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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캔버라 국회의사당 내 대위원회실에서 한-호주 정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최근 겨울철(12월∼내년 2월)을 맞아 에너지 수요까지 늘어나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자원수급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국제 유가와 석탄, 천연가스부터 요소수까지 수급 불안정이 잇따르자 정부가 자원대란에 대응하고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현지에서 핵심 광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체계적인 협력을 지속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협력 관계 증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국내에서는 산업통산자원부가 이날 자원안보에 대응하기 위한 첫 번째 종합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 움직임을 두고 "자원안보에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 움직이고 있다"고 입을 모아 지적했다. 뒷북 대응 또는 뒤늦은 호들갑이란 뜻이다.
◇ 정부, 자원대란 우려에 자원외교강화·국내 대응 나서
정부가 자원안보에 나서는 이유는 최근 자원 가격이 상승하면서 국가 간 에너지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데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제 천연가스 가격(JKM)은 100만BTU(열량단위)당 32.81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 가격인 6.81달러보다 약 4.8배 급등한 수치다.
같은 기간 석탄 가격(호주탄)은 1t당 63.71달러에서 158.01달러로 약 2.5배, 유가(두바이유)는 배럴당 43.42달러에서 80.30달러로 약 1.8배 올랐다.
게다가 중국의 호주산 석탄 수입제한과 유럽연합(EU)-러시아 간 가스공급 갈등 등 에너지를 둘러싼 국가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자원수급의 불안정성도 커지고 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핵심 원자재 공급망을 구축하고자 호주 국회의사당을 방문했다. 호주는 철광석과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전통적인 자원·에너지 부국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스콧 모리슨 총리와 핵심광물 부문 연구개발과 인적 교류 등에 대한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
산업부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와 석유공사·가스공사·광해광업공단 등 3개 자원공기업 본사 상황실에서 ‘자원안보 위기대응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석유·가스·광물의 동시 위기 발생 상황을 가정해 에너지 공급망을 점검하는 첫 번째 종합훈련이다.
◇ 전문가들 "해외자원개발 사업 포기하더니 늑장 대응"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과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적폐로 몰아 사실상 포기하는 등 자원안보에 손을 놓다가 뒤늦게 수습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자원빈국임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사업까지 법으로 막아 놓고 원자재 대란이 터지자 공급망 확보에 나섰다는 비판이다.
당초 해외자원개발사업을 진행했던 한국광물자원공사는 7조원의 부채를 해결할 방안으로 자산처리에 나섰다. 광물공사의 자산처리 방안 가운데 핵심은 해외 광산 매각이었다. 국회에서도 파산 가능성까지 나온 광물공사의 부채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한국광해광업공단법’을 만들어 한국광해관리공단에 자산 및 자본규모에서 공단보다 큰 광물공사를 사실상 흡수통합시켰다. 나아가 이 통합 공단의 업무 범위에서 해외자원개발사업을 삭제해 관련 업무 자체를 아예 못하게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광물공사의 자산이 광해공단보다 컸는데도 양 기관 통합 과정을 보면 통합기관명이나 조직편제에서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원자재 공급에 대해 많이 말하지 않은 건 자원개발 자체를 적폐로 찍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대란이 심각하니 나설 수 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강 교수는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자원부국인 호주를 찾아간 건 다행이다"라며 "해외자원개발사업까지 포기한 상황에서는 자원 공급 예측 시스템과 공급망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특정 국가에 대한 자원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대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며 "자원 외교 우방국 뿐 아니라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 "탄소중립에만 치우쳐 자원안보 뒷전"
현재 정부가 탄소중립에만 치우쳐 자원안보는 뒷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우 탄소중립 정책에 자원안보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지만 한국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에만 신경을 쓴다는 비판이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탄소중립이나 그린뉴딜 정책은 온실가스 감축에만 집중돼 있다"며 "유럽연합(EU)의 경우 이산화탄소 감축, 에너지 빈곤 해결, 고용 창출과 더불어 에너지 국외 의존도를 낮추자는 내용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앞으로 리튬이나 니켈 등 4차산업 핵심 광물과 탄소중립에 필요한 수소 등에 대한 수입도 생각해야 하는데 자원안보에 대한 중요성이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애초부터 자원개발사업이 중앙정부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자원안보까지 틀어져버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원개발사업이 중앙정부 중심으로만 진행될 경우 경영에 대한 책임을 세금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자원개발이 중앙정부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도 우려스럽지만 현재 정책의 경우 아예 자원개발사업에 거의 손을 놓자는 식이라서 바람직 하지 않다"며 "공기업의 우수한 전문인력 노하우로 민간기업과 함께 자원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claudia@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