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그룹, 한국 등 13개국 소매금융사업 철수
국내 시중은행 경쟁력↑...수익창출 가능성 한계
쿠팡 이어 마켓컬리도 美증시 상장 추진
높은 밸류에이션 기대감, 글로벌 사업 확장 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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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주요 기업들이 국내보다는 해외를 택하는 사례가 늘면서 K-금융의 위상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국내에서 소매금융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으며, 국내 기업들은 잇따라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내외적인 시장 환경과 미래 사업 확장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나, 정부의 각종 규제 등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씨티그룹 韓소매금융 철수 배경은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씨티그룹이 국내를 비롯한 호주, 중국, 대만 등 13개국에서 소매금융 사업을 철수하기로 한 배경에는 수익을 창출하는데 한계에 이르렀다는 내부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정 국가에서의 실적, 역량의 문제를 넘어 수익 개선이 가능한 투자은행(IB) 부문에 집중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해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 기존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만으로는 시장 지위를 유지하는데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또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이 경쟁력을 상당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과거 씨티은행이 2004년 옛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씨티은행으로 공식 출범할 당시 내세웠던 ‘선진금융기법 전수’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번 소매금융사업 철수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과거 금리가 높고 수익이 나는 시기에는 소매금융업을 영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그러나 현재는 저금리로 마진 자체가 급감했고, 국내 대형 시중은행들의 소매금융 경쟁력도 높아진 탓에 소매금융 사업을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순이익 1878억원으로 전년보다 32.8% 감소했다. 이 중 개인 및 소매금융 부문 당기순이익은 작년 말 148억원으로 2018년(721억원) 대비 80% 금감했다. 또 다른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도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보다 18.2% 감소한 2571억원을 기록했다. 이렇듯 대부분의 은행들이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실적이 줄었지만 씨티은행의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컸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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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은행. |
소매금융 사업 철수를 공식화한 한국씨티은행과 달리 SC제일은행은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내 금융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 국내 사업 축소나 철수 가능성은 낮다는 분위기다.
빌 윈터스 스탠다드차타드그룹 회장은 지난해 8월 말 입국해 한 달 동안 한국에서 근무하며 은성수 금융위원장, 카카오뱅크, 토스, 페이코 수장들을 만났다. 특히 은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는 SC그룹 내에서의 한국시장 중요성과 한국 내 사업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SC제일은행은 비바리퍼블리카 주도로 진행 중인 제3인터넷전문은행 ‘토스뱅크’ 주요 주주로 참여 중이며, 디지털 뱅킹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SC제일은행 측은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디지털, 소매금융 등 주요 사업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라며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사업 철수와) SC제일은행과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관치금융이 이번 씨티은행 결정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배당성향 축소, 코로나19 금융지원, 키코(KIKO) 배상 등 당국의 각종 요구사항으로 인해 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당국의 규제가 유독 많은 건 사실이다"며 "다만 근본적으로 씨티그룹은 미국에 본사를 둔 반면 SC그룹은 영업망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어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데도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美증시 택하는 혁신기업...산업구조 다변화 ‘절실’
국내 혁신 기업들이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인 점도 K-금융의 엑소더스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거론된다.
쿠팡이 지난달 10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뉴욕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한데 이어 마켓컬리도 연내 뉴욕 증시 상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역시 내년 중 미국 증시 상장을 고려 중이다. 글로벌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잇따라 미국 증시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높은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와 달리 미국 증시는 글로벌 자금이 몰리기 때문에 대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 증시에 상장할 경우 집단소송 관련 리스크와 한국, 미국에서 이중으로 규제를 받아야 하는 점은 기업들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소송 관련된 리스크가 훨씬 크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규제도 준수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그럼에도 기업들이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는 것은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고 진단했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국내보다는 미국 증시가 더욱 유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유망 기업들을 국내 증시에 유치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인식 개선은 물론 산업 구조를 다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 혁신 기업들의 상장이 줄을 잇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산업은 아직까지 제조업 중심"이라며 "국내 산업 구조가 성장 잠재력이 큰 혁신적인 사업 모델로 다변화되고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해도나 관심도 넓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2000년대 초 미국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이 10개가 넘는데, 이 중 살아남은 곳은 그라비티 한 곳에 불과할 정도로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며 "유망 기업들이 국내 증시에 상장하도록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