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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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이처럼 ‘상품’과 ‘폐기물’의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한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이다. 당초 전기차에 탑재되었다가 폐차 등으로 탈착된 배터리는 ‘폐기물’로 인식, ‘폐배터리’로 지칭되었고, 기존 폐기물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유형의 폐기물로 간주, 전처리 후 일정 공정을 통해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희귀 유가금속 등을 추출하는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전기차 배터리 자체는 용량이 초기 대비 약 70∼80% 이하로 감소하면 주행거리 감소, 충·방전 속도 저하 등 문제로 차량 구동용으로는 활용이 불가하지만 다른 에너지 저장수단으로 활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래서 전기차에 한번 쓰이고 난 이후, 배출된 배터리는 잔존수명이나 배터리 건강상태(SoH) 등에 따라 다른 차량용 배터리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무정전 전원장치(UPS) 등으로 ‘재사용’도 가능하다.
더욱이 ‘재사용’은 단순한 ‘재활용’에 비해 다양한 연관 비즈니스로 연계·창출도 가능하다. 특히 해외에서는 전기차 제작사가 자사 사용후 배터리를 회수, 교환·리스 서비스 등과 연계하거나, 재생 ESS 등을 제작, 이를 기반으로 직접 전력 연관 사업에 진출하는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열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폐기물을 넘어 이제는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상품인 ‘사용후 배터리’로 인식이 확립 중이다.
이에 대한 관심은 전기차 보급 확산세가 가속화되면서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올해 전기차 보급실적이 약 10만대로 이미 누적 20만대를 훌쩍 넘어섰다. 이에 따라 충분한 자본력을 지닌 현대차, 닛산, SK이노베이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외 완성차·배터리 제조사가 ‘사용후 배터리’에 직간접적인 투자를 검토 내지 실행 중에 있다.
그러나 사용후 배터리 시장 잠재성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비해, 실제 시장을 한발 더 들어가 들여다보면, 현실은 그다지 밝은 것만은 아니다. 우선 향후 사용후 배터리 공급은 상대적으로 확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10월 확정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라 2030년 전기차 누적보급 목표가 360만대로 한층 증가되어, 시차를 두고 시장에 공급될 사용후 배터리 규모 역시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쉽게 예측된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불확실한 수요에 있다. 당초 가장 유망한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분야는 재생 ESS이었다. ESS는 배터리 팩을 그대로 활용 가능하여, 일손이 많이 들어 상대적으로 인건비 상승을 유발하는 스택, 셀 등 하위단위로의 분해공정을 줄 일 수 있다는 점과 함께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간헐성 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수단으로 인정받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태양광, 풍력 연계 ESS에 대해 그 동안 신재생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각각 4.5, 5를 인정해주면서, 신규 ESS를 넘어 재생 ESS에 대한 수요 역시 확대될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잦은 화재 문제와 더불어 REC 가중치도 일몰되면서, 전국 설치규모가 3년 전 970여 곳에 비해 올해는 10분의 1이하로 축소, 이미 신규 ESS 제작 공급 중소·중견기업들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지경이다 보니, 재생 ESS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이로 인해 올 상반기 코나EV 리콜사태로 발생한 5.4GW 규모 배터리 처리 등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재사용 배터리 소비는 유가 금속 회수 등 재활용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무엇보다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시장이 ESS 시장 활성화에 달려 있는 만큼, 먼저 정부차원의 ESS 활성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부득이 하게 사용후 배터리 시장 초반은 초과 공급 상태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재사용 배터리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가 시장 초반을 이끌 동력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구매보조금을 받아 전기차를 구매한 경우 대기환경보전법 등에 따라 지자체에 배터리를 반납했던 ‘배터리 반납 의무제’가 이제 폐지되고, 조만간 개인이 사용후 배터리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 산업 자체가 미성숙한 상황이다 보니 관련 기업이 얼마 없어 개인의 배터리 판매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 생산자가 사용후 배터리의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재활용·재사용해야 하는 EPR은 사용후 배터리 처리 주체를 지정하고 관련 산업을 조성하는 시장 활성화의 첫걸음이자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조속한 제도 도입을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