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은성수 가상화폐 발언, 왜 뭇매를 맞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5.03 08:12

에너지경제 송재석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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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솔직한 심정’이 2030 세대에서 주목을 받았다. 은 위원장은 지난달 말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가상화폐를 내재가치가 없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고 규정하며 "이건 가상자산이고 (이 시장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은 위원장은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소위 ‘어른’을 자처하며 가상화폐의 위험성을 강조한 발언이지만, 2030 세대에게는 적잖은 상처로 돌아온 모습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은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글이 올라와 불과 일주일도 안돼 14만8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30대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청원인은 은 위원장을 향해 "투자자를 보호해 줄 근거가 없다며 보호에는 발을 빼고, 돈은 벌었으니 세금을 내라는거냐"고 했다. 청원인은 은 위원장의 발언처럼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세상을 본인들 손으로 고칠 기회를 드리니 자진 사퇴하라고 일갈했다.

안타까운 것은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2017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2017년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코인 열풍이 불었을 때였다. A증권사와 B증권사는 비트코인 선물의 시카고상품거래소(CME) 상장을 앞두고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한 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불과 일주일 앞두고 이를 취소했다. 금융위원회가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는 화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비트코인 선물거래도 불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린 것이 원인이었다. 증권사들이 투자설명회를 여는 것 조차 눈치를 볼 정도로 정부는 가상화폐라면 무조건 "NO"를 외치고 있다.

가상화폐 투기열풍을 향해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든 이들을 보면 코인의 메카니즘은 무엇인지, 어떻게 쓰이는지, 향후 전망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특히 최근 코인에 투자한 2030 세대의 대다수는 2017년 말~2018년 초에 불어온 코인 광풍을 놓친 것에 따른 후회도 있는 듯 하다. 당시에는 코인에 투자할 기회를 놓쳤지만, 올해는 기필코 코인에 투자해 자산을 축적하겠다는 울분이 담긴 것이다.

문제는 가상화폐 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다. 현재 2030 세대가 가장 분노하는 지점 중 하나는 가상화폐를 무조건 화폐로 인정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정부 역시 가상화폐 정의와 활용방안, 해외사례 등에 대해 충분한 이해도가 없는 상황에서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철없는 아이로 규정하는 그 ‘어른의 오만함’에 치를 떠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사고와 제도 개선, 성찰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건전한 자본시장과 투자자 보호는 어느 한 순간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코스닥지수만 봐도 그렇다. 코스닥지수는 2000년 닷컴버블 당시 3000선에 육박했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그 다음해인 2001년 500선까지 폭락했다. 이후 당국의 체질 개선 노력과 투자자의 인식 개선 등에 힘입어 무려 10년이 지난 2021년 4월에서야 비로소 1000선을 회복했다. 만일 2000년 닷컴버블 당시 코스닥시장을 투기라고 규정하고, 제도 개선을 도외시했다면 코스닥시장의 발전은 머나먼 일이었을 것이다.

2021년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 전환이 시급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리다"는 안일한 인식은 블록체인 등 신기술의 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미국의 경우 가상자산 발행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연방법 차원에서 규제하고, 유통시장은 개별주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뉴욕주는 2015년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 특화 법률인 비트 라이선스를 제정해 이용자 보호, 공시의무 등을 규제하고 있다. 일본은 가상자산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규제도 하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을 두고 국무조정실, 금융위, 기재부, 한국은행과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범정부적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처럼 우리나라 역시 가상화폐 관련 제도 정비와 불법행위 처단 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위험성을 알리는 것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건전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닦는 것도 바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medias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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