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뱅, MZ세대 호평...금융사들 '플랫폼 사업' 총력
카뱅 '공급자시각'으로 '소비자 경험' UP...26주적금 대표적
"금융사, 기울어진 운동 지적...책임회피 수단 악용 NO"
전문경영인 장수 사례 속속..."중장기 계획수립 유리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
[편집자 주]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가 플랫폼을 무기로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기존 시중은행들도 기존의 성공방식만으로 미래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에너지경제신문은 국내 금융사들이 디지털 전략과 관련해 플랫폼 경쟁력을 지금보다 더 상(上)위권으로 끌어올리고, 세상에 없는 플랫폼 모델을 상상(想像)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진단해본다.
<글 싣는 순서>
1) 배달, 알뜰폰...금융사, ‘금융인이 만든 비금융업’ 틀을 깨라
2) 카카오뱅크에 고전하는 금융株...000에 달렸다
3) ‘플랫폼 강화’ 외치는 지주사 회장들...이사회 ‘모험’을 용인하라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신한금융지주는 이달 1일 온라인으로 열린 ‘그룹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그룹의 새 비전을 ‘더 쉽고 편안한, 더 새로운 금융’으로 선포했다. 이 자리에서 조용병 회장은 "고객이 바라는 금융의 진정한 모습에 맞춰 신한이 달성해야 할 미래의 꿈을 다시 정렬할 때"라고 강조했다. 기존 오프라인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만으로는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고객들 눈높이에 맞춘 독창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신한금융 뿐만 아니라 ‘디지털 전략 강화’는 국내 시중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 업권을 가리지 않고 전 금융사의 필수적인 과제이자 정답을 알 수 없는 과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금융사들이 빅테크의 진정한 ‘대항마’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CEO는 물론 CEO를 평가하는 이사회 역시 디지털 사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10년 뒤 금융사의 모습은 현재의 실적을 넘어 CEO, 임직원들의 창의성이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이사회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침없는 빅테크...금융사 CEO, 실적-디지털 전략 등 부담 막중
9일 금융권에 따르면 플랫폼 비즈니스는 그간 금융사들이 황금기를 누려온 ‘금융사업’ 혹은 금융사들이 직면한 ‘리스크’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이에 따라 해당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CEO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 금융사들이 펼치던 해외사업과 같은 신규 사업의 경우 그 사업 기반이 금융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플랫폼 사업은 ‘공급자 시각’이 아닌 ‘소비자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금융사들이 영위하던 사업들과 차이가 크다. 만일 기존 금융사들이 관점을 바꾸지 않고 현재 자리에 안주할 경우 잠재고객인 MZ세대에 대한 주도권을 빅테크에 빼앗길 수 있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시행착오 용인, ‘모험심’ 필수
플랫폼으로 MZ세대를 사로잡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카카오뱅크다. 단적인 예로 카카오뱅크가 작년부터 이마트, 마켓컬리, SPC와 손잡고 만든 26주 적금의 계좌 개설 건수는 총 120만좌를 돌파했다. 카카오뱅크가 짧은 시간에 많은 고객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금융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있어서 ‘소비자의 경험’을 가장 중시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특히 MZ세대 입장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어떠한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빅테크, 시중은행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어떠한 기업이 빨리, 얼마나 더 쉬운 방법으로 기존에 소비자들이 느꼈던 불편함을 개선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존 은행에서 취급하던 상품과 서비스를 그대로 모바일에 디지털화한 것을 디지털 성과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며 "상품, 서비스 특성이 과거 지점에서 취급하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행동 심리학적 관점에서 고객의 입장을 생각하고 소비자의 고충을 찾아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금융사 CEO는 실적뿐만 아니라 향후 해당 금융사가 미래 금융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정에서 CEO를 평가하는 이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대다수의 기업들이 중장기적인 비전, 사업 계획보다 실적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질적 성장보다 ‘양적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플랫폼 사업은 고객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향후 잠재 고객이 될 MZ세대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아야 한다. 즉 기존에 금융사들이 영위한 사업들과 전혀 다른 영역인 만큼 이사회 역시 보다 과감한 모험심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이러한 역량을 가진 CEO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사 한 관계자는 "카카오뱅크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주식계좌개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금융투자도 모바일로 쉽고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며 "이러한 서비스가 성공한 것은 MZ세대들이 투자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고, MZ세대 관점에서 편리하게 할 수 있는 투자 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행보는 플랫폼으로 고객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금이 필요하다는 기존 기업들의 인식을 깬 것"이라며 "마켓컬리, 이마트 등 다른 기업들도 카카오뱅크와 함께 제휴적금을 만드는 등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카카오뱅크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CEO 디지털 전략에 방해?..."바뀐 시대 흐름 인정해야"
일각에서는 CEO의 경우 2년 혹은 3년 단위로 이사회로부터 성과를 평가받는 만큼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은행 내부적으로는 금융당국이 인터넷전문은행, 빅테크 등에 대해 일방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를 두고 금융권 플랫폼 사업에 정통한 업계 전문가들은 금융사들이 금융 플랫폼을 강화하거나 빅테크와 경쟁하는데 있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책임 회피’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빅테크가 당국의 일방적인 규제 완화로 인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과거 금융사들의 황금기도 금융사 역량보다 ‘당국의 힘’이 컸다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는 진단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 기업들의 토대는 IT기업이기 때문에 고객이나 금융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며 "1년에 영업이익만 4조원이 넘는 금융지주사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과거와 달리 CEO가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데 한층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CEO의 연임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1년 혹은 임기 내의 실적이 중요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은행, 증권 등 금융사에서 오너가 아님에도 오랜 기간 장수하는 CEO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재임 기간 금융사고 등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고, CEO가 임기 내 보여준 비전, 성과가 탁월할 경우 연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통상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디지털 사업과 같은 신사업을 추진할 때는 무엇보다 CEO의 의사결정과 판단이 중요하다"며 "CEO가 이사회나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금융플랫폼의 중요성, 향후 발전 방향, 투자비용 등을 설득할 경우 이사회나 주주도 CEO의 의견과 생각들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사 CEO, 혹은 임직원들이 디지털 전략을 수립할 때 비(非)금융인의 ‘상상력’을 활용하는 것도 플랫폼을 고도화하는데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내놓은 플랫폼 전략들은 ‘금융인이 만든 비금융사업’, 다시 말해 금융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하려면 비금융인과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오너가 아님에도 오랜 기간 임기를 유지하는 전문경영인들은 경영 능력뿐만 아니라 미래 비전이 탁월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금융사가 금융플랫폼, 디지털 금융과 관련해 중장기 성장 전략을 세울 때는 기존 금융사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전략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