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섬 전체가 거대한 녹색 발전소…재생에너지 자립도 100%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1.05 17:10

덴마크 탄소중립 현장을 가다



'세계 최초 재생에너지 100% 섬' 삼쇠섬, 남는 전력 독일 등에 수출



암모니아 등 융복합 발전, 폐기물 없는 터빈, 수소 이용 수상버스 등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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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삼쇠섬의 해상풍력기. 스테이트오브그린


[에너지경제신문/코펜하겐(덴마크)=오세영 기자] "덴마크에서는 정부와 기업, 민간 모두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환경이 중요하니까 이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같이 고민하지요. 에너지전환도 ‘해야 하는 일’이고 ‘모두 약속한 일’이기 때문에 돈이 들거나 조금 불편 해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해상풍력 발전기와 쓰레기 소각장이다. 한국에서는 ‘님비(Not In My Back Yard)’ 현상의 대상이 돼 환영받지 못하지만 덴마크에서는 이 같은 환경시설들이 도심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덴마크는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의 선도국가로 꼽힌다. 1970년대부터 오일쇼크를 계기로 화석연료 이용률과 에너지 수입을 줄이고 자체적으로 발전원을 다양화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에너지전환에 나섰다. 1972년 당시 덴마크 총 에너지 소비의 92%를 차지한 건 석유였다. 지난 2019년 기준으로 덴마크 총 에너지 믹스 현황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9.1%까지 줄었다. 50년 가까운 세월에 석유 의존도를 절반 이하로 낮춘 것이다.

덴마크는 2019년 기준 총 에너지 믹스에서 35.3%를 차지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70%로 두배 높일 계획이다. 2050년에는 100%로 높이겠다는 목표다. 덴마크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린국가로 도약하는 데에는 현지를 대표하는 기업들과 주민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지난해 11월 4박 6일간 덴마크 현지를 방문해 오스테드와 베스타스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기업들의 탄소중립 이행 계획을 듣고 ‘재생에너지 자립도 100%’를 이룬 삼쇠섬을 직접 찾았다.

덴마크 현지를 취재하며 만난 산업계·환경계 관계자와 주민들은 에너지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공동의 목표를 향한 움직임’을 꼽았다. 국민 대다수가 에너지전환이라는 목표를 세웠으며 정부와 기업 등 각 업계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덴마크 녹색성장 민관협력기구 ‘스테이트오브그린’의 핀 모텐슨 대표는 "덴마크에서는 에너지전환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동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정부가 바뀌어도 큰 정책기조는 바뀌지 않는다"며 "국민 대다수에 에너지전환의 필요성과 목표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에 금융이나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오스테드·베스타스 등 덴마크 기업들 "녹색에너지 세상 만들 것"

"우리의 비전은 녹색 에너지로만 움직이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마그누스 호어뉴 갓리브 오스테드 선임 공공관계 및 지속 가능성 자문관)

오스테드와 베스타스, 모비아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재생에너지 기업들이 본격적인 탄소중립 시대를 이끌기 위해 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덴마크 국영 에너지·전력 회사인 오스테드는 그린수소 생산으로, 풍력터빈업체 베스타스는 지속가능한 터빈 생산으로, 덴마크 최대 교통회사인 모비아는 배기가스 제로 교통으로 녹색 전환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22일 인천공항에서 15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짐을 풀고 취재 준비를 마친 뒤 곧바로 덴마크 대표 재생에너지 기업들의 미래 비전을 소개하는 프레스 투어에 참석했다. 코펜하겐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다 보니 거대한 피라미드 모양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이번 프레스 투어의 첫번째 현장인 오스테드의 애블유어 열병합 발전소다.

오스테드는 대표적인 에너지전환 기업으로 꼽힌다. 오스테드의 전신인 ‘동(DONG·Danish Oil and Natural Gas)에너지’는 석탄화력발전과 북해 석유·가스 탐사, 시추 사업을 하던 기업이었다. 지난 2017년 동에너지는 이들 사업부를 매각하고 오스테드로 사명을 바꾼 뒤 재생에너지 사업에 나섰고 현재 글로벌 해상풍력발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오스테드는 탄소 에너지 생산지에서 그린 에너지 생산지로 거듭난 애블유어 발전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도전한다. 바로 해상풍력을 이용한 그린수소 생산이다.

스틴 토어프 크리스토퍼슨 오스테드 시니어 프로젝트 매니저는 "이 곳에 해상풍력에너지를 이용해 녹색수소를 생산하는 오스테드의 첫 번째 실증 프로젝트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자칫 보면 주차장으로 착각할 정도로 가드라인만 세워진 상태다. 이 곳에 2MW 규모의 전해기가 들어서 날마다 약 1000kg에 달하는 녹색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전해기로 만들어진 전기는 코펜하겐의 교통과 수송수단 연료로 활용된다.

오스테드가 첫 번째로 펼칠 수소 프로젝트는 ‘H2RES 재생수소 실증사업’이다. ‘H2RES 재생수소 실증사업’은 수소 전해기에 해상풍력으로 생산된 전력을 잘 연계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과정을 조사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실증사업에는 애블유어 발전소 앞 바다에 위치한 오스테드 해상풍력발전기 2개(3.6MW 규모)가 쓰인다.

오스테드는 아직 실증 단계에 불과한 전해기 용량을 점차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오는 2030년까지 50GW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전기 생산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준비중이다. 게다가 그린수소 생산이 자리잡으면 메탄올과 암모니아를 융·복합하는 발전 시설도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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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타스 관계자들이 덴마크 코펜하겐 크라운 플라자 호텔에서 풍력터빈 부품 개발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세영 기자


오스테드의 애블유어 발전소와 해상풍력발전기 현장을 둘러본 뒤 향한 곳은 코펜하겐의 크라운 플라자 호텔이다. 이 곳에서 베스타스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베스타스는 1945년에 설립된 풍력터빈 생산업체로 2016~2020년 5년 연속 세계 풍력터빈 생산업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풍력터빈 설계와 제작, 설치, 관리 등 업무를 맡으며 85개국에 140GW 규모 풍력터빈을 수출했다.

세계 풍력터빈 1위 기업 베스타스는 ‘제로 웨이스트 터빈’을 생산해 순환과 폐기물 감축 안에서 풍력산업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는 2040년까지 폐기물 없는 터빈을 만들어 업계 최초로 오랫동안 순환해 사용할 수 있는 온전히 재활용 가능한 풍력 터빈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베스타스는 원재료 선택과 부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풍력터빈에서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원재료를 발굴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모듈화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애나 빌 베스타스 제품 솔루션·통합부 전무는 "오는 2025년부터 블레이드 매립이 금지됨에 따라 베스타스도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부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그러려면 어떤 원재료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은 철을 쓰고 있고 우리의 목표인 지속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원재료를 찾지는 못했다"며 "여러 원재료들을 살피면서 분해가 되고 재사용이 가능한 지 재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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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아 수상버스(왼쪽)과 내부 모습. 오세영 기자


크라운 플라자 호텔을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했다. 코펜하겐 남부 항구에 도착해 곧바로 샛노란 수상버스에 올랐다. 덴마크 최대 운송회사인 모비아가 운영하는 수상버스는 전기로 움직이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커다란 굉음을 내며 바다를 가로질러 코펜하겐의 대표 관광지 가운데 한 곳인 블랙다이아몬드 도서관까지 향했다.

모비아의 교통 서비스는 덴마크 내 98개 지역자치단체 가운데 45개에서 제공되고 있다. 연간 연인원 2억명이 이용한다. 수상버스의 경우 총 7대가 덴마크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모두 전기로 움직인다. 모비아는 대중교통 이용자 증가와 무화석 연료로의 전환, 기후 친화적인 대중교통을 통한 배기가스 제로 및 지역 성장 등을 목표로 두고 있다.

예페 고 모비아 계약 담당 매니저는 "오는 2030년까지 배기가스 제로 차량 100대를 제공할 계획"이라며 "항만버스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전기화되기 시작했고 내년 말까지 336대에 달하는 전기 버스를 보유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모비아의 수상버스 7대는 모두 전기로 움직인다. 다만 일반 버스의 경우 아직 30%만 전기화됐고 나머지 70%는 아직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상태다. 예페 고 매니저는 "개인 차량에 비해 전기 충전소 시설 구축이 미비한 상황"이라며 "그래서 충전소 시설이 확보되면 전기 버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비아는 전기 수상버스에 이어 수소로 움직이는 수상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조만간 수소 수상버스 1대를 시범운영할 준비 중이다. 관계자는 "전기의 경우 배터리가 디젤보다 비싸지만 운영비가 낮다"며 "그러나 수소의 경우 배터리와 운영비 모두 비싸기 때문에 시범운영부터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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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테드 관계자가 덴마크 애블유어 발전소 내부 수소 전해기가 들어설 부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세영 기자


◇ ‘세계 최초 재생E 100% 섬’ 삼쇠, 주민들과 이뤄낸 성공적 전환


다음날 향한 곳은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자립도 100%를 이뤄낸 ‘삼쇠섬’이다. 코펜하겐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달려 칼룬보르항에 내린 뒤 페리를 타고 1시간 정도 이동해 삼쇠섬에 도착했다.

‘세계 최초 재생에너지 100% 섬’인 삼쇠섬은 1997년 이후 10년 동안 재생에너지만으로 섬 전체 에너지를 충당하면서 40%가 남아 덴마크 도시나 독일 등 육지에 판매까지 하고 있다.

삼쇠섬에서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1MW 규모 육상 풍력발전기를 11기 세워 22개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2년에는 2.3MW 규모 해상 풍력발전기 10기를 추가로 설치해 전기자동차와 버스, 농업용 트랙터 등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 삼쇠섬에서는 전력 수요 100%를 육상과 해상 등 풍력발전기로 생산하고 있으며 난방수요 70% 정도를 태양에너지와 바이오에너지로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나라 강화도 3분의 1, 속초시 보다 조금 큰 114㎢에 불과한 삼쇠섬이 에너지자립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주민들의 힘이 크다. 덴마크 정부가 ‘재생에너지 자립 프로젝트’ 시범지역으로 선정하면서 삼쇠섬의 에너지전환이 시작됐다.

삼쇠섬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삼쇠 에너지아카데미’를 찾았다. 이 곳의 쇠렌 헤르만슨 대표는 현지 대학생들 5명과 재생에너지 강의·토론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삼쇠섬에서도 처음부터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환영 받았던 건 아니다. 헤르만슨 대표는 "전환기 초창기에는 주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여러 차례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해 설명을 하고 논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노년층에서는 손주 세대를 생각한다면 재생에너지전환이 맞는 길이라고 생각해 동의했지만 이미 삶을 정착한 40~60대 중년층들 사이에서는 우려가 컸다. 이미 사업을 하고 있거나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로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다. 헤르만슨 대표는 "초창기에는 중년층의 동의를 얻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건 수익성을 눈으로 확인한 뒤였다. 헤르만슨 대표는 "실제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수익이 창출되는 걸 직접 체감하고 나니 동의가 많아졌다"며 "지금은 4000명 가까운 주민들이 재생에너지가 무엇인지,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부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쇠 에너지아카데미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주민 혹은 학생논의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삼쇠섬 주민들은 연간 8∼10회 정도 공공논의세션을 진행한다. 또 육상풍력발전기 11기 가운데 9기를 개인이나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참여가 높다.

주민들 스스로도 ‘재생에너지 100% 자립섬’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삼쇠섬에서 야채농사를 짓는 닐스벤더(남·60세)씨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오히려 침체됐던 삼쇠섬의 분위기가 살아났다"며 "경제성과 환경성을 고루 갖췄으니 재생에너지 전환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생에너지 사업 때문에 외지인이 많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생기고 외부에서도 관심을 많이 보이는 등 경제적 효과가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claudia@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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