지 산업 육성도 거론되고 있어 금융권에서는 화석연료보다 친환경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삼겠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경기부양을 위해 8800억 달러를 공동으로 차입한 후 향후 3년간 이를 지출할 예정인데 이중 37%는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노엘 퀸 HSBC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19는 나를 포함해 업계 모두에게 (기후변화 대응 관련) 경종을 울리는 계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금융권의 금융지원이 친환경에 치우칠 경우 오히려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화석연료의 비중이 줄고 이를 재생에너지 등으로 대체되는 이른바 에너지전환이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금융권에서 이런 부분을 간과할 경우 사업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계 법무법인 필드피셔의 폴 스토클리 석유·가스 부문장은 "은행과 기타 금융업체들이 석유와 가스산업에 대한 비중을 줄이는 확실한 추세가 있다"며 "에너지전환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고 있지만 이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은행들이 단순 재생에너지 섹터만 바라보고 대출결정을 내리고 석유와 가스를 외면할 경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잃을 수 있다"며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손 떼면 대출자 뿐만 아니라 이를 진행하는 기관들도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천연가스가 화석연료에서 미래 친환경·저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을 연결시켜주는 가교로 꼽히고 있고, 에너지전환에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랜 기간 글로벌 에너지믹스에 석유, 가스가 머물면서 경제개발·인구증가가 지속되는 지역에 에너지를 계속 공급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토클리 부문장은 "금융권이 너무 쉽게 친환경 열풍에 동참하고 있는데 이런 광란 속에서 석유와 가스의 역할이 상실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석유 장비 및 서비스 협회(PESA)의 레즐리 베이어 회장은 "현재 재생에너지 기술은 세계가 필요로 하는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규모로 개발되지 않은 단계이다"며 "설령 그 단계가 왔다 해도 석유와 가스는 재생에너지 공급망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