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정부에 바란다] 에너지전문가들 "정책서 이념·정치 배제…환경·산업 아우른 긴 호흡 필요"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1.02 05:00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2022년에는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만큼 에너지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신년을 맞아 에너지업계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새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 일부분 수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탈원전·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등에 있어 업계와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전기요금이나 산업 생태계 등 현실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기련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 정책, 이념·정치 빼고 경제 논리로

전문가들은 에너지 문제에서 이념은 빼고 과학적 논리체계로 재정비해야 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는 "다음 정부는 문재인정부의 ‘과도한’ 에너지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과학적 논리체계로 재정비해야 한다. 불(火)의 발명 이래 에너지는 인류 문명을 구획하고 유지, 발전해 온 밑바탕임은 분명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만’ 그러하다"며 "통상적 국민생활에서 에너지는 눈에 잘 뛰지 않는 삶과 복지의 기반이며, 그래야만 그 고마움과 중요성이 변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문재인정부는 ‘비현실적 에너지 이념정책’을 통해 큰 개혁기반을 구축하고자 했다. ‘탈(脫)원전’ 정책을 비롯해 미세먼지 대책, 녹색성장, 신재생 위주 에너지체계 구성, 수소경제에다 탄소중립정책이 그 좋은 사례이다.

그러나 최 교수는 "그동안 속출한 많은 정책 구상들의 ‘장기 지속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이에 대한 원인을 ‘에너지시스템 비용에 대한 과학적 평가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많은 정책 구상들이 시민단체 등 정치이념 동조자 의견일 뿐"이라며 "그동안 비판적 의견에 대응해 설익은 이념체계와 정책 ‘패러다임’의 ‘내로남불’식 도입으로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으로서의 책무도 마찬가지이다. 최 교수는 "결과는 국가에너지시스템 구성의 혼선과 소비자 부담(10조 원/년 수준) 증가 가능성 문제"라며 "이해당사자들을 전문가 범주에서 제외하고 제발 이념을 뺀 에너지 정책을 작게, 조용히 추진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진호

▲박진호 한국에너지학회 회장/한국에너지공대 부총장.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 마련과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에 대한 당부도 이어졌다.

박진호 한국에너지학회 회장은 "현 정부 동안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탄소중립을 향한 목표 설정 등에 있어서는 일정 수준의 성과를 달성했다"면서도 "재생에너지의 보급 확대가 국내 관련 공급사슬 산업의 발전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날로 심해지는 각국의 보호무역으로의 회귀현상, 기후변화 대응을 자국의 이해관계와 연계해 새로운 무역장벽을 제기하는 추세, 특히 미-중 무역 갈등의 여파가 점입가경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과 함께 세계시장에서의 산업경쟁력도 지속 발전시켜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박 회장은 "차기 정부에서는 탄소중립 목표 수치의 상향과 방향 제시에만 너무 매몰돼서는 안 된다"며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청정에너지 관련 국내 산업은 물론 탄소중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기존 산업군들을 고려한 합리적인 에너지 전환이 모색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나리오별 구체적인 추진전략 수립과 실행계획에 따른 실효적인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호정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 탄소중립, 산업계 의견수렴 속도조절

전문가들은 정부 에너지정책의 핵심인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환경 뿐 아니라 경제와 산업 전반 큰 틀에서 긴 호흡을 가지고 이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경제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긴 호흡을 갖고 제도개선과 연구개발(R&D) 투자 등 기초체질부터 다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중간 이행단계로서의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무리한 감축계획 보다 탄소중립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온실가스 감축규모나 재생에너지 확대와 같은 물량지표보다는 기술지표의 개발을 통해 녹색금융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국가 잠재성장률 확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재생에너지와 수소경제 분야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세제지원과 기후대응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분산자원인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작업인 만큼 의사결정도 상향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산업계와 시민, 전문가의 숙의과정을 통해 한국형 최적경로가 탐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성봉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소중립을 이루려면 큰 틀을 먼저 봐야 한다"며 "최근 정부가 발표한 ‘산업·에너지 탄소중립 대전환 비전과 전략’은 기업 혼자만으로는 건널 수 없는 ‘죽음의 계곡과 다윈의 바다’"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정부가 산업계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은 채 ‘2050 탄소중립’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놓고 다음에 도와주겠다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로 탄소를 줄이려면 제조업을 변화시키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제조업 자체를 크게 줄이는 수밖에 없다"며 "하루빨리 에너지 다소비 업종 중심의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크게 개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산업구조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산업용 에너지가격을 대폭 올려야 한다"며 "규제개혁을 통해 의료산업, 금융산업, 보험 및 컨설팅 산업 등이 선진국처럼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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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에교협 공동대표



◇ 탈원전·탈석탄 정책 기조 전환 필요

2050 탄소중립 실현 과정에서 여전히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이 필요하다며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탈석탄 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아직도 전기를 구경하지 못하는 인구가 지구에 수십억명이 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부터 거의 공짜로 배워 세계 최고수준으로 향상시킨 석탄화력과 원자력발전 기술을 사장시킨다는 것은 최악의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이덕환 명예교수는 "문 대통령은 COP26(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우리가 안 지켜도 되는 국제합의에 서명을 하고 왔다"며 "우리가 잘 산다고 해서 저개발국가의 에너지 사다리를 차버리는 것은 전혀 정의롭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또 "탄소중립 외에도 에너지복지와 기후변화 적응이 중요한데 현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만 얘기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는 2%밖에 배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탄소중립은 글로벌 이슈지 우리나라나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나 인도가 협조하지 않으면 어차피 2050 탄소중립은 달성할 수 없다"며 "새정부에서는 이같은 기조를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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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재원 마련에도 원자력발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제조업, 수출 비중이 높은 반면 재생에너지 잠재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며 "질서 있는 에너지전환으로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연착륙시켜 경제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주현 교수는 "재생에너지 비율을 안정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원자력이 기저 전력원으로서 석탄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고 탈탄소 측면에서도 매우 효과적"이라며 "그동안의 가동이력을 볼 때, 지진 등 위험 요인으로부터 안전을 입증한 청정에너지원일 뿐만 아니라 폐기물 관리도 충분히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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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식 한국재생에너지산업발전협의회 사무총장



◇ 재생에너지 확대 "생태계 구축 고려"

정우식 한국재생에너지산업발전협의회 사무총장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생태계 조성을 위해 △기후에너지부 신설 △태양광산업 국가전략산업 지정 △이격거리 규제 폐지 △계통망 혁신 △기후환경요금 현실화를 꼽았다.

정우식 사무총장은 "재생에너지 컨트롤 타워로서 정책수립과 규제개선, 정책조율 및 갈등 조정·중재 등의 역할을 할 기후에너지부가 신설돼야 한다"며 "재생에너지 제조업 부흥과 공급망 확보를 위해서는 태양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세계 태양광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최대 걸림돌인 재생에너지 이격거리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이격거리 표준안을 만들고 중장기적으로는 입지기준으로 인허가 원칙을 바꾸고 이에 걸맞게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생에너지 이격거리 규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재생에너지가 설치될 수 있는 구역을 주거지 등으로부터 수백m 가량 이격거리를 두고 제한하는 걸 말한다.

정 사무총장은 "재생에너지의 안정적 확대를 위해 (전기생산지와 소비지를 연결하는) 계통망 혁신에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재생에너지 확대하는 데 쓰이는) 전기요금의 기후환경요금을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닌 주요 선진국처럼 합리적으로 책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반명함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제도를 예측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국민에게 청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업자에게 예측 가능한 환경이 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인증실적 현물시장 운영 여부와 전원별 가중치 체계, 의무량 산정방식이 재생에너지 설비 수명인 십수년 동안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선의로 포장된 개혁도 사업자들에게는 성가실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 제도가 과연 전기소비자에게 공정한지 의문도 제시했다. 유 교수는 "탄소중립 및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명분에 떠밀려, 높은 전기료 부담 혹은 관련 국책사업으로 조용한 다수의 납세 부담 증가가 당연시 되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지출 증가를 묵묵히 부담하는 전기소비자보다 세종청사 앞에서 담당 공무원 인형으로 화형식을 거행하는 집단이 언론의 관심을 더 받진 않는지, 재생에너지 발전단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사업자 위주 RPS 고정가격계약으로 초과 비용이 청구되고 있진 않은지, 명분의 그늘 뒤에서 부당한 이익편취 시도가 있을지 매의 눈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재생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한 논쟁이 좌우 정치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진지 오래고 중요한 기준은 간과되고 있다"며 "정부가 심판으로서 역할에 충실하고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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