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찬핵·탈핵 모두에게 비판받는 문재인 정부의 원전 세일즈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12.12 14:54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루즈벨트 대통령이 한참 뉴딜 정책을 펼치고 있던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열렸다. 선거 초반 현직 대통령인 루즈벨트에 맞서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의 알프레드 랜든 후보는 뉴딜 정책에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야당이던 공화당 입장에선 정부 재정지출 확대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뉴딜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 만만치 않았다. 당장 자신이 농어촌 지역에선 뉴딜 정책 지지가 컸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선 뉴딜 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선거 운동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전략을 펼친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랜든의 이런 이중적 태도를 강력히 비판했고, 공화당 지지자들도 랜든의 태도에 비판을 가했다. 결국 선거는 루즈벨트의 승리로 끝나고 이 사례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놓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 핵발전소 수출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이와 같은 일이 생기고 있다.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이후 추가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에너지전환 정책을 펼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핵발전소 수출에 적극 나서겠다며, 대통령이 직접 "원전 세일즈"에 나서는 일이 생기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이후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없어 국내 핵산업계 생태계가 붕괴된다는 비판이 있자, "해외 수출로 핵산업계 생태계를 살리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탈핵진영은 물론, 보수 야당과 찬핵진영의 반응도 매우 싸늘하다. 국회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원전 세일즈에 대해 고성과 막말이 오고 갔다. 인터넷 댓글엔 "코미디 쇼", "생쑈"같은 원색적인 비판이 가득하다. 국내에선 국민 안전을 위해 핵발전소를 줄이겠다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는 한국 핵발전소는 안전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비판들이다. 장소에 따라 다른 말을 했던 미국 공화당 랜든 후보의 발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정부와 청와대가 원전 세일즈를 통해 핵산업계를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 국내 핵산업계는 UAE 핵발전소 수출 이후 지난 10여 년간 단 1건의 추가 핵발전소 수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영국과 터키에선 핵발전소 사업권을 따낸 일본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사업을 포기하고 있다. 그만큼 핵발전소 수출은 어렵고 설사 수출에 성공하더라도 큰 이익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핵산업계는 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해외 수출로 활력을 찾자는 문재인 정부 정책을 믿지 않고 최근에는 신울진 3,4호기 건설 재개 범국민 서명운동을 준비하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원전 세일즈는 큰 혼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산토끼는 고사하고 집토끼까지 놓쳐버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후보 시절 의욕적인 포부를 밝혔던 문재인 대통령의 에너지정책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건설재개, 파이로프로세싱 연구 재개, 2083년 탈핵 계획 등으로 공약과 다른 면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영광 3,4호기 공극 발견, 라돈 침대 등 각종 안전사안에 대해 미온적인 대응을 반복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대통령의 적극적인 원전 세일즈는 그간 탈핵 정책 추진을 요구한 국민의 뜻과 분명히 다른 행보이다. 대통령의 원전 세일즈는 핵산업계를 달래기에도 부족하고, 탈핵진영에게 실망감만을 일으키는 정책이다. 어느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이런 정책을 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지 냉정히 살펴보기 바란다. 어설픈 조율과 타협은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쳐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점을 정부와 청와대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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