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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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
항상 폭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20년 상반기에 유가가 이른 바 마이너스 가격까지 하락한 공포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이와 같은 에너지 가격의 급등락에는 무슨 배경이든지 간에 나름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수요나 공급, 때로는 저금리와 이상기후나 허리케인 등 매번 그 이유는 바뀌지만 우리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에너지 시장은 과격한 변동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가격 리스크 뿐만 아니라 물량 리스크도 최근 커졌다. 현재 국제시장에서 천연가스는 공급물량이 딸리면서 판매자 주도 시장(seller’s market)으로 바뀌었다.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이처럼 폭등한 상황에서 물량마저 제때 확보하지 못할 경우 다가오는 동절기에 에너지 위기는 심각해질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몸에 해당하는 경제 시스템에서 에너지가 피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에너지 위기발 경제적 파급효과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다가올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에너지안보는 적정한 가격으로 중단 없이 에너지가 공급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즉, 물량이 공급된다고 해서 에너지안보가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확보될 수 있는 에너지의 가격이 적정한 수준 범위 내에 있을 때에 에너지안보 요건이 성립되는 것이다. 가격 리스크와 물량 리스크는 에너지안보의 양대 축인 셈이다.
과격한 변동성의 시대에 한국의 에너지 시장은 체질 변화를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현재 탄소중립 정책에는 리스크 관리능력의 강화 역시 반드시 핵심 과제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10월 중순에 발표한 탄소중립 정책은 감축목표 중심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 변동성 대응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바, 향후 세부 이행계획에는 이러한 주제들이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선 에너지 시장이 금융구조를 갖추면서 선진화되어야 한다. 특히 석유나 천연가스의 파생상품 거래 경험의 축적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향후 배출권이나 전력시장 선도 거래에서 순기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파생상품은 가격 리스크와 물량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핵심적인 수단인 동시에 변동성 확대의 주범이기도 하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며 여기에는 상당한 학습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차근차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로, 가격 리스크 대응수단의 하나로 에너지 포트폴리오가 최적화되어야 한다. 2050년에 화석연료 이용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는 탄소중립 정책은 변동성 대응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예를 들어, 수소를 살펴보자.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 수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가스를 액체 상태로 바꾸기 위하여 영하 253도 상태에서 운반해야 한다. 천연가스의 영하 162도보다 더한 수준의 극저온 상태가 수소 운반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수소는 게다가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수준의 장기비축이 여의치 않다. 물리적으로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적정한 가격으로 공급되어야 하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의 기상조건에 따라 해외 공급 물량 역시 불안정하기 마련이다.
수소도 천연가스처럼 선물과 옵션의 파생상품으로 개발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와 같은 물량 리스크가 가격 리스크로 전이될 것이다. 국내 재생에너지와 해외 수입 수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재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재고되어야 하며, 석탄, 원자력, 천연가스와의 적정 믹스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정책은 희망과 긍정 메시지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설계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과격한 변동성을 대비하여 합리적인 가격으로 정상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에너지 안보 역량의 확대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