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끊어도 내 재산’ 유류분…‘받는’ vs ‘못 받는’ vs ‘못 받을’ 사람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4.25 23:40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고령층(기사내용과 무관)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고령층(기사내용과 무관)

헌법재판소가 가족이라면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 유산(유류분·遺留分)을 상속토록 한 현행 민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헌재는 25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1112조 1∼3호에 2025년 12월 31일까지만 효력을 인정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가 그때까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이 자동 상실된다.


특정인의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 1118조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특히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1112조 4호는 효력을 '즉시 상실'하는 위헌으로 결정됐다.




현행 민법은 자녀·배우자·부모·형제자매가 상속받을 수 있는 지분(법정상속분)을 정하고 있다. 피상속인이 사망하면서 유언을 남기지 않으면 이에 따라 배분한다.


유언이 있더라도 자녀·배우자는 법정상속분 2분의 1을, 부모와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보장받는다.




이와 관련 헌재는 “가족의 역할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상속인들은 유류분을 통해 긴밀한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며 제도 자체는 정당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가족 구성원별로 상속 비율을 획일적으로 정한 부분도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위헌·헌법불합치로 결정한 조항들에는 “불합리하고 부당해 이로 인해 피상속인과 수증자가 받는 재산권의 침해가 공익보다 중대하고 심각하다"고 했다.


특히 가족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는 구성원에게 유류분 권리를 빼앗을 보완 제도를 두지 않은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아니한 것은 불합리하다"고 짚었다.


다만 “위헌결정을 선고해 효력을 상실시키면 법적 혼란이나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국회에 개정 시한을 부여했다.


그럼에도 즉시 효력을 잃게 된 민법 1112조 4호와 관련해서는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고인이 공동상속인 중 상당 기간 특별히 고인을 부양하거나 재산 형성에 기여한 사람(기여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을 유류분 배분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 민법 1118조 일부에도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헌재는 “기여상속인이 그 보답으로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일부를 증여받더라도 해당 증여 재산이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산입되므로, 기여상속인이 비기여상속인의 유류분 반환 청구에 응해 증여재산을 반환해야 하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익 기부, 가업 승계 등 목적으로 증여한 재산도 예외 없이 유류분을 산정하기 위한 '기초재산'에 포함하는 1113조 1항, 유류분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의사로 증여한 경우에는 증여분을 기초재산에 포함하는 1114조는 합헌 판단을 받았다.


고인이 생전에 공동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특별수익)은 증여 시기를 불문하고 기초재산에 넣는 1118조 일부, 유류분 반환 시 원물 반환을 원칙으로 하는 1115조도 합헌이었다.


한편, 이번 판결로 1977년 도입 뒤 한 차례 개정도 없이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된 유류분 제도는 47년 만에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원래 유류분 제도는 남성을 중심으로 재산을 쌓던 옛 관습 아래 어머니와 딸 등 남은 가족 구성원들 생존과 형평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마련됐다.


그러나 혈연으로 이어지기만 하면 아무런 예외도 없이 무조건 상속받을 수 있는 점은 계속 논란이 됐다.


자녀를 학대하거나 유기한 부모, 배우자를 때린 가정폭력범, 부모를 저버린 자식도 일정 비율 이상의 재산을 예외 없이 상속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 국회가 법을 고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2025년 12월 31일 효력을 상실한다.


현대에 이른 유류분 제도 핵심은 가족 제도 공공성을 수호한다는 공익과, 개인 소유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사익을 저울질한다.


이날 헌재 심판대에 오른 47건 청구인 중 한 공익법인은 2020년 3월 배우자와 자식 없이 숨진 이모 씨 재산을 증여받았는데, 이씨 형제들과 그 상속인이 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형제·자매 유류분이 즉시 효력을 잃었으므로 법원에서 기각 수순을 밟게 된다.


다만 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건들은 구제책이 없다. 민사소송은 형사소송과 달리 헌재의 위헌 결정 효력이 소급되지 않아 재심 사유가 되지 않는다.


부모·자식 간 유류분 청구 소송은 사건 내용과 법원 재량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유류분 청구 소송은 수천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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