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에너지전환의 불편한 진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11.15 16:25

구동본 에너지환경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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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본

정부의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가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까지 간 것은 안타깝고 불행하다. 이 검찰 수사의 대상·범위와 방향을 아직 예단하긴 어렵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결정조차 사법 심판대에 올리는 쪽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검찰 수사 착수는 형식적으로 감사원의 관련 감사결과 참고자료 검찰 송부와 야당 국민의힘의 고발에서 비롯됐다. 이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간 갈등과 맞물리면서 파장이 커졌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문제는 당초 국회에서 여야가 죽기살기로 싸우고도 해결하지 못해 감사원에 감사 요청한 사안이다. 그러니 감사원이 이 ‘뜨거운 감자’를 처리하는데 처음부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직무에 관해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다고 해도 대통령에 소속돼 있는 감사원이 행정·사법과 함께 3권 분립기관 국회도 풀지 못하는 숙제를 풀기란 처음부터 무리였다. 실제로 감사원은 감사시한을 8개월여 지나서야 겨우 감사 결론을 냈고 그 과정에서 감사위원회를 무려 9차례나 열었다. 그런 진통을 겪고 내놓은 감사 결과는 주요 인사 고발은커녕 제대로 된 징계요구조차 없는 그야말로 ‘맹탕’ 수준이었다.

이게 국회와 감사원을 거쳐 이제 검찰 손에까지 넘어간 것이다. 그 수사 결과 또한 제대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벌써부터 수사 타당성을 놓고 극심한 논란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수사가 끝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월성1호기 폐쇄는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 내세운 공약이었다. 그런 대선 공약의 실행을 문 대통령 재임 중 검찰이 나서서 수사까지 하게 됐다.

선거공약 추진에 대해 정치적 잣대로는 얼마든지 시비할 수 있다. 검찰 수사에 성역이 없어야 하고 살아있는 권력도 검찰 수사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은 검찰총장 휘하의 검찰이 해당 대통령 재임 중 공약 추진 과정에 대해 수사하는 것은 분명 자연스럽지 않다. 검찰은 대통령이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행정조직의 하나다. 조직 수장에 대해 대통령이 인사권도 행사한다.

대통령 공약사항 추진까지도 수사대상이 되면 대통령과 그 행정조직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영혼 없는 공무원’, ‘무사안일· 보신주의 관료조직’에 대해 비난하는 것과 배치된다. 어느 공무원이 일을 열심히 한 것으로 수사를 받게 된다면 소신껏,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겠는가. 그 실제 현상은 ‘변양호 신드롬’을 통해 확인됐다. 2003년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주도했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매각 시비에 휘말려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공직사회의 책임회피 또는 보신주의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번 검찰 수사는 정책 판단에 대해서도 법의 심판을 받는 선례를 또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된다. 설령 법의 심판을 받더라도 그 실효성이 의문이다. 20여년 전 외환위기 이후 당시 많은 공직자의 책임론이 제기됐으나 누구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우리는 불행히도 아직까지 성공한 대통령을 갖지 못했다. 문 대통령 직전 두 대통령은 모두 현재 영어(囹圄)의 몸이다. 부정과 비리, 국정농단을 저지른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적 판단까지도 단죄의 대상이 된다면 끊임없는 정치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해서는 성공한 대통령의 기대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책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불법행위에 대해선 수사하는 게 마땅하다. 정책결정이 아무리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정책추진은 법과 규정, 절차에 따라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책결정과 정책추진은 별개라는 뜻이다. 정책추진 과정의 위법사항까지도 대통령의 통치행위란 이유로 눈감을 수 없다.

감사원의 이번 감사결과에서 공무원 개인 또는 정부의 조직적 감사 저항이나 방해, 정부 및 공공기관의 불합리한 경제성 평가 등이 지적됐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검찰수사가) 탈원전 정책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범죄 개연성이 있어 검찰에 참고자료를 보냈다"고 밝혔다. 실정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명쾌했고 처분 또한 정당하게 이뤄졌다면 검찰 수사로까지 확대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검찰이 정책추진의 절차적 위법성을 수사하면서 정무적 판단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정책결정의 정당성까지도 수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어서다.

가뜩이나 검찰개혁으로 정부와 검찰이 대립하고 검찰 안에서까지 편이 갈려 반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에 나선 이상 수사 범위에 경계를 두기 쉽지 않다. 뚜렷한 범죄혐의에 국한해 수사할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우여곡절 끝에 수사결과가 나와도 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이런 불행한 상황을 맞이한 책임은 대통령과 정부, 집권당에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국민이 듣기 좋은 친환경과 안전만 강조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비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비용은 국민의 부담이다. 국민에 부담되는 정책은 인기가 없다. 그렇더라도 여권은 특정 정책의 효과뿐만 아니라 역효과도 설명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여권은 그걸 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친환경과 안전은 국민 누구나 찬성하고 지지한다. 환경문제가 심각하고 안전사고가 자주 날수록 그 찬성과 지지는 더 강해진다. 최근 치열하게 전개된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새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친환경 공약으로 표심을 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탈석탄을 하면서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에너지전환정책을 가속화해왔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이행계획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현재 5~7% 수준에서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특히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를 오는 2025년까지 지난해의 3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그린뉴딜을 하겠다며 오는 2025년까지 민간 투자분까지 포함시켜 무려 73조원을 쏟아붓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 국가’로 불린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7위에 달할 정도로 많다.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수단인 재생에너지 보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세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우리 세대를 위해 친환경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가 이런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전환의 필요성과 정당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환경과 안전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구조는 오랜 사업과정을 거쳐 경제성 위주로 짜였다. 다시 말해 싼 연료를 중심으로 우선 발전하도록 시스템이 마련됐고 그에 따라 산업의 생태계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원자력과 석탄은 발전연료로서 그 비용이 석유나 액화천연가스(LNG)보다 훨씬 싸다. 그래서 원전과 석탄발전이 우리나라의 주력 발전원으로 자리 잡았다. 신재생에너지는 경제성·효율성·안정성 등 측면에서 원전과 석탄발전에 비해 떨어진다. 아직 생태 기반이 잘 갖춰지지 않았다. 기술상 문제도 많다. 발전 효율은 원전이 90%, 풍력발전이 30%인데 발전 단가는 풍력이 원전보다 3배나 비싸다고 한다.

실상이 이런데도 국민 다수가 찬성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하루아침에 전력산업 구조의 중심 원칙을 경제성에서 환경성으로 바꿀 수 없다. 정부가 국민의 삶을 한층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정책일지라도 이걸 도입하려면 적어도 그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건지,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면 그걸 동의하고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먼저 묻는 게 순서다. 동시에 피해 주민 및 산업에 대한 충분한 설득절차도 필요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이런 절차 없이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서둘렀다. 월성1호기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11월 설계수명 30년을 다해 가동 중단됐으나 2015년 6월 박근혜 정부에서 2022년 11월까지 가동 승인해 운전 재개됐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첫 해 국무회의를 거쳐 이듬해 6월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최종 결정했다. 정치적 논란이 따를 수 있는 전 정권의 행정조치를 뒤바꾸고, 그것도 행정기관의 정당한 절차를 통해 승인된 가동시한을 4년 이상 남겨둔 시점에 제대로 된 국민 동의 및 설득 절차 없이 뭐가 그리 급해서 갑자기 조기 폐쇄했느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처럼 제대로 된 의견수렴 및 절차 없이 닥치고 에너지전환을 밀어붙인 것은 정권의 주축세력으로 등장한 시민단체에 포위된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이래놓고 에너지전환정책 비용조달의 핵심 수단인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그나마 낫다. 신재생에너지가 원전이나 석탄발전보다 싸다고 강변한다. 도대체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다. 여권은 현 정부 임기인 2022년까지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에너지전환을 강화하되 그에 따른 비용발생 요인은 애써 무시하겠다는 의지로 들렸다. 비용발생 요인이 생겨도 이 정권 임기 내 전기요금 인상이 안되도록 통제한 뒤 그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과실만 따 먹고 뒤처리는 나물라라는 심보다. 비겁한 폭탄 떠넘기기다.

그러면서도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전기요금의 유가연동제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다. 발전연료비의 중요 변수인 유가에 따라 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하자는 것이다. 한전은 이를 ‘요금 현실화’라고 주장한다. 또 요금 조정의 필요는 유가 변동의 대응책일 뿐이라고 한다. 에너지전환 비용 발생이 원인이라는 사실은 구태여 부인한다. 지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던 한전이 올해 들어 저유가 덕분에 잇따라 흑자를 냈으니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따져보자. 한전의 주가는 왜 이 모양인가. 한전이 지난 12일 3분기 영업이익 2조3000억원으로 3년 새 최대 실적을 발표했다. 그 이튿날 13일 한전의 주가는 2만1350원을 나타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일인 2017년 5월 10일 4만3150원의 반토막도 안된다. 코스피지수가 그 사이 2270.12에서 2493.87로 9.8% 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주가하락이다. 한전의 주가는 이 정부 들어 줄곧 곤두박질쳤다.

이런 수치가 뭘 의미하는가. 한전의 실적이 불안하다는 뜻 아닌가. 사실상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신호나 다름없다. 단지 유가변동 탓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한전의 실적은 올해 들어 저유가로 반짝 호전을 보이고 있지만 한전의 주가는 문재인 정부 들어 내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 방향의 에너지전환에 박차를 가하겠다면 지금이라도 그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는 전기요금체계 개편과 관련 국민에 정직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국내 유일의 공기업 한전을 통해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이 투명성·신뢰성을 평가받는 상황이라면 그 필요성은 더욱 크다. 자꾸 회피하거나 얼버무리고 둘러대선 안된다. 그러면 그건 꼼수이고 사기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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