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없는 원전해체, 비방사선 시설 선제적 해체 허용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9.28 16:06

- 고리1호기, 월성1호기 해체해야 하지만 고준위방폐장 등 여전히 준비 안돼
- 한수원 "원전업계 생태계 유지 위해 비방사선 시설이라도 해체 시작해야"
- "현재까지 원전 해체 과정에서 안전 사고가 발생한 경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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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해체 현장.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방사선 및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영구정지 원전 시설을 원자로에 앞서 해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원전업계와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19일 우리나라 최초 상업용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을 선언했다. 이어 원전해체 산업 육성을 강조했지만 임기가 끝나가는 현 시점까지 원전 해체는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19년 4월 원전해체산업 육성전략 발표를 통해 원전해체를 새로운 먹거리로 육성하고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 톱5(2035년까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0% 달성)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중단되고 해외 수출이 막히면서 국내 원전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원전 업계가 어려움을 호소하자 정부는 원전해체 산업 육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원전 해체 산업이 아직 걸음마 단계인 데다가 규모가 작아 기존 산업을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원전 전문가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주요 원전 협력업체가 일감이 없어 문을 닫으면, 원전 생태계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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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6월 19일 40년의 운영을 마치고 영구정지에 들어간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전경. 연합뉴스

현재 고리 1호기는 영구정지 4년을 맞이하고 있고 월성1호기도 영구정지 되어 해체를 앞두고 있다. 현행법상으로는 앞으로도 수년 후에야 해체를 시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원전해체에 앞서 필요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도 여전히 진전이 없어 더더욱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28일 ‘비방사선 시설 선제적 해체 필요성 및 안전대책 수립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양 의원은 "현행법 상 원전 영구정지 후 7년의 기간이 소요된다"며 "원전 해체 산업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방사선 및 방사능에 오염이 되지 않은 비방사선 시설에 대해서는 사전 철거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 업계에서는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과정 중 발생한 안전사고가 없는 점 등을 감안해 방사선 및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시설에 대해서는 원자로 및 관계시설의 해체 이전에 해체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 정비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운영 중인 원전 약 450기 중 운영 연수가 30년 이상 된 원전은 67.8% 가량인 305기로, 202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글로벌 원전해체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경제 컨설팅기업 ‘베이츠 화이트’에 따르면 세계 원전 해체 시장 규모는 549조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원전 해체실적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등 3개국뿐이며 영구정지된 원전 173기 중 해체가 완료된 원전은 21개에 불과하다.

토론회

▲양정숙 의원실이 28일 ‘비방사선 시설 선제적 해체 필요성 및 안전대책 수립 정책토론회’를 비대면으로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신영호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전문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들은 원전 영구정지와 해체 사이에 비방사선 분야 선제 해체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원자력안전법에 묶여 고리1호기 정지 후 4년 동안 아무 것도 진행된 게 없다. 과도기에 할 수 있는 활동을 해 원전해체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철 한국수력원자력 원전사후관리처 해체사업부장은 "해체실적(Track Record)을 가진 검증된 기업만이 시장 진입 가능한 글로벌 해체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여, 선제적 비방사성 시설의 해체를 통해 해체실적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한 해외시장 진입의 기회 확보가 가능하다"며 "그러나 현행 법·제도하에서는 해체승인 전(최소 7년)까지 실질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해체공사도 착수가 불가하다. 원전건설, 운영시장 감소 후 해체시장 형성 지연으로 기존 업체들의 생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비방사성 시설의 해체시 개발 및 축적된 해체 기술을 현장실증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해 해체기술 고도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수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전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경험이 풍부하고 현재까지 원전 해체 과정에서 안전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없다"며 "안전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국가적 추진 목표와 일정에 맞게 선별적·선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원전 해체에는 왕도가 없다"며 "전세계 해체 경향을 파악하고 그 흐름의 배경이 되는 원칙과 철학에 주목해 국내에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환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과장은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아무 조치 없이 비상사선 시설이라고 할 순 없다"며 "그동안 오염이력이라던지 특성조사가 이뤄지고 나서, 이 시설이 과연 해당되는가 이런 부분의 평가를 통해 정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같은 경우 사실 사업자에 대한 국민의 수용성이 외국과는 상당히 다르다"며 "해체계획 승인과 관련해서는 2015년에 입법이 됐고 아직 최종해체계획과 관련해 사업자들도 경험이 없고 규제기관도 경험이 없다. 앞으로 산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양정숙 의원은 "이번 토론을 시작으로 이해당사자들과 원안위, 인근지역주민 등 의견을 모아 안전과 경제성, 원전 산업 생태계 유지를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법안 마련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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