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지난해 열린 한 토론회에서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미국 경영학자들이 쓴 여러 실증적 논문을 분석하여 사외이사의 임기와 성과와의 관계를 밝혔다. "사외이사의 임기가 사외이사의 기능과 역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외이사의 임기를 일률적으로 법률로 규율하는 것(one-size-fits-all approach)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 "S&P 1,500 기업들을 조사한 결과 사외이사의 임기가 7년에서 18년 정도일 때 CEO의 경영성과가 개선되었고 주주의 이익도 증가했다", "2007~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장기근속 중인 사외이사를 둔 기업은 위기에 강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보통 사외이사로 최초 임명되어 3년쯤 지나야 업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외이사는 회사 내 고정된 사무실도 없고, 이사회 일정이 있으면 사전에 대면 또는 비대면으로 회의 안건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사전 설명에 이의가 없으면 이사회 본 회의에 출석해 안건을 승인한다. 많은 회사에서는 임원들이 사외이사와 가급적 많은 시간을 가지고자 이사회에 이은 오찬 또는 만찬시간을 가져 소통에 힘쓰기도 하지만 사내이사처럼 회사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이것저것 정보를 요구할 수는 있으나, 어떤 정보가 있는지 자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약 5~6년간 어울리다 보면 어느 정도 회사 사정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위 미국 경영학자들의 논문에서 사외이사의 임기가 7년에서 18년 정도일 때 가장 회사의 성과가 좋다는 이야기는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어떤가. 공무원들이 상법 시행령을 고쳐 상장회사 사외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계열회사까지 포함 9년으로 일률적으로 제한했다. 위 미국 논문에서는 7년 정도 되어야 사외이사의 성과가 나타나고 18년쯤이면 절정에 이른다는데, 한국에서는 꽃이 피기도 전에 줄기를 자르라고 정부가 강제한다. 도대체 사기업체의 이사가 50년을 재직하든 100년을 재직하든 국가가 무슨 근거로 간섭해야 하나. 그것도 국회 입법을 피해 시행령으로 규제한다.
그 결과는 어떨까. 사외이사는 ‘값싼 장식품’에 불과하게 됐다. ‘값싼 장식품’이란, 사외이사의 봉급은, 물론 하는 일에 비해서는 많다고 볼 수도 있지만, 몇몇 대기업을 빼 놓고 그 절대액은 많지 않은데, 이사회 구성원 중에 사외이사 비율이 높을수록 좋은 지배구조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입법취지는 아니지 않겠는가.
사외이사의 독립성만 강조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사외이사의 주요 기능은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3~6년 있다가 떠날 뜨내기와 회사의 장래를 논의하고 지혜를 모은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사외이사는 거수기"라는 비아냥이 난무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부추기는 꼴이다. 이런 식으로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 외 세계 어디에도 없다.
똑같은 일이 회계업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주기적 지정감사제’ 이야기다. 2017년 개정된 외부감사법에 따르면 상장기업은 6년간의 자유계약에 의한 외부감사인 선임 후 3년 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한 감사법인의 외부감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회계학회 회장을 역임한 송인만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회계감사인의 감사 효율성이 가장 높은 때는 선임 후 10년차인 때부터라고 말했다. 감사인이 6년 정도 그 회사를 지속적으로 감사하면 그 회사의 사정에 밝을 수밖에 없는데, 6년하고 나면 자동적으로 해촉되니, 일을 할 만 하면 내쫓기는 격이다. 그리고 3년간만을 감사할 새 회계법인이 지정된다. 이 3년짜리 회계법인은 기업의 역사와 이력도 모른 채 3년간 허둥대다 떠날 수밖에 없다. 외부감사인을 이렇게 국가가 지정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사외이사, 회계감사인 둘 다 전문성과 독립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독립성만 강조하다 보니 전문성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소홀하고, 나아가서는 기업의 자율성과 능률 따위는 무시되는, 또 다른 ‘OINK(Only in Korea)’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