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탄소중립, 못 버티는 기업은 탈락?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10.11 14:47

에너지경제 구동본(에너지환경부장/부국장)

80.jpg

 

"이번 게임은 에너지전환, 못 버티는 전원(電源)은 탈락. 다음 게임은 탄소중립, 못 버티는 기업은 탈락."

요즘 글로벌 선풍을 일으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해 에너지 분야에 대입해보면 이렇지 않을까. 드라마엔 장년층 이상이라면 어릴 때 한 번쯤 해봤을 추억의 전통 게임들이 다수 등장한다.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뽑기(달고나)만들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줄다리기, 징검다리 건너기 등.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바탕으로 만든 이 드라마가 최근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면서 극찬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란 말이 실감 난다.

이 드라마는 극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 목숨을 걸고 일확천금의 상금으로 기사회생을 노리는 장면들을 그리고 있다. 이게 과연 우리 에너지 분야가 직면한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에너지 정책은 정치 이슈화한 지 이미 오래돼 갈등과 대립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전환에 이어 2050 탄소중립까지 추진하면서 깨끗한 에너지 소비, 기후변화 대응의 의지와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발전·철강·화학 등 산업계는 아우성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글로벌 무한 경쟁에서 가뜩이나 버거워하는데 부담까지 더해지니 위기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에 원자력·석탄발전업계는 속이 탄다. 이들 업계가 대부분 공기업들이어서 대놓고 반발을 못해서 그렇지 속으론 부글부글 끓는다. 노동조합을 통해 흘러나오는 불만의 일단들이 그걸 확인해준다.

신규 석탄화력 발전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민간 발전사들이지만 정부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 겉으로 표현만 안할 뿐 불만이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다. 정부가 전력 수급난에 아쉬워 신규 석탄발전을 허가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발전기를 다 지어가니 ‘탈석탄’ 핑계 대며 신규 발전소까지 없애려 하느냐는 것이다. 민간 발전사들은 발전소 건설중단, 폐쇄, 가동감축 등에 대비해 벌써부터 대규모 소송전 준비에 들어갔다. 지금은 잠자코 있지만 신규 석탄발전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 하게 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자세다. 신규 석탄발전소 6기 총 직접 투자비만 약 12조원 정도라고 한다. 신규 석탄발전소 좌초 땐 약 18조원의 국가 상대 배상소송까지 예고됐다.

산업계도 탄소중립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과속추진에 따른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국내 철강업계의 2050년 탄소중립 비용이 총 68조원으로 추산됐다. 포스코가 현재 가동 중인 석탄 사용 9개 고로(高爐)를 수소 환원 설비로 대체, 수소로 쇳물을 뽑는데 총 54조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막무가내다. 탄소중립의 주술에 빠진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 8일 대통령 소속 탄소중립위원회에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정안으로 2018년 대비 40% 감축안을 제시했다. 현행 NDC 26.3%보다 무려 52.1%(13.7%포인트)를 높인 것이다. 지난 8월 진통 끝에 가까스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탄소중립기본법’의 하한선 35%에 비해서도 5% 포인트 상향된 것이다. 2030년 NDC 40%안을 연 평균 감축률로 환산할 경우 4.71%로 유럽연합(EU·1.98%), 미국(2.81%), 일본(3.56%) 등 주요국과 비교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국토 및 자연환경 등에서 신재생에너지 확대 여건이 이들 주요국보다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또 연도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에 달한 것으로 아직 확인되지도 않았다. 독일·영국 등 다수 유럽국가가 1990년, 미국이 2007년, 일본이 2013년쯤 온실가스 배출 정점에 이른 뒤 현재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다르다. 주력산업 구조도 에너지 다(多)배출 중심이다. 2030년 NDC 수정안이 최종 결정되면 전환(발전) 부문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보다 44.4%, 산업부문은 14.5%를 각각 줄여야 한다.

에너지와 산업시설을 모두 깨끗하고 안전한 것으로 바꾸자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를 현실적인 눈으로 보면 불가능에 가깝다. 특정 이념이나 주장에 매몰된 허상이나 다름없다. 비현실적인 앞길이 뻔히 보이는데 오기로 국정을 이끌 순 없다. 예컨대 국제사회에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NDC를 글로벌 기준에 가깝게 발표해놓고 그걸 지키지 못하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된다.

국가 지도자에겐 미래에 대한 설계도 중요한 과제다. 다만 현재의 관점에서 어느 정도 현실화가 가능하고 설계자가 그 기반을 제대로 마련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권 임기 말에 책임지지 못하면서 공허한 선언 또는 발표를 남발하는 것은 차기 정권에 대한 도리도 아닐 뿐만 아니라 나라를 멍들게 한다.

이 정권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대해 기업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고 결코 쉽지 않지만 우리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무책임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정 지지층의 표를 결집시키는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을 때려 지지층 표를 얻겠다는 얄팍한 계산 아니고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부든 기업이든 어떤 조직도 정책 또는 사업을 추진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이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목표 달성은 어려울수록 이해 관계자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고 또 이들을 설득해 사격에서 영점 조준하는 방식으로 가도 될까 말까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에너지전환, 탄소중립 등 정책을 추진하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이해 당사자의 의견수렴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모든 게 일방통행·일사천리다. 50년 전 권위주의시대 새마을운동 추진 때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검찰 수사 내용을 보면 정부 조직 내에서조차 민주적 의사소통에 실패했다. 공직사회에서 부당한 지시라도 상명하복 원칙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분명하게 드러났다.

탄소중립 기관차격인 탄소중립위원회는 출범 당시부터 중립성 의문이 제기됐다. 시민 및 환경 단체 등 친정부 단체 인사 위주의 편향적 구성이란 지적 때문이다. 이런 탄소중립위 관련 제 발에 발등 찍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28일 어렵사리 마련된 탄소중립위와 산업계의 간담회가 환경단체 ‘기후위기비상행동’의 저지로 무산됐다. 이 단체가"2030 탄소감축 발목을 잡는 산업계를 규탄한다" 등 현수막을 들고 회의장 입장을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산업계가 탄소중립 관련 의견을 낼 기회조차 막힌 것이다.

또 그 이틀 뒤엔 탄소중립위 4대 종단 민간위원이 동반 사퇴했다. 정부의 탄소중립 의지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탄소중립위가 내부 균열 양상을 보인 것이다. 편향성 논란에 구색 맞추기용이란 비판까지 들었던 탄소중립위가 믿었던 내부 인사들의 반발로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친정부 성향 시민·환경·종교 등 단체에 탄소중립의 기대감을 지나치게 높여 놓은 데 있다. 그러면서도 탄소중립의 핵심 주체인 산업계 의견을 외면했다. 그간 ‘대기업 때리면 정치자금이든 표든 얻을 수 있다’는 천박한 반(反)기업 정서에 기울어 있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권이 맨 날 되뇌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헛구호일 뿐이다. 정권에서 자승자박에 자중지란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도둑질도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한다. 이 정권의 에너지정책을 보면 너무나 안이하고 한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 위기 조짐이 심상치 않다. 모두가 바짝 긴장한 분위기다. 기업은 초비상이다. 산업 및 무역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펼치고 있다. 중국과 인도, 유럽지역 등을 중심으로 겪고 있는 전력대란의 충격파도 갈수록 커진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탄소중립과 같은 글로벌 산업 또는 기후대응 표준을 만들기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 맞춘 토종산업 구조를 갖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징어게임’이 그 가능성을 입증한 것 아닌가. 

구동본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