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구동본 에너지환경부장/부국장
한국전력은 국내 최대 공기업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간판기업이다. 지난해 연결기준 자산총액이 무려 203조원, 매출액이 58조원에 이른다. 직원수도 2만3000여명이나 되고 계열사도 12곳이나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 투영된 이 한전의 주가는 실망 그 자체다. 지난 14일 종가가 2만3900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일인 2017년 5월 10일 4만3150원의 반토막에 가깝다. 코스피지수가 그 사이 2270.12에서 3153.32로 무려 38.9%나 오른 것에 비하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시가총액을 보면 15조3429억원으로 지난 1분기 매출(15조753억원)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 2016년 6만3000원으로 최고가를 찍은 뒤 줄곧 내리막이었다.
한전은 현재 김종갑 사장이 이끌고 있다. 김 사장은 주식시장에서 ‘주식투자의 귀재(鬼才)’로 통한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주식투자로만 20억원의 재산을 불렸다. 그런데도 한전 주가에선 그의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김 사장의 3년 임기 공식 만료일인 지난달 12일 한전의 주가는 2만3850원이었다. 그의 취임일인 지난 2018년 4월 13일 한전 종가는 3만 4500원이었다. 무려 30.87%(1만650원)나 떨어졌다. 민간 기업 최고경영자가 이처럼 뚜렷한 주가 역주행을 보였다면 진작 짐을 싸야 했다.
그가 주가를 올리기 위해 노력을 안 한 게 아니다. 김 사장은 취임 당시부터 "두부가 콩보다 싸다"며 발전 연료비 현실화 등을 통한 수익기반 확충에 집중했다. 결국 올해부터 전기요금의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때맞춰 연료비의 주요 항목인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올랐다.
지난해 말 연동제 도입 소식이 알려지자 문재인 정부 들어 곤두박질하던 한전의 주가가 반짝 상승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의 경영 실적이 좋아질 것이란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연동제가 실시되자 한전의 주가는 곧바로 당초 수준으로 돌아왔다. 더구나 한전이 지난해 코로나 상황에서도 4조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나타내 3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는데도 시장은 냉담했다. 당시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를 확인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부는 4.7 재보궐 선거를 앞둔 지난 3월 말 1분기 요금 동결을 발표했다. 연료비 상승 등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있다면서도 인상을 유보했다. 정치적 변수가 제도 운영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연동제 도입 후 첫 요금 조정부터 정부 스스로 제도 자체를 무력화했다. 김 사장의 노력은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주식시장이 이걸 놓칠 리 없었던 것이다.
한전의 전력시장 독점에 대한 국내외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기요금 규제 등 관치(官治)도 여전하다. 정부는 탈원전·탈석탄을 밀어붙이며 발전 효율이 높은 원전과 석탄발전 등 기존 전원 축소를 추진 중이다. 한전 산하 발전 공기업들의 돈 되는 사업을 죄다 줄이겠다는 것이다. 주력사업 교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을 대안으로 내놓았지만 이는 발전 효율과 비용 면에서 기존 전원과 비교가 안된다.
한전의 현재 처지는 진퇴양난이다. 전기요금을 제 때 제대로 올려 수입을 늘릴 수 없고 그렇다고 자회사의 발전사업을 자유롭게 벌이도록 해 수익을 높일 수도 없다. 그러면서도 잔뜩 덤터기만 쓰고 있다. 한전 공대 설립 등 정부의 정책사업을 위해 수시로 동원된다.
한전이 비상장기업이라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된 이상 경영의 자율성 및 투명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런 기본이 안 된다면 주식시장 거래의 자격을 잃은 것이다. 투자자의 손실이 있을 수 있어서다. 특히 뉴욕 증시에도 상장된 한전의 경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투자자들에게 한전의 이런 한계를 알아서 투자하라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걸 문제삼아 "한전에 대한 정부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아무리 일부라고 해도 이 의원의 그런 지적조차도 고깝게 듣는 여당의 인식이 한심하다. 여권이 4.7 재보선 참패를 보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사정이 이렇다면 한전이 오는 28일 주주총회에서 선출될 정승일 신임 사장의 취임을 계기로 주식시장에서 컨벤션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