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바뀐 '3차 공판'...쟁점은 '교보생명 부당·조작행위 규명'
'신회장-FI 간 메일' 증거자료...박 부사장도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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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
[에너지경제신문 김건우 기자] 교보생명 가치평가 허위보고 혐의 관련 안진회계법인·어피니티컨소시엄(FI) 소속 관계자들에 대한 3차 공판에서 박진호 교보생명 부사장을 당황케 한 변호인측의 거센 반대신문이 이어졌다. 특히 박 부사장의 이전 증언들과 배치되는 증거자료가 제시되고, 박 부사장도 몰랐던 ‘신회장-FI 간 지분공동매각 정황 이메일’이 공개되는 등 재판정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는 날카로운 검증이 오후 내내 이뤄졌다.
당초 공판은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 행위가 적법했는지’가 쟁점이었지만, 3차 공판에서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왜 가치평가기관 선임, IPO 추진 등 주주간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는지, 또 풋옵션을 무효화하기 위한 조작ㆍ부당행위가 있었는지’로 쟁점이 옮겨갔다.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2부는 3차 공판의 ‘검사 측 신문’을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변호인 측 반대신문’을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재했다. 증인은 오전 오후 모두 박진호 교보생명 부사장 1인으로 진행됐다.
오전 검사측 신문 과정에서 박 부사장은 재차 FI 측의 가치평가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 갔다. 다만 검사 측은 박 부사장에게 어피니티가 안진회계법인에 부적절한 평가방법을 사용하도록 관여했다는 증거가 있는지 물었고, 박 부사장은 ‘정황은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또한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보고서에 FI 측이 보낸 커버레터가 사용된 점을 들어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보고서 작성에 FI가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오후 신문에서는 변호인 측의 거센 공세가 시작됐다. 신 회장이 풋옵션을 분쟁화·무효화하기 위한 조작·부당 행위를 저질렀는지 여부가 주된 쟁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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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
노조위원장 ‘진정 사주’ 의혹, 박 부사장도 ‘처음 본 메일 증거’...반전의 연속
변호인 측은 먼저 2019년 당시 이홍구 교보생명 노조위원장이 안진회계법인과 FI의 유착관계를 의심해 서울중앙지검에 진정한 것에 교보생명이 개입했다는 정황자료를 제시했다. 이른바 ‘진정 사주’ 의혹인 셈이다. 변호인 측은 이 노조위원장이 검찰에 제출한 5장의 첨부자료와 1년 후 교보생명이 FI 고발에 활용한 문서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동일한 문서임을 밝혔다,
변호인 측은 "박 부사장은 해당 문건을 교보생명 담당부서에서 중개문서로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서도, 신 회장을 비롯해 자신과 담당부서 직원들은 노조위원장에게 유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며 "누군가 의도적으로 문서 일부를 진정인에게 제공한 게 분명하지 않나"고 물었다.
또한 변호인 측은 신 회장이 애초에 주주 간 계약을 이행할 의지가 없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신 회장이 FI 측에 풋옵션 행사의 대안으로 ‘지분 공동 매각’을 제안한 것에 대한 ‘FI 측의 답장 메일’이 증거로 등장했다. FI 측은 답장 메일을 통해 "신회장이 제안한 ‘지분 공동 매각’ 조율안을 수용할 수 있다"며 "교보생명이 가지고 있는 가치평가에 관한 정보를 요청한다"고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신 회장은 가치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으면서 풋옵션 무효 주장을 이어갔다.
이는 박 부사장이 ‘안진이 공정하게 가치평가를 수행했더라면 신 회장 역시 그것을 수용하거나 다른 투자자를 모집하는 등 풋옵션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을 것’이라고 말한 증언과 배치되는 셈이다. 변호인 측은 박 부사장에게 해당 메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물었고, 박 부사장은 ‘오늘 처음 알았다’고 답했다.
박 부사장의 ‘오역’은 고의?...변호인 "애초에 IPO 의지 없어 조작한 것 아닌가"
또한 기업공개(IPO)에 관한 박 부사장의 증언도 뒤집혔다. 박 부사장은 앞서 "교보생명이 FI와의 약속대로 2018년 12월에 IPO를 ‘추진결의’ 했음에도 FI가 약속을 어기고 풋옵션을 행사했다’고 말한 바 있다. 교보생명은 IPO를 성실히 추진함으로써 주주 간 계약 이행 노력을 다했음에도 FI가 먼저 약속을 깼다는 의미이다.
변호인 측은 "FI 측이 당초 신 회장에게 보낸 메일의 원문에는 ‘12월 말까지 IPO 최종결의를 해달라’고 요청했었다"며 "원문의 ‘final go or no decision’을 어떻게 ‘최종결의’가 아닌 ‘추진결의’로 해석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추진결의는 교보생명의 자체 IPO 추진 단계 중 1단계에 해당해 FI 측이 요청한 최종결의와는 괴리가 큰 해석이다.
이 대목에서 박 부사장은 ‘원문에 대한 해석을 잘못한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변호인 측은 메일 원문에 ‘최종결의로 Statement for the IPO(증권신고서)를 발행해 달라’고 명확히 표기됐기 때문에 증권신고서 발행과 ‘추진결의’를 연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박 부사장은 Statement for the IPO를 ‘증권신고서’가 아닌 ‘상장심사’로 오역해 최종결의가 아닌 추진결의로 착각했다는 해명을 했다.
이에 변호인 측은 "부사장께서 미국에서 금융을 공부하시기까지 했는데, 일반인이 봐도 착각하지 않을 용어를 잘못 해석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모든 문장과 단어가 동일한데 ‘증권신고서’만 ‘상장심사’로 오역한 것은 의도적으로 조작하기 위함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 4시간에 걸쳐 FI 측 변호인의 공세가 계속됐음에도, 변호인단 중 한 명의 신문도 다 끝내지 못한 채 시간부족으로 공판이 중단됐다. 박 부사장은 4차 공판에도 증인으로 출석해 FI 측의 공세를 받게 될 전망이다.
ohtdue@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