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증권부 나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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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우리나라에서 혁신 기업들을 ‘혁신’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누가 있었나요. 한국의 유망 기업들이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상장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 뿐만 아니라 산업 체질, 투자자 인식 등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쿠팡에 이어 마켓컬리 등 유망 기업들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거래소는 물론 금융당국의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유망 기업들이 국내 증시에 상장될 경우 자본시장 경쟁력 제고는 물론 투자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 기업들의 해외 직상장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배경이다.
국내 혁신기업 입장에서는 지난 3월 뉴욕증시에 상장한 쿠팡이 100조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서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높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으로도 풀이된다. 물론 뉴욕증시에 상장할 경우 국내에 상장하는 것보다 상장 유지 비용이 상당하고, 소송 리스크에도 노출될 수 있는 점은 부담이다. 그러나 미국 증시는 글로벌 자금이 몰려 대규모로 자금을 조달하기가 용이하고, 사업 영역을 글로벌로 확장하는데도 긍정적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평가다.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을 계기로 최근 국회에서는 비상장 기업들을 대상으로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혁신 기업들을 한국 증시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1주당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에서다.
물론 그간 국내 기업들이 정부의 규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은 사실이다. 기업들의 요구사항을 지금이라도 듣고 이를 개선하려는 정치권의 노력은 분명 바람직한 행보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점이 든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제2의 쿠팡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실적은 안 좋지만 글로벌 혁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에게 타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투자환경이 조성돼 있나. 최근 증권가 한 관계자는 혁신 기업의 한국 상장에 대해 "한국 상장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인식, 산업 체질 등 모든 것을 개선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해답은 아닐까. 쿠팡 같은 혁신 기업을 우리나라 증시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거래소, 당국 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인식 개선, 더 나아가 미래 혁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글로벌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쿠팡이 미국에서 100조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우리나라 증시와 산업 전반에 큰 과제를 남긴 것과 같다. 머지 않은 미래에는 혁신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앞다퉈 대한민국에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