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기회와 도전] 바람의 나라 덴마크, 풍력의 섬을 품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10.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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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롤란드 섬에 위치한 풍력발전기.


<글 싣는 순서>
<1회> 산업계, ‘게임 체인저’ 변신 박차
<2회> 탄소중립 시대의 새 기회 배출권 거래
<3회> 생활 속 실천 탄소중립 거버넌스 확립
<4회> 발전부문의 에너지 전환
<5-1회> [르포] 풍력발전 메카 덴마크
<5-2회> [인터뷰] 덴 요르겐센 덴마크 기후에너지부 장관
<6회> [르포]산업혁신 모델 독일


[에너지경제신문 / 코펜하겐 = 김연숙 기자] 지난 2019년 10월 덴마크 코펜하겐 인접 프레데릭스버그 시청에서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해상풍력 특별보고서가 발표됐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이 이곳에서 해상풍력 특별보고서를 발표한 이유는 1991년 덴마크가 ‘세계 최초로 해상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한 국가’라는 특별함 때문이다.

‘바람의 나라’ 덴마크. 바람은 데르센의 인어공주 못지않게 덴마크의 주요 상징이다. 그 바람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덴마크 대표 도시는 롤란드 섬이다. 덴마크 남부의 이 섬은 덴마크 신재생 에너지의 집합소로 불린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두 시간여를 달려가면 덴마크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롤란드에 닿을 수 있다.

"원래는 코펜하겐에서 롤란드 섬까지 가는 길 곳곳에서 풍력발전기를 볼 수 있어요." 덴마크 이민 1세대로 현지에서 40년 넘게 살아 온 정명희(62)씨의 말이다.

코펜하겐에서 롤란드 섬까지 가는 길, 고속도로 양 옆으로 드넓은 사탕무 밭이 이어졌다. 초록의 사탕무 밭 저편에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시야를 가리는 것은 안개였다.

"덴마크는 1년에 160일 이상 비가 오는 나라예요. 지금은 안개가 끼어 보이지 않지만 롤란드 섬에 도착하면 다를 거예요" 정명희 씨의 말을 위로와 기대 삼아 계속 달렸다.

 

에너지 자급도시 롤란드 섬…조선업 쇠퇴 고통서 희망의 빛 찾아

 


덴마크에서 풍력, 바이오매스, 바이오가스, 수소연료전지 등 온갖 신재생에너지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곳이 롤란드 섬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섬 전체 인구가 사용하고도 남아 잉여 전력을 독일·스웨덴 등 인근 국가로 수출하고 있다.

892㎢의 크기에 인구 5만 여명이 살고 있는 롤란드 섬이 에너지 자급자족 도시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덴마크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1980년대 덴마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조선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조선소가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덴마크는 높은 실업률과 경제적인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롤란드 섬 주민들도 이러한 고통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롤란드 섬에 희망의 빛을 비추게 한 것은 바람의 힘이었다. 1980년대부터 롤란드 지방에 들어선 풍력발전기는 덴마크에서는 최초라고 할 수 있다.

해상풍력발전 단지가 덴마크 내 처음으로 건설된 곳도 바로 롤란드 섬 빈드비(Vindeby) 마을의 해안가이다. 근해 수심이 얕고 지형이 평평하며 일정한 바람이 불어주는 롤란드 섬은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하는데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1991년 빈드비 해상풍력발전단지에 450KW급 풍력발전기 11대가 건설 된 것을 시작으로 롤란드 섬에서 해상 풍력발전산업은 급성장세를 보이게 된다. 2003년 완공된 덴마크 최대급의 풍력발전 단지인 니스테드(Nysted)의 경우 24㎢의 면적에 72기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돼 연간 60만MW 이상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롤란드의 해상 풍력발전산업은 고용창출과 더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1999년 롤란드 나크스코브에 자리 잡은 베스타스(VESTAS) 풍력발전기 날개 공장이 인근 주민 1만5000여명의 5%에 해당되는 700여명을 고용했다. 특히 VESTAS 날개 공장의 경우 연관 산업을 포함해 롤란드 섬 주민 2000여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통해 롤란드섬은 과거 40%에 이르던 실업률을 4%대로 낮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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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란드 섬에서는 수십기의 발전기가 밀집해 있는 거대 풍력단지는 볼 수 없다. 다만 섬 곳곳에 10여기 남짓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돼 있어 주변 전력공급을 책임지고 있다.


 

덴마크 전력 소비 46% 차지하는 풍력…13년 새 두 배 이상 증가 

 


덴마크 에너지청이 발표한 ‘2020년 덴마크 환경·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덴마크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력공급용량이 2018년 약 7000MW에서 2030년 1만8000MW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부터 2030년까지 △4300MW 규모의 해상풍력 △1700MW 육상풍력 △5500MW 규모의 태양광 설비를 확대할 예정이다.

해상풍력과 관련해서는 최소 7개의 대규모 단지가 건설된다. 이를 통해 2030년 덴마크 에너지 생산에서 40% 이상을 해상풍력이 차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육상풍력의 경우 구형 터빈을 보다 효율적인 터빈으로 교체해 현재 4200개의 터빈이 3900개로 소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덴마크 전력 소비의 46%를 육상·해상 풍력으로 공급한다. 2008년 19.3%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올해 풍력발전 총 설비용량은 6891MW(육상 4586MW+해상 2305MW), 연말까지 총 1000MW 해상단지(2개) 및 2030년까지 2400MW 해상단지(3개)가 추가 건설될 예정이다.

발전기 숫자는 지난해 약 6200기(2분의 1 이상이 소형)로 정점에 이른 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발전량은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풍력발전기를 대용량으로 교체하고, 해상 등 강한 풍력 발생지에 발전단지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보다 적은 수의 풍력발전기로 보다 많은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해상 풍력터빈 1MW 규모의 생산용량으로 덴마크 내 약 1000가구가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육상풍력발전 비용의 경우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신규발전소 비용보다 저렴해 졌으나 △육상풍력단지 조성 공간이 희소해지고 △긴 해안선, 얕은 바다 및 충분한 해상풍력 자원을 보유한데 힘입어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조성이 지속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손구영 주덴마크 한국대사관 실무관은 "덴마크는 정치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일관되고 장기적인 목표가 확고하고, 정부가 매우 정교하게 규제프레임웍을 입안·시행하고 있는 점이 성공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다만, 해상풍력발전은 육상에 비해 경제적 비용과 위험도가 더 높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정부 및 풍력기업 모두 이 같은 문제점 극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롤란드는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풍력단지

 


덴마크 정부는 현재 운영 중인 14개 해상풍력단지 외에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건설을 지속 추진 중이다.

한 국가 전력소비의 절반 수준을 차지하는 풍력산업이다. 그렇기에 롤란드 섬으로 가는 내내 한 곳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거대한 풍력발전단지가 반겨줄 것이란 기대가 가득했다. 우리의 제주 탐라, 강원 태백 보다 훨씬 웅장하고 장엄한 거대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였을까? 롤란드 섬에서 처음 마주한 풍력발전단지는 너무나 소박했다. 10여개도 되지 않는 롤란드 섬의 풍력발전기라니. 날개도 예상과 달리 훨씬 천천히 운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곳에서 풍력발전을 통해 전력을 자급자족하고, 잉여전력을 판매까지 한다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다른 곳으로 가보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기자를 움직이게 한 것은 현지 안내인 정명희 씨였다.

이내 덴마크 내 첫 해상풍력발전단지가 건설된 빈드비 마을로 향했다. 그곳 역시 마찬가지다. 10여 개도 되지 않는 풍력발전기가 조용하고도 유유히 회전을 하고 있다. ‘최초’라는 상징성에 비해 너무 초라한 것 아닌가.

잠시 후, 몇 킬로미터 가지 않아 또다시 풍력발전기 10여 개가 보인다. 그 옆에 또 서너 개가 보이고, 몇 킬로미터 지나 또 십여 개가 보인다. 그 옆에 또 한 개, 조금 지나 또 서너 개, 또 다시 십여 개. 어느덧 기자는 셀 수 없이 많은 풍력발전기를 스쳤다.

그때, 밀집된 대규모 발전단지가 한 곳에 조성돼 있을 것이라 생각한 기자에게 롤란드 섬이 말을 건다. "여기 롤란드는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풍력발전단지라고"

‘아차’ 싶었다.

눈을 감고 롤란드 섬 전체를 상상해 봤다. 이곳은 한 눈에 다 들어올 수 없을 만큼 하나의 거대한 풍력발전단지다.

아쉬움과 충격의 감정들이 교차하는 순간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30여 년 간 세계 풍력산업을 선도해 온 덴마크 풍력 터빈 생산업체 베스타스(Vesta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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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란드 섬의 풍력발전기는 주민 생활지역과 바로 인접해 위치하고 있다.


 

세계 풍력산업 주도하는 덴마크 기업들…베스타스·오스테드 등 

 


지난해 덴마크 정부와 주요 정당은 2030년 탄소배출 70% 감축계획을 세웠다. 목표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북해 에너지 인공섬(3GW), 본홀름(Bonholm) 에너지 섬(2GW), 헤셀로(Hesselo) 섬(1GW) 등에 대규모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키로 합의했다.

북해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인공섬을 건설해 2030년까지 3G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한 후, 2050년까지 10GW로 확대할 예정이다. 인공섬에는 에너지 저장시설, 녹색수소 생산시설(P-t-X), 데이터 센터 등이 들어선다.

또한 발트해 본홀름을 허브로 하는 대규모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해 덴마크와 독일로 에너지망을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헤셀로 섬에도 2027년까지 1G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한다.

2019년 기준 덴마크 풍력산업 종사자는 3만3000여명 수준, 2019년 풍력 에너지 기술 및 서비스 수출 규모는 전년 대비 비해 20% 증가한 89억 유로에 달한다. 덴마크 전체 수출의 7%,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 정도를 차지한다.

덴마크가 세계 풍력산업을 이끄는 선도국이 될 수 었었던 데에는 관련 기업들의 노력과 시너지가 합쳐진 결과가 녹아있다.

베스타스(터빈 생산), 오스테드(Orsted, 개발), CIP(금융), 램볼(Ramboll)(설계) 등이 각 분야에서 세계 풍력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롤란드 섬에서 유일하게 표지판을 볼 수 있었던 베스타스는 1945년에 설립된 풍력터빈 생산업체로, 2016~2020년 5년 연속 세계 풍력터빈 생산업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 16GW 규모 터빈 설치) 풍력터빈 설계, 제작, 설치, 관리 등을 수행하며 85개국에 140GW 규모의 풍력터빈을 수출했다.

1979년 첫 발전기 설치 이래 기술 연구를 통해 발전 효율을 100배 이상 개선시키고 발전 단가를 낮춰오는 등 터빈 및 블레이드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다수의 발전기를 수출한 베스타스는 최근 국내 해상풍력 개발 참여에 큰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덴마크 국영 에너지·전력 회사인 오스테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사로 전환해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원 기업명은 DONG(Danish Oil and National Gas) Energy이다. 사업에서 석유의 비중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2017년 오스테드로 기업명을 변경했다. 현재 기업명은 전자기학을 발견한 덴마크 과학자 ‘한스 크리스찬 오스테드’ 이름에서 차용했다.

오스테드는 세계 해상풍력 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고 있는 해상풍력 선도 기업이다. 현재까지 다수의 풍력단지 건설을 통해 약 950만 명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산학협력도 활발하다. 덴마크 정부 및 기업들은 신재생에너지 관련 과학 및 공학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덴마크공대(DTU), 올보대학, 오후스대학 등과 긴밀한 산학협력 관계를 구축·협력에 나서고 있다.

특히 덴마크의 에너지 연구개발(R&D)는 에너지기술의 상업화에 초점을 두고 그린에너지로의 전환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추구한다.

덴마크 정부는 보다 저렴한 그린에너지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 풍력발전을 확대(주로 해상풍력단지)하면서, 동시에 풍력발전 비용 축소를 위한 새로운 기술개발 지원에 역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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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카스트럽 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해상풍력발전단지.

해상풍력을 이용한 녹색수소 생산(Power-to-X, PtX)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PtX는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얻은 전력(Power)을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electrolysis) 하고 이를 통해 수소 등 녹색연료(X)로 변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풍력 터빈, 태양열 셀 등을 통해 얻은 전력을 수소, 암모니아 등 기체연료 또는 메탄올 등 액체연료로 변환하는 것이다.

PtX는 해상풍력으로 얻어진 잉여전력을 통해 녹색수소로 변환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코펜하겐을 떠나는 날, 좀 더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카스트럽 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해상풍력단지를 보기 위해서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인지 관광객이 찾지 않는 인어공주 동상은 유독 쓸쓸해 보였다. 다만,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만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울로 향하는 발길을 배웅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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