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인공지능과 무지능, 그리고 경제학 교육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12.13 08:10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영국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이미 100년 전에 "사회에서 중요한 기능의 상당수는 우리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동으로 수행되는 그런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가 살았던 1900년대 초 관점에서는 오늘날의 인공지능, 즉 AI 보다는 기계 중심의 자동화를 의미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예언은 실현됐고 오늘날에는 자동화 단계를 훨씬 넘어서서 인간의 사고를 모방할 수 있는 인공지능, 즉 AI의 시대까지 이르게 됐다.

AI는 양날의 칼이다. 루틴하고 일상적인 업무를 AI가 맡게 됨으로써 우리는 보다 고차원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될는지 모른다. 재난현장에서 구조활동이나 독성물질 관리 등 위험한 일도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수행하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염려되는 것은 우리의 두뇌를 흉내내는 AI로 인해 역설적으로 우리의 두뇌가 쇠퇴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2009년 2월 12일, 미국의 컨티넨털 커넥션의 출.퇴근용 비행기가 추락해 49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블랙박스를 통해 사고원인을 조사해보니, 조종사가 급격한 기류변화로 기체가 흔들렸을 때 조종간을 앞으로 끌어당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비행기의 하강 속도와 기류를 고려할 때 훈련된 조종사라면 조종간을 앞으로 밀었을 터인데 그 반대로 조작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연결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한 조종사가 갑작스런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했다.

AI가 우리의 루틴한 업무를 대체해 줄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단순반복적인 일을 통해 그 기능이 비로소 우리 몸에 제대로 체화되었을 때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다. 소위 일만 시간의 법칙이 의미하는 바가 그렇다. 컴퓨터나 기계에 맡길 수 있는 작업일지라도 직접 본인이 구현해보는 과정에서도 소중한 학습을 경험하게 된다.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램이 너무나 잘 발달돼 있다 보니 경제학 교육 현장에서도 이와 같은 한계를 목격하게 된다. 통계나 계량경제나 경제모형 등을 분석할 수 있는 이른바 패키지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됐다. 어떤 계량경제 패키지는 클릭 몇 번에 의해 복잡한 고급기능의 모형을 추정해준다. 일일이 전문연구자나 학생들이 추정과정을 고민할 필요도 없이 몇 초 만에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분명 편리한 세상이 된 것은 틀림없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 패키지는 추정결과를 시각적으로도 보기에 좋게 도표 형태로 출력해준다. 아직 소수라고 믿고 싶지만 일부 전문연구자나 대학원생들은 이 도표 형태 그대로 복사한 후 추정 결과에 대한 몇 마디 해석을 보탠 후 논문으로 제출한다. 나는 이처럼 무지능 형태로 제출된 논문이 과연 인간이 한 것인지, 컴퓨터가 한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물론 사실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해서 이런 글을 쓸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부류의 연구는 오늘날 웹크롤링, 웹스크래핑에 추가해 텍스트마이닝으로 거의 자동화된 문서를 생성할 수 있는 시대에서 보자면 연구자 개인의 전문성과 경험, 분석노력이 들어갔다고 보기에 힘든 결과물이다.

이 대목에서 이제 윈도우를 쓰지 말고 과거의 DOS 시대로 돌아가자는 식의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위 전문가를 양성하는 경제학 교육에서 기본에 충실함 없이 겉만 화려한 패키지에 의존하다 보면 제2의 컨티넨털 커넥션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클릭-클릭 몇 번으로 자동으로 생성되는 방식에 익숙해진 경제학자가 하강곡선을 그리는 경제에서 조종간을 잘못 잡게 되면 그 결과는 참사로 연결될 수 있다. AI는 시대적 추세이기 때문에 거스릴 수 없겠지만 오늘날 경제학 교육에서도 아날로그 방식의 일만 시간 법칙, 예를 들면 데이터 정리에서부터 입력, 그리고 모형 프로그래밍을 위한 코딩에 이르기까지 체화하는 과정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고 본다. 손과 머리를 써서 노동을 해 본 자만이 AI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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