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양 손목 위의 ‘갤럭시 기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8.25 14:14

김현우 에너지경제 산업부장




김현우 산업부장(부국장)

▲김현우 산업부장(부국장)

10년 전 쯤의 이야기다. 지금이야 갤럭시 워치가 애플 워치와 함께 스마트워치 시장을 주도하는 브랜드가 됐지만, 2015년 즈음에는 갤럭시 기어라는 이름이었다. 둥근 베젤을 도입해 전통적인 시계의 감성을 강조했지만 삼성전자의 제품이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이다.


당시 삼성의 행사 자리에서 H모 임원의 왼 손목에는 갤럭시기어가 둘러져 있었다. 회사에서 '임원들 대상으로 성능과 개선점을 직접 체험하라'고 지급했다는 설명이었다. 삼성에서 야심차게 만들었던 스마트워치니 그러려니 했다.



같은 해 연말 H모 임원을 다시 한 번 볼 기회가 생겼다. 이번에도 왼 손목 위의 갤럭시 기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의 오른손에도 또 하나의 스마트워치가 채워져 있었다.


양 손목에 스마트 워치를 찬 이유에 대해 그는 “개선된 새 모델이 나왔는데 어떤 기능의 차이가 있나 알기 위해 사비로 경쟁사 제품과 새 모델을 구입해서 매일 차고 다니면서 비교해 본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이런 게 삼성의 경쟁력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역할도 아니고 ICT에 민감하지도 않을 세대의 그가 두 개의 갤럭시 기어를 차고 비교하다니. 그는 심지어 스마트워치와 관련된 삼성전자의 임원도 아니었다.


최근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고전하며 '비상경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임원들의 주말 출근도 정례화 되는 분위기다. 게다가 '삼성도 하는데'라며 이 같은 분위기는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에서는 '자발적'이란 전제를 달지만 임원의 주말 출근이 조직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확산시키는지 의문이다. 비상경영이라는 위기의식과 절박함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이미 그 시그널은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다음 문장은 무려 2012년에 나온 언론 기사의 일부이다. <삼성전자는 그룹의 비상경영 차원에서 임원들을 중심으로 평일 오전 6시30분에 새벽 출근을 시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주말 출근까지 정례화 됐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이 문장을 지금 그대로 사용해도 이상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12년 전과는 위기의 실체와 시장의 상황은 천지개벽을 했는데도, 삼성은 같은 방식으로 위기를 대응하는 모습이다.


'자발적 주말 출근'을 하는 삼성의 일부 임원은 사무실에서 직접 챙겨온 도시락을 먹으며 업무에 매진한다고 한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임원 승진 대상 간부들은 연말 인사를 앞두고 주 6일 출근하는 임원을 보며 주말에도 초긴장상태다.


삼성의 주말 출근이 자칫 조직의 문화를 경직시키는 부작용이 되는 건 아닐까.


“혁신은 창의력과 통찰력에서 나온다"는 이재용 회장의 선언에는 더 오랜 시간의 업무는 없다. 주말 출근과 상관 없이 혁신과 인재 중심이라는 키워드가 관통하는 한 삼성은 현재의 위기가 곧 기회였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라고 믿는다.


MS의 창립자 빌 게이츠는 위기 돌파에 역발상으로 대응했다. 그는 “나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게으른 사람에게 시킨다. 그들은 항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라고 말했다. 가장 오래 사무실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


삼성 리더십은 '주말 사무실의 도시락'과 '양 손목 위의 갤러시' 어디에서 창의력과 혁신이 나오는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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