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2040년까지 신규원전 6기 건설
日 'HTGR' 오래전부터 급관심
고온 헬륨가스 냉각재 사용 안전
한국 탈원전 기조에 영향력 줄어
폴란드 정부, 日원전 선택 유력시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폴란드 신규 원전 사업을 놓고 세계 각국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이 원전 수주전의 유력한 승자로 점쳐지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된다. 공급사를 선정하는 수주전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폴란드 정부가 일본의 원전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다 원전 기술에 대해 다방면으로 협력할 계획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는 해외 수주전에 총력을 가해야 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脫)원전 정책 여파로 ‘에너지 외교’에 대한 한국이 영향력이 줄어든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29일 닛케이 아시아는 이달 초 미하일 쿠르티카 폴란드 환경장관과 인터뷰를 갖고 "원전 프로젝트에 대해 일본 파트너를 모색하는 폴란드 장관"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쿠르티카 장관은 지난 9월 초 개정된 ‘2040년 폴란드 에너지 정책(PEP2040)’을 발표하면서 2040년까지 원전 6기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폴란드 정부가 과거에 밝혔던 완공 일정을 쿠르티카 장관이 3년 앞당긴 것이다.
개정된 내용에 따르면 폴란드 정부는 원전 건설에 총 400억 달러를 투입해 2033년부터 첫 원전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전체 전력의 80%를 담당하는 석탄 발전의 비중을 줄이고 6∼9 기가와트(GW)에 달하는 원전 6기를 2040년까지 순차적으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폴란드는 과거 1980년대에 원전 건설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원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강해 결국 건설이 1990년에 중단됐다.
폴란드의 신규 원전 건설계획은 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현재 폴란드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하나도 없으며 원전 운영 경험도 전무하기 때문에 첫 원전 공급업자로 선정된 국가가 나머지 건설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프랑스 등 원전 건설 경쟁력을 가진 주요국이 폴란드 원전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모두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쿠르티카 장관은 "원전에 대해선 일본 기업들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기술적으로 앞서고 있다"고 평가했고 폴란드의 첫 원전사업에 대한 일본의 참여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원전 프로젝트를 계기로 "일본과 폴란드 기업간 협력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쿠르티카 장관은 또한 차세대 원전 중 하나인 고온가스냉각로(HTGR) 개발을 위해 일본과 협력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HTGR은 물 대신 고온의 헬륨가스를 냉각재로 사용한다. 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나도 수소폭발을 일으킬 우려가 없다. 실제 일본 원자력연구개발기구(JAEA)는 HTGR 개발을 위해 폴란드와 협력하겠다고 작년 9월 발표한 바 있다.
폴란드 정부는 과거부터 HTGR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폴란드 에너지부는 2017년 ‘HTGR 도입의 가능성’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주어진 기술을 고려했을 때 HTGR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르면 폴란드는 2026년 원전을 착공해 2030년대부터 가동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만약 폴란드의 PEP2040이 과거 보고서에서 제시된 내용을 따른다면 폴란드에 새로 건설될 신규 원전은 일본의 HTGR이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화답하듯 쿠르티카 장관은 "양측 정부는 차세대 원자로에 대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상업화를 향해 나아가면서 협력관계를 탄탄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당초 폴란드 원전 건설 프로젝트의 경우 미국이 수주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년 6월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맞이했는데 올해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해외 정상회담 상대로 폴란드를 선택했다.
또 미국 에너지부는 180억 달러에 달하는 원자력 기술을 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협력협정을 지난 10월 폴란드 정부와 체결했다. 미 에너지부는 이번 협정을 통해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 협력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닛케이 아시아는 "이 협정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명확하지가 않다"며 "일본 기업들이 여기에 관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일본이 폴란드 원전 사업 수주 유력 후보군으로 떠오른 것은 한수원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한수원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묶여 오로지 해외 수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일본, 미국 등의 참여가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국제사회에서 한국 원전 기술의 입지 축소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두다 대통령을 두 번이나 만나고 정부차원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 범정부적 지원안을 내놓았다. 미국은 폴란드 뿐만 아니라 루마니아, 체코, 불가리아 등에서의 원전 사업 수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사태를 겪은 일본도 원전을 2050년 탈석탄 사회 실현의 중요한 열쇠를 보고 10년내 차세대 소형 원자로를 개발해 운영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그린 성장전략’에 따르면 2030년까지 원전의 비중을 20∼22% 늘린 이후 2050년에는 화력발전과 원전 비중을 30∼40%로 낮춘다.
반면 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8일 확정시킨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원전을 2022년 26기에서 2034년까지 17기로 줄인다. 이로 인해 2030년과 2034년 한국의 원전 비중은 각각 11.8%, 10.1%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원전과 별개로 재생에너지 시장에서도 폴란드 정부는 일본과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닛케이 아시아는 "쿠르티카 장관은 또한 해상풍력에서 일본과의 더 강한 협력관계를 희망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폴란드는 2030년까지 총 전력 소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21%로 늘릴 계획인데 바람이 잘 부는 발트해에서 해답을 찾겠다는 분석이다.
쿠르티카 장관은 "일본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 풍력발전의 가치사슬이 매우 강하다"며 "풍력 터빈도 일본의 가치사슬에 포함되는데 이는 해상풍력에 가장 중요한 부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해상풍력 규모를 2030년까지 10GW, 2040까지는 최대 45GW로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현재까지 확정된 국가별 계획으로는 세계 최대수준의 해상풍력시장이 일본에 형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