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정부는 작년 12월 차등의결권제도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전형적인 생색내기 법안이라, 옹색하기 그지없다. 한국 증권시장이 미국 시장을 따라 가려면 멀었다.
자본금이 빈약한 사람이 기업을 하다보면 금방 자금이 달린다.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기업주의 지분이 투자자의 지분보다 낮아져 경영권을 잃을 수 있게 된다. 이를 막아주는 것이 복수의결권 주식의 발행 및 보유를 허용하는 차등의결권제도다. 한국에선 금과옥조로 여기는 1주1의결권 원칙을 대부분의 미국 주 회사법에는 규정하지 않는다. 다만, 델라웨어 주 회사법은 정관으로 복수의결권 규정이 없는 한 1주1의결권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유니콘 기업은 차등의결권제도를 갖춘 증권시장으로 몰린다. 2014년 홍콩증권거래소가 차등의결권을 인정하지 않자 알리바바는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깨달음을 얻은 홍콩거래소가 서둘러 이 제도를 도입했고, 알리바바는 2019년 11월 홍콩거래소에 2차 상장을 완료했다. 이처럼 차등의결권제도 도입은 유니콘 기업을 유치해 자본시장 자체를 키운다.
정부 발의 법안이 옹색한 이유는, 우선 비상장 벤처기업에게만 차등의결권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국내서 정부 벤처인증을 받은 비상장 업체는 1%(3만9000개)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주식회사에겐 그림의 떡이다.
복수의결권주식 보유자격도 발기인, 상무에 종사하는 이사,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으로서 가장 많은 주식을 소유한 자 등 창업주로 한정한다. 벅셔 헤서웨이의 대주주 워렌 버핏은 1주당 의결권이 클래스( Class) B 주식보다 1만배 많은 클래스 A 주식 38~39%만 소유하고, 나머지는 소액주주들이 소유하는 것과 비교된다. 이 회사의 클래스 A주식은 전체 의결권의 84.8%를 차지한다.
차등의결권제도 도입을 위해 정관을 변경하고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하려면 주총 특별결의가 필요한데, 그 특별결의는 발행주식 총수의 75%가 동의해야 하는 ‘가중 특별결의’를 하도록 규정한다. 이미 주식이 상당히 분산된 벤처기업은 정관변경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또 ‘총주주’가 동의해야만 창업주가 보유한 보통주로써 주금납입을 대용할 수 있게 했다. 단 한 명의 주주가 반대해도 안 된다. 이쯤 되면 이 제도를 도입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의결권의 수는 1주마다 1주 초과, 10개 이내까지만 인정된다. 벅셔 헤서웨이 클래스 A 주식은 1개의 의결권을 가지나, 클래스 B 주식은 1만분의 1의 의결권을 가지는 것과 비교된다. 복수의결권 유지기간은 발행 후 최대 10년을 한도로 한다. 만약 상장을 하게 되면 상장 3년 후엔 무조건 보통주로 전환된다. 창업주가 주식을 상속ㆍ양도하거나, 이사직을 상실할 경우에도 보통주로 전환된다. 포드자동차는 100년 넘게 차등의결권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기업이 공시대상기업집단(재벌 등)에 편입되는 경우에는 즉시 보통주로 전환된다. 그런데도, 일부 시민단체는 ‘재벌세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면서 이 제도의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공시대상기업집단제도 자체가 없는 미국은 당연히 이런 규제가 없다.
차등의결권제도를 단순히 벤처기업 경영권 보호라는 근시안적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자본시장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미국 이상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한국은 차등의결권제도 하나 제대로 도입하지도 못하는 못난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