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자...재계 ‘젊은 총수’ 사업재편 키워드는 ‘속도’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4.06 16:06

40대 경영인들 ‘포스트코로나’ 주력사업 교체 ‘통큰 결단’



LG 구광모, 모바일 버리고 미래차·AI에 집중



한화 김동관 항공·우주 출사표···현대重 정기선 수소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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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재계 30·40대 ‘젊은 총수’들이 그룹 체질을 개선하며 전례 없이 발 빠른 ‘속도전’을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글로벌 시장에서 30년 가까이 펼쳐온 사업을 단칼에 정리해버리거나 우주·수소 등 긴 호흡이 필요한 신사업으로 그룹 무게중심을 옮기는 등 과감한 결단이 이어지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기업의 경영 환경과 시장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어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으로 읽힌다. 선대 경영인이 일군 성과를 넘어 본인의 리더십을 입증하겠다는 의지도 녹아들어 있다는 분석이다.


6일 재계에 따르면 1978년생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6년간 이어온 모바일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최근 결정했다. 올해 초 사업부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하고 2개월여만에 완전 철수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LG전자 모바일 사업부는 작년 말까지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해 왔다.

시장에서는 LG전자가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한 협상을 벌여 생산라인 위주로 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구 회장이 직접 결단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구 회장의 ‘광폭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8년 6월 취임 이후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미래차·인공지능(AI)을 꼽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넘보고 있고 LG전자는 올 7월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미래차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KT 등 이종 업계와 협업해 만든 ‘AI 원팀’도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1983년생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태양광·소재 등 한화솔루션의 본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가운데 항공·우주 분야에 집중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인수한 민간 인공위성 기업 쎄트렉아이에서 무보수 등기임원으로 일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비슷한 시기 한화시스템은 우주·항공모빌리티 사업 등을 키우기 위해 1조 2000억원대 유상증자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김 사장이 한화그룹의 우주 관련 기술을 총괄하는 ‘스페이스 허브’ 조직 팀장직을 맡은 것도 본인의 의사가 강력하게 반영됐다고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김 사장이 한화의 지휘권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화학·금융 등 전통사업보다 태양광·우주항공 등 신사업으로 그룹 무게중심이 옮겨갈 것으로 본다.

1982년생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의 경우 본업인 중후장대 산업의 몸집을 확 키우면서 성장 동력을 수소 쪽에서 찾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산업 사이클이 긴 조선·중공업 특성상 최근처럼 그룹 중장기 비전을 빠르게 제시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 부사장은 그룹 성장의 축으로 수소를 비롯한 ‘친환경’을 택했다. 당장 2030년까지 육상과 해상에서 수소의 생산, 운송, 저장, 활용을 모두 할 수 있는 밸류체인(Value Chain)을 구축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한국조선해양이 수소 운송과 공급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현대오일뱅크가 블루수소 생산을 맡는 식이다. 또 현대일렉트릭은 친환경·무소음 수소 연료전지 발전설비 구축을, 현대건설기계는 수소 기반의 중대형 건설장비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30·40대 경영인들의 이 같은 행보에는 ‘변해야 산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코로나19라는 파도가 덮치며 기업 경영환경이 급격하게 변해 새 사업에서 활로를 찾는 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시대가 지나며 전세계 기업들이 탄소배출·기후변화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투자자들도 ESG 경영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며 "글로벌 공급·수요 트렌드가 갑자기 변해 기업 입장에서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환경이 됐다"고 해석했다.


젊은 총수들이 본인의 리더십을 입증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그룹 의사결정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능력 없이 선대 경영인 덕분에 고위직에 올랐다는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 ‘친환경’ 등 성장성이 담보된 분야에 빠르게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3·4세 경영인 중에는 아버지 세대가 아직 현역에 있거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는데, (젊은 총수들은) 기존 사업에 힘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만드는 작업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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