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에교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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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에교협 공동대표 |
새 사령탑을 맞은 한전 앞에는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놓여 있다. 지난 5년 사이 주가는 6만원에서 2만 5000원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부채는 37조 원이나 늘어났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정 사장의 임기가 끝나는 2024년에는 부채가 159조 원을 넘어서게 된다. 우량 공기업이었던 한전이 탈원전 5년 만에 부채비율 234%의 부실징후기업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서두르면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한다. 무차별적인 탈원전·탈석탄·탄소중립·그린뉴딜을 감당하기위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2030년까지 신재생 설비와 송배전망 확충에 35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각종 신재생 보조금과 탄소배출권 비용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2조 5000억이었던 환경급전 비용이 2024년에는 2배인 5조 원으로 늘어난다. 그렇다고 생색이 나는 일도 아니다.
고성 산불처럼 전국의 송배전 설비 노후화에 의한 사고에도 대비해야 한다. 원전과 석탄발전소의 조기 폐쇄에 따른 영업 손실도 엄청나다. 한전공사법을 무시한 한전공대 설립에 필요한 1조원도 부담스러운데 매년 지출해야 하는 운영비도 500억원이 넘는다. 물론 세계적 에너지 특화 대학의 꿈은 부질없는 것이다. 40%의 지분을 가진 국내외 민간 주주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한전의 주 수입원인 전기요금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다.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전기요금의 연료비연동제는 보궐선거 이후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탈원전으로 원전 수출의 꿈도 날아가 버렸는데 이제는 대통령이 말 한 마디에 석탄발전 수출의 길도 막혀 버렸다. 해외 영업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있다. 결국 신임 사장은 그동안 한전의 검증된 전력생산기술을 통째로 폐기하고, 멀쩡한 발전사들을 해체하는 악역을 떠맡게 됐다.
신재생 설비의 확충이 한전의 위기 탈출을 보장해줄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도 없다.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거름 지고 장에 따라가서는 아무 것도 챙길 수 없다. 일조량과 풍량이 턱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태양광·풍력의 경제성은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환경파괴·농지훼손·주민갈등이 심각하게 증폭되고 있다.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전력섬’인 상황을 무시하고 무작정 설치해놓은 태양광·풍력 설비의 부작용도 심각하다. ‘탄소제로섬’으로 만들겠다던 제주도는 이미 과도한 태양광·풍력 설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호기롭게 외쳤던 ESS(에너지저장장치)도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영세 태양광·풍력·수소 사업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감당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맹목적인 몸집 불리기도 위기 극복의 출구가 될 수 없다. 평균 가동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규모 해상풍력에 거금을 쏟아 부을 만큼 한전의 재무상태가 튼튼한 것도 아니다. 세계 최대라는 해상풍력의 규모가 한전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한전이 신재생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태양광·풍력에 직접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 착각이다. 한전의 신재생 발전 사업 참여는 제도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거대 공기업인 한전은 전국 규모의 송배전망 건설·운영을 전담하고, 발전 사업은 민영화시켜서 경쟁을 촉진시킨다는 것이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핵심이었다. 한전산업개발의 자회사 편입과 한전의 신재생 발전 참여는 그런 개혁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황당한 시도다.
노조와의 소통도 중요한 과제다. 지난 5년 동안 에너지자원실장·가스공사 사장·산업부 차관에 이어 한전 사장으로 이어진 정 사장의 경력은 화려하지만 공직자윤리법의 취지에는 맞지 않는 ‘관피아’라는 논란은 피할 수 없다. 한전의 경영을 악화시킨 탈원전·탈석탄 정책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진두지휘했던 산업부 차관 경력에 대해서도 노조가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전력산업에 대한 철학과 조직운영에서 노조의 공감을 얻음으로써 조직안정에도 균열이 없어야 할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경제성을 인정받은 우리 원전 기술의 포기는 탄소중립을 원하는 인류 사회 전체에 실망스러운 손실이다. 석탄발전의 수출 금지도 저개발국의 성장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정승일 신임 사장이 현명한 선택으로 한전에 새 바람을 일으켜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