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좌초비용 보상 없는 에너지전환은 불가능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4.19 10:09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 교수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1990년대와 2000년대 원전과 석탄발전소는 우리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철강 및 자동차 그리고 반도체와 석유화학 제품 수출로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이끌었던 선봉장은 전력의 차질 없는 공급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딛고 일어선 우리 경제가 2000년대 중반의 고유가 시대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원전과 석탄발전소에서 꾸준히 생산되었던 전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꾸준하게 늘린 것은 9·15 순환정전이 발생한 2011년과 그 후 몇 년의 전력부족을 극복하고 견디게 해 준 힘이었다. 그런데 지금 원전과 석탄발전소는 천덕꾸러기로, 위험하고 더러운 발전소로 낙인 찍히고 있다. 에너지전환 시대에 이들은 마치 변변히 한 일 없이 자녀들에게 빚과 짐을 남기고 구박받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한 시대를 이끌었던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조기 퇴장시키는 것이 적절한가.

1990년대초 미국의 전력산업에 경쟁이 도입되자 투자보수율 보상을 전제로 건설되고 운영 중이던 상당수의 발전소는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그런데 이는 이들 발전설비의 책임이 아니었다. 자유로운 경쟁의 시대가 올 줄 모르고 투자보수율 규제를 전제로 기획되고 건설되었기 때문이었다. 진입규제에서 자유로운 경쟁으로 정부 정책이 변화하게 되면서 회수할 수 없게 된 좌초비용(stranded cost)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보몰(William Baumol), 조스코우(Paul Joskow), 칸(Alfred Kahn) 등 미국 경제학계의 규제이론 대가들은 공익산업인 전력산업에 대한 정부정책의 변화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정당하게 보상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의의 결과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FERC)도 위원회 규정(Order 888)을 공표하여 "합법적이고, 신중하며, 입증가능한 방식으로 투입된 좌초비용의 회수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게 되었다.

좌초비용에 대한 보상은 사유재산을 공공의 목적으로 수용할 때에 정당하게 보상한다는 미국 수정헌법 제5조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1990년대 전력산업 경쟁도입기에 나타난 좌초비용 논의는 30년이 지난 에너지전환 시대에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경쟁도입처럼 에너지전환도 정부의 정책적 변화이므로 미국의 석탄발전소들도 좌초비용을 보상받을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반면 유럽에서는 이러한 좌초비용에 대한 정책적 보상의 전통이 없어 대부분 법정에서 민사소송으로 귀결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올해 3월에 원전 사업자들과의 법정 소송 끝에 탈원전 정책에 대한 보상금으로 24억 유로를 배상하기로 합의했으며 지난 해에는 ‘탈석탄법’을 통해 석탄발전 사업자들에게 총 43억5천만 유로를 보상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유럽 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은 화석연료에 따른 회사채 규모가 1천1백1십억 유로를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이에 따른 재무적 위험이 어떤 형태로 유럽을 강타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공기업이 원전과 대부분의 석탄발전소를 운영하므로 사유재산 침해의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한전은 상장된 주식회사이고 6개 발전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원전 및 석탄발전소의 좌초비용을 보상하지 않는 것은 한전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셈이 된다.

좌초비용을 보상하지 않고 에너지전환을 기대하는 것은 배수구를 막고 수도꼭지를 틀면서 물이 잘 흐르도록 기대하는 것과 같다. 들어간 비용이 수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원활하게 나타날 수 있는 법이다. 좌초비용을 보전하는 것은 ‘보상’이지 ‘지원’이나 ‘보조’가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여당에서 발의한 에너지전환지원법(안)은 제목부터 잘못된 것이다.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적폐라도 되듯이 바라보는 것은 묵묵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했던 발전자산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성철환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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