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박근혜 정부의 적폐 ‘공청회 입장권제도’ 없어져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5.23 15:29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이헌석_LEE_HEONSEOK



"국회나 행정 기관에서 일의 관련자에게 의견을 들어 보는 공개적인 모임." 


국어사전은 공청회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꼭 국어사전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공청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산업부가 주최하는 공청회는 그렇지 않다.

일단 누구나 참석할 수 없다. 사전에 참가신청을 한 사람들 가운데 산업부가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만 입장권이 배부된다. 만약 신청한 사람들 가운데 같은 단체, 회사 사람들이 많다면 참가자 숫자를 제한한다. 그런데 어떤 단체나 회사가 선정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모호하다. 입장권이 배포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다. 어떤 단체나 회사는 10명씩 참가하기도 하지만, 어떤 곳은 1명만 참가하기도 하고, 그나마 기회가 없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12월말에 열린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그랬고, 얼마 전 열린 RPS 제도 개선 공청회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지난해말 공청회 입장권이 운좋게 당첨(!)되었지만 RPS 공청회 참가 신청엔 떨어졌다. 참가를 못하면 인터넷 중계나 다른 방식으로 내용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청회가 끝난 다음 홈페이지에 올라온 PDF 파일로 자료집 내용을 볼 수 있는 게 전부이다. 심지어 지난해 말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의 경우에는 입장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문 앞에 시위대가 있다는 이유로 입장하기까지 무려 40분이나 실랑이를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입절차 또한 무원칙하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은 기자증을 보이고 쪽문으로 입장했지만, 나는 산업부 담당자에게 긴 항의를 거친 끝에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힘들게 들어간 공청회장은 "공간이 협소해서 모든 참석자의 입장을 허용할 수 없다"는 산업부의 설명이 무색하게 곳곳에 빈자리가 있었다.

우리나라 공청회 제도가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에너지 분야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데 의견 청취 시간이 공청회 단 2~3시간 밖에 없다는 것은 애초 의견 청취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말로 국민의 의견을 듣고 싶다면, 장소가 부족하면 더 넓은 장소를 빌리고, 시간이 부족하면 분야별로 쪼개서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 국민 의견을 듣기 위해 광화문 한복판에 ‘광화문 1번가’를 설치하고 한달간 무려 18만 건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에너지 분야 의견 수렴을 위한 많은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지역별, 사안별로 나눠 의견을 수렴하고, 사전 준비 단계부터 회의록과 회의자료, 회의 장면을 인터넷으로 중계한다.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제3자 검증제도 등을 활용해 제2, 제3의 안에 대해서도 검토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제도는 고사하고 2013년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2회 이상 공청회가 무산되면 공청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등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도움이 되는 정책만 추진해왔다.

수십 년째 우리나라 공청회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지적해 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이 제도는 더욱 개악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런 면에서 현재 산업부의 ‘공청회 입장권’ 제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적폐 중 하나이다. 또한 이 제도 폐지를 시작으로 정부가 국민들의 의견을 어떻게 들을 것인지 보다 진지한 고민을 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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