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오버하는 이낙연, 결국 자충수되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1.12 19:20

구동본(에너지환경부장/부국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요즘 달라졌다. 자꾸 나서지 말아야 할 것에 나선다. 나서더라도 그냥 차분하면 그나마 낫다. 표현까지 과하고 거칠다. 사실을 부풀리는 모습도 보인다. 집권당의 대표로서, 강력한 대권주자로서 불가피할 수도 있겠다.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려면 자극적인 표현이라야 호소력을 갖는다는 정치 세계의 인식 때문이다. 그의 최근 말투와 행보를 보면 뭔가 쫓기는 것 같다. 

 

이건 "신중하다"는 세간의 평을 듣는 그 답지 않다. 그러니 자꾸 구설에 오른다. 그는 지난 11일 경북 경주 월성원전 지하수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된 것과 관련 ‘충격적’이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를 정지할 때도 같은 표현을 썼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놀랄 일도 많다. 하지만 정말 놀랄 일이 있어도 정치 지도자라면 차분해야 한다. 국민을 걱정하지 않게 하고 안심시키는 게 정치 지도자의 본분이자 도리이기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사유를 놓고 충격적이라고 한 윤석열 총장 징계청구 및 직무정지 처분은 나중에 어찌 됐는가. 법무부 감찰위원회의 "직무정지 부적정" 의결에도 윤 총장 징계가 강행됐다. 징계수위는 고작 2개월 정직이었다. 법무부가 징계사유로 제시한 비위혐의 8건에 비하면 초라했다. 법원은 이 조차도 집행정지 결정을 했고 당사자인 추 장관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까지 두 차례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윤 총장 사유 8건에는 검찰의 판사 사찰 의혹, 정치적 중립 관련 부적절한 언행 의혹까지 포함됐다. 판사 사찰 의혹 사유는 징계청구 때 난데없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법조 안팎에서는 징계 관련 법정 다툼 때 검찰, 특히 윤 총장에 대한 법관의 부정적 인식을 불어넣을 묘수(?)란 관측이 제기됐다. 피해 당사자인 법관의 전국 대표 협의체 법관회의에서 공식 대응안건으로조차 오르지 못했다. 

 

정치적 중립 관련 부적절 언행 의혹도 윤 총장이 자가 발전한 게 아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퇴임 뒤 사회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답변한 게 빌미였다. 이 답변을 여권이 ‘퇴임 후 대권 출마’로 해석, 올가미를 씌운 것이다. 윤 총장이 대권주자 지지율 고공행진을 보인 것도 따지고 보면 여권 이른바 ‘윤석열 죽이기’ 프로젝트의 결과 아닌가. 이 대표는 이런 여권의 마녀사냥식 ‘윤석열 찍어내기’에 유력 대권주자로서 견제는커녕 부화뇌동, 아니 주도했던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엔 월성 원전 방사능 검출문제다. 이 대표의 ‘충격적’이란 한 마디가 주는 기시감(旣視感)은 불길함을 예고한다. 여권에 "무슨 꿍꿍이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주변으로부터 아무 감각이 없이 태평하게 산다는 핀잔만 들을 게 뻔하다. 그도 그럴 게 다수 전문가들에 따르면 검출 방사능 수치나 영향 등이 우려할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이없다", "뜬금없다", "허무맹랑하다", "괴담수준이다" "가짜뉴스다" 등의 반응들이다. 오죽했으면 집권당 눈치를 봐야 할 한국수력원자력이 "제발 사실과 과학으로 말하라"고 호소하겠는가.

 

이런 한수원과 전문가들의 주장을 여권에선 이 대표가 표현한 ‘원전 마피아’들의 상투적인 소리라고 걷어찰 수도 있다. 그러나 여권의 그 꿍꿍이가 청와대로 향할 조짐을 보이는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관련 검찰 수사의 물타기로 보는 시중 여론이 우세한 편이다.

 

아무리 대립과 반목이 큰 정치판이라도 공방할 소재가 따로 있다. 집권당 대표가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가짜뉴스를 만들어 터무니없는 불안감과 공포감을 부채질한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또 그 나라 국민은 얼마나 불쌍한가. 

 

이 대표는 본래 꼼꼼하고 꼿꼿한 성격이다. 매사 대충 대충은 없다. 돌려서 말하거나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은 그래도 양반이다. 시곗 추를 20년 전으로 돌려보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인 그는 2000년 4.13총선을 통해 16대 국회에서 처음 금배지를 단다. 초선으로 당시 집권 민주당·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맡는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때 대변인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특히 당시 당이 대선 후보로 노무현을 공식 선출해놓고도 내부에서 흔들어댔다. 그러나 이낙연은 노무현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 때 이미 이낙연의 스타일은 기자들의 눈에 띄었다. 논평 한 줄을 써도 허투로 하지 않았다. 매사 돌다리도 두들겨 가는 식이었다. 표현에 가식이나 군더더기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직선적이었다. 사실을 쫓는 기자 습성이 몸에 배서 그랬을 수 있다. 당시 당 부대변인으로 당찼던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그런 이낙연 앞에선 주뼛주뼛하거나 그를 피했다. 국회의원 5선에 도지사, 총리까지 하면서 그의 이런 스타일은 바뀌지 않았다. 얼마 전 주변에서 그에게 "이젠 좀 부드러우면서도 대범한 이미지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그러면 내가 아니다"고 손사래쳤다는 전언이 있을 정도다. 총리 시절 국회 답변 때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게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지금 유력 대권주자 반열에 오르고 당 대표까지 거머쥔 것 아닌가.

 

그런 이 대표는 사면 소동으로 홍역을 치렀다. 갑작스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들고나왔다가 하룻만에 접었다. 친(親)문재인 세력의 반대에 뒤로 물러섰다는 평가였다. 그의 전문 분야는 월성원전 방사능이 아니라 사면이다. 그는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의 추천 덕분에 정치에 입문했다. DJ는 자신과 동교동계를 가까이서 취재하던 이낙연의 모습을 눈여겨보며 그의 정치적 자질을 높이 샀다고 한다. 그의 스승 김대중의 트레이드 마크는 ‘통합’과 ‘화해’다. 사면은 통합과 화해 차원에서 유효한 카드다. 

 

사면이 대통령 고유권한인 것은 맞다. 사면론을 거론하기엔 아직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 대표이자 차기 유망 대권주자인 그가 건의형식으로 이 사안을 얼마든지 이슈로 꺼내들 수 있다. 설령 애드벌룬이라도 상관 없다. 그런데 일명 문파들이 들고 나서자 하루도 못 버텼다. 그를 친문 적자(嫡子)로 볼 수 없다. 그게 대권가도의 콤플렉스일 수 있다. 당 대선 후보가 되려면 당 주류인 친문세력의 환심을 얻어야 한다. 사면론에서 스텝이 꼬인 것은 바로 그런 친문 눈치보기나 표 계산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많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겠다면 화두를 꺼낼 땐 신중하되 기왕 던진 카드라면 끝을 봐야 한다. 던져놓는 이슈에 문제가 제기되니  곧바로 슬그머니 주워담아 뒤가 무르다는 이미지로는 결코 대권을 얻을 수 없고 얻어서도 안된다. 전공 아닌 엉뚱한데 관심을 보이고 선을 그어야 할 때 긋지 않는 것은 분명 그 답지 않다. 이 대표는 최근 자신의 지지율이 정체하거나 떨어지는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양복 입고 갓을 쓸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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