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가상화폐업계 견제하랴 곤두선 신경…피곤한 은행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8.08 11:10

은행권 자체 대환대출 플랫폼 구축 추진



"낮은 성공가능성 점치지만 핀테크에 종속될 순 없어"



금융당국 방치 속 은행-가상화폐 업계 '트래블룰' 충돌

빅데이터

[에너지경제신문 송두리 기자] 은행들이 독자적인 대환대출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하며 빅테크·핀테크 기업에 종속되지 않는 다른 길을 걷기로 했지만 자칫하면 무용지물 플랫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직 기술력이 담보되지 않은 데다 은행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질 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가상자산(가상화폐)거래소 심사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은행들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적이자 동지’로 여겨지는 핀테크 기업과 가상화폐 업계란 새로운 관계가 등장하면서 이 가운데 놓인 은행들 심경은 복잡해지고 있다.

8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대환대출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대환대출 플랫폼은 금융위원회가 올초 올해 업무계획에서 금융권을 통합해 10월에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은행을 비롯해 2금융권 등 모든 금융사가 참여하는데, 금융결제원이 구축한 인프라 위에 핀테크 기업이 만든 플랫폼을 이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하지만 은행권은 핀테크 기업의 플랫폼을 이용할 경우 과도한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고 은행들이 핀테크 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결국 은행권은 은행연합회 중심으로 은행들만 참여하는 독자적인 대환대출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으나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은행들만 참여하는 대환대출 플랫폼 자체가 당초 금융당국이 추진했던 금융권 통합의 성격과는 거리가 먼 데다, 보유 기술력으로 플랫폼을 구축하기는 어려워 외부 용역이 필요하다.

은행들 대부분은 독자적인 플랫폼에 긍정적인 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대환대출 플랫폼 자체가 은행들에게 부담이라 막상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질 지 장담하기도 어렵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대환대출 플랫폼의 경우 금융사 간 금리와 한도 경쟁을 부추길 수 있는데, 향후에는 대환 때 금리는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이용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은행권의 모든 대출상품을 플랫폼에 모두 올리기도 어려워 이용자들이 은행을 이용할 때만큼의 만족감을 얻을 수 없을 수도 있다. 이미 시중은행에서 다양한 대출 상품을 판매하고 있고 소비자에게 적합한 맞춤 상품을 추천해주고 있는데, 은행들이 플랫폼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앞서 은행권이 만든 블록체인 기반의 인증 서비스인 ‘뱅크사인’이 무용지물이 된 것처럼 이번 플랫폼 구축 사업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미 어느 정도 미래가 예견된 상황인데도 빅테크·핀테크 기업의 대환대출 플랫폼을 이용하기에도 부담이 큰 만큼 독자적인 플랫폼 구축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은행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가상화폐 업계까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은행권이 가상화폐거래소의 위험평가 의무를 쥐게 되면서 은행권이 주도권을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은행권의 송곳 심사에 가상화폐 업계와 충돌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NH농협은행이 실명계좌 제휴 관계인 가상화폐거래소 빗썸과 코인원에 트래블룰 시스템을 구축할 때까지 가상화폐 이동을 중지할 것을 제안한 것이 문제가 됐다. 트래블룰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가상화폐 전송 때 송·수신자 정보를 모두 수집해야 하는 의무를 사업자인 거래소에 부과한 규제인데, 국내에서는 특정금융정보법에서 규정한다. 금융당국은 트래블룰 의무 검사·감독을 1년 미뤄 내년 3월 25일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단 농협은행은 특금법에서 규정된 것처럼 9월 25일부터 트래블룰을 시행하는 것이 맞는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은행과 가상화폐 업계 간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시장에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고 위험 책임을 은행권에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은 가상화폐거래소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더욱 촘촘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시장에 손을 놓고 있고 은행들의 면책 요구도 거부해 은행들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거래소 검증 과정부터 깐깐하게 할 수밖에 없다"며 "은행들이 갑질을 부린다고 보는 시각에 억울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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