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알뜰주유소 ‘전가의 보검’ 아니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8.07.11 10:13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양진형 상무님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해 리터당 평균 1491원이던 국내 휘발유 가격은 올해 초부터 서서히 오름세를 보이면서 6월 1609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휘발유 가격이 약보합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지만 2011년 휘발유가 2000원 대를 경험한 소비자들은 기름 값 인상에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석유가격은 국민 정서와 반대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원유가 등락시 국제 제품가격은 그 등락폭이 원유가보다 커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고유가 때 정유사의 수익성은 호전이 되는 반면, 저유가 때는 결손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 고유가때 석유업계는 국민 여론의 불만대상이 되지만 저유가 때에는 여론의 동정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현재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세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다 싸다는 것이다. 세전 석유제품 가격이 낮은 것은 그만큼 국내 석유산업이 경쟁력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나라는 하루 300만 배럴의 정제능력을 갖춘 세계 6위의 석유생산 대국이다.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이러한 정제능력을 갖춘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추는 데는 미래를 내다보는 정유사들의 혜안이 있었다기보다는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 이후 오직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몸부림친 생존경쟁의 결과물이다.

대규모 장치산업의 경우, 가동률 제고가 수익성을 좌우하기 때문에 정유사들은 덩치를 키우는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 이후 국내 석유수요가 정체를 보이면서, 현재 정유사의 석유제품 생산은 34% 정도 공급과잉 상태에 있다. 이에 따라 생산 물량의 40% 이상을 해외로 수출해야만 생존하는 구조다.

산업부 집계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국내 정유 4사의 석유수출액은 총 219억 달러로 금액 기준으로 자동차를 앞섰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3.7% 늘어난 것으로, 정부가 산출하는 국가 주력 수출 품목 중에서는 금액 기준으로 4위를 차지했다. 앞으로도 호주, 대만, 일본 등 노후 정제시설 폐쇄 지역을 중심으로 국내 정유사의 석유 수출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출시장은 국제 유가 등락 및 수출국 정제시설의 여건에 따라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정유사들이 국내시장 가격이 수출가보다 낮더라도 내수시장을 우선 확보하려고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

정유사 단계의 공장도 가격은 ‘싱가포르 국제 제품가×환율+관세·수입부과금+정제비 및 생산마진’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교육세, 에너지환경세 등 유류세가 포함되어 세후 공장도 가격이 결정된다. 주유소는 정유사 가격에 마진, 부가세 등을 더해 판매가격을 결정한다. 정유사가 국내 제품 가격을 국제가격으로 정하므로 수입제품이 국내에서 가격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반면, 주유소를 중심으로 한 소매 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석유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만 일본에는 들어가 있는 엑손이나 모빌, 쉘 등 다국적 석유회사의 폴이 국내에는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일본보다 한국의 시장이 훨씬 치열하다는 의미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유가인하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는 2011년부터 알뜰주유소라는 사실상의 정부 직영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공기업인 석유공사를 내세워 알뜰주유소 물량을 정유사로부터 낮은 가격에 대량 구매를 하고, KRX 석유시장에 세금 혜택을 부여하여 알뜰주유소의 제2의 공급자 역할을 맡겨 놓았다.

알뜰주유소의 등장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석유시장의 생태계를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다. 그 결과, 정유사의 2017년 내수시장 영업이익률은 1%대에 불과한 실정이며, 정유사-주유소의 중간 단계에서 석유유통의 허리를 담당하는 석유대리점은 영업이익률이 0.3%, 최종 소매단계인 주유소의 영업이익률은 1.0%대로 추락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알뜰주유소가 고유가때 유가안정을 꾀하는 전가의 보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부의 알뜰 정책에도 불구하고, 유가 상승기에 소비자의 반응은 예민하기만 했다. 지난 6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기름 값 내려야 경제가 살아난다’ ‘자동차에 대한 삼중 세금을 줄여 주세요’ ‘기름 값의 60%를 차지하는 유류세 폐지를 청원합니다’ 등 유류세 관련 청원들이 많이 올라왔다. 앞으로도 고유가 시대가 도래 한다면, 이러한 국민 청원들은 더욱 봇물을 이룰 것이다.

결국, 고유가 시대의 유가 안정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행 유류세의 구조를 손보는 일 밖에 없다. 현재 국내 석유가격 결정 구조는 국제유가를 신속히 반영하지 못하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릴 때는 빗물을 제대로 저장하지 못하고, 가뭄이 들면 바닥을 드러내는 ‘천수답(天水畓)’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국제유가의 급등락에 따른 완충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탄력세 제도를 도입하여, 유가가 일정금액을 초과해 상승하거나 하락할 경우 유류세를 조정하는 충격완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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