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석유의 종말과 해외건설의 미래

에너지경제 2020-11-17 17: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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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2011년 국내 대형건설 기업의 플랜트 사업부 임원이 "석유 없는 세상이 곧 올 텐데 플랜트 사업 수주에만 집중하는 국내 건설기업은 위기에 대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왜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가 대답으로 내놓은 것이 ‘(거의) 석유 없는 삶’이라는 책이다. 책에서 저자는 석유의 고갈은 닥칠 미래의 현실이고, 석유가 없는 삶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국가에 집중된 에너지의 철저한 경제적 지배를 받고, 국제유가가 수급 불균형으로 고공행진을 거듭할 때였으니 고객을 끄덕거렸을 만하다. 그런데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이다’라는 피에르 닥의 말처럼 다 써버려서 사라지는 석유의 종말은 조만간 오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영영 안 올지도 모른다.

산유국이 모여 있는 중동지역 건설시장이 해외건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시아와 유럽에 이은 세 번째로, 다수의 해외 건설기업들 중동시장에 진출하고자, 혹은 진출하여 경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건설기업의 해외건설 연간 수주 중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0%, 플랜트 공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55~60%다. 이러다 보니 국제유가의 높낮이에 따라 그해의 수주 규모의 변화 폭도 클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구조이다. 그렇더라도 해외건설 시장에서 매출 기준 세계 6위라는 성과는 석유가 만들어낸 시장에서의 괄목할 만한 수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석유의 존재는 초도 진출 이후 8500억 달러가 넘는 수주를 거둘 수 있었던 기본 환경과도 같다. 이렇게 중요한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은 해외건설 시장에서 수주를 거두고 진출 국가를 넓혀 가야 하는 국내 건설기업에는 전혀 반갑지 않다.

그런데, 석유의 종말은 너무나 많이 써버려서 없어지는 고갈이 아니라 과거만큼 필요하지도 않고, 쓰지도 않아서 잊히는 형태로 올지도 모른다. 2018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은 석유 시대의 종말이 2035년 이전에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종말의 이유가 고갈이 아니라 ‘수요 급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BP는 2050년까지 석유 소비를 전망하는 보고서를 통해 석유 수요가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 2050년까지 석유 수요가 50%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와 같은 석유 수요에 관한 비관론은 OPEC과 일부 산유국 간의 카르텔을 기반으로 하는 석유의 정치 및 경제적 지배력 약화와도 무관하지 않을뿐더러 해외건설 시장의 미래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점진적인 석유 수요의 감소는 국내 건설기업의 해외건설 수주 시장과 상품인 중동지역의 산유국과 플랜트 발주 시장의 환경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ENR 250대 건설기업의 해외 매출에서 석유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4년 이후 지속해 하락하고 있는 걸 봐도 석유 수요 감소와 그에 따른 국제유가 하락이 시장 변화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장의 변화가 석유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에서 벗어나려는 산유국의 자발적 의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석유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변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 변화의 범위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때문에 해외건설 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에너지원으로서의 위상 약화가 예상되는 석유를 둘러싼 산업 환경과 국가별 정책 변화를 확인하고 그에 따른 수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석유의 종말이 곧 해외건설 시장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석유산업의 구조적 압력과 더불어 대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방식과 산업 형태의 변화는 해외건설의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주가 부진하다고 그만둘 해외건설이 아니라면, 다가올 해외건설의 미래에 대비하는 것은 필수다. 모르는 일이다. 석유의 종말이 해외건설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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