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20년 사이 재생E 4배 늘렸어도 발전비용·내부대체전력·외부공급망 등 공급 유연성 갖춰 '안정'
한국, 덴마크와 여건 다르고 탈원전·탈석탄 동시 추진 속 앞으로 30년 사이 재생E 10배 확대 땐 '미지수'
▲덴마크 삼쇠섬의 해상풍력기. 스테이트오브그린 |
[에너지경제신문 / 코펜하겐(덴마크)=오세영 기자] "덴마크 삼쇠섬은 1997년부터 10년만에 재생에너지 100% 전환에 성공했다. 탄소배출량도 1인당 15t에서 -3.7t으로 줄이면서 ‘탄소 네거티브섬’으로 거듭났다. 생산한 전력 일부는 육지에 팔기도 한다."
‘세계 최초 재생에너지 100% 섬’으로 알려진 덴마크 삼쇠섬의 쇠렌 헤르만슨 삼쇠 에너지아카데미 대표는 지난해 11월 덴마크 현지 취재차 이 기구의 삼쇠섬 본부 사무실을 방문한 기자로부터 "재생에너지 전환이 전력자립성과 안정성에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 같이 답했다.
우리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을 2050년까지 70%까지 늘릴 계획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발전효율의 한계로 전반적인 전력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으로 전력을 생산해야 하는 재생에너지는 특성상 해가 뜨지 않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전력 생산이 어렵다는 점에서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설비용량 대비 실제 전력 생산량이 20%대에 그친다.
우리 정부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기술도 함께 발전시키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높이면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에너지경제신문은 서울대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으로 지난해 11월 22일부터 4박 6일간 덴마크 산업현장을 직접 방문, 취재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환에 따른 전력 자립이 가능한 지 알아봤다. 확인 취재 결과 적어도 덴마크에선 20년 새 재생에너지 4배 확대에도 전력수급 안정을 달성했다. 다만 덴마크와 여건이 다른 우리나라가 앞으로 30년 사이 재생에너지를 10배 늘릴 경우 전력수급 안정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덴마크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근 20년 사이 4배 높였지만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었다. 덴마크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면서 에너지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표적으로 덴마크 내부 대체 전력 확보나 외부 공급망 구축을 통해 전력 공급의 유연성을 갖췄고 오랜 기간 에너지 전환 과정을 거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비용을 낮추는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진데 있다. 덴마크처럼 꾸준한 기술개발 등을 통해 발전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전력 수급난 발생 때 재생에너지 외 국가 내부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하거나 다른 국가로부터 전력을 들여올 수 있는 전력망을 가지고 있다면 간헐성 등 문제점을 안고 있는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대에도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덴마크와 여건 자체가 다르다. 우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에너지 고립섬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상황에서도 발전 효율이 낮은 재생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발생할 때 이를 보완 또는 대체할 수 있는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 발전 외에 값싸고 친환경적인 원자력 발전이 있음에도 정책적으로 탈원전을 탈석탄과 동시 추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책으로 보면 전력 공급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대로라면 앞으로 30년간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10배 높여야 한다. 에너지 전환 초창기에야 대체 전력을 사용하면서 공급 안정성을 맞출 수 있겠지만 주변국과 전력망을 공유하지도 않고 발전비용이 저렴해지려면 시간도 걸린다. 우리나라는 덴마크처럼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데 정책적으로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는 훨씬 빠르게 계획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덴마크처럼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전력수급 안정을 달성할 수 있을 지 미지수라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2019년 덴마크 전원믹스. 주한덴마크대사관 |
덴마크는 50년 동안 에너지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1972년 당시 덴마크 총 에너지 소비의 92%를 차지한 건 석유였다.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 석유위기로 1973년 석유 가격이 4배로 치솟자 덴마크의 경제와 에너지 공급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덴마크는 오일쇼크를 계기로 에너지전환에 나섰다. 덴마크 정부는 1976년 ‘덴마크 에너지 정책’을 통해 천연자원 고갈의 속도를 늦추고 재생에너지원을 활용해 에너지 수요 솔루션을 개발하자는 목표를 발표했다. 에너지 전환에 본격 나선 덴마크 정부는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인 발전원’을 정하고자 합의를 진행했고 풍력과 열병합발전소(천연가스와 바이오매스 기반) 두 가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스티 우페 피더슨 덴마크 에너지청 부청장은 "1990년부터 2030년까지 덴마크의 총 에너지소비에서 보여지는 특징은 석탄 감소와 재생에너지 증가"라며 "특히 대규모 열병합발전이 커지고 석탄이 단계적으로 완전히 폐지될 전망이라 석탄 소비의 경우 지난 2018년보다 오는 2030년에 94% 더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덴마크, 20년만에 재생E 비중 4배 성장…전력 공급 유연성이 핵심
▲2010∼2016년 평균 유럽 연간 정전 시간(232분). 덴마크가 최단 시간으로 가장 안정적인 전력 공급 상태를 보이고 있다. 덴마크 에너지청 |
덴마크는 현재 전체 전력의 약 8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있다. 에너지전환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 건 1970년이었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 미만에 그쳤다. 덴마크가 20년만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배 높이면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데에는 ‘공급의 유연성’에 있다.
피더슨 부청장은 "전력 공급 불안정성 문제 해결이 화력발전소 기반의 전력체계에서 대규모 재생에너지 공급 전력체계로 전환할 때 핵심"이라며 "에너지 전환은 불확실성과 생산량 변동성을 포함하면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높은 공급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유연성까지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건 공급의 유연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연성이란 전력 수급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발전과 부하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덴마크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낮았던 전환 초창기에는 화력발전소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주변 국가들과 전력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이어왔다.
덴마크는 2000~2009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 미만에 그쳤다. 당시 덴마크에서는 기존의 화력발전소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이웃 국가들과 이어진 상호연결장치를 이용해 전력 수요를 충족했다. 지난 2009년까지 △유연한 화력발전소 가동 △국가간 상호연결장치 활용 △에너지 수요 예상 및 일정 짜기 체계 등으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했다.
2010~2015년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20∼44%로 커지면서 열과 전기 생산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한 터빈 바이패스와 전기 보일러, 열펌프 등과 같은 기술적 솔루션들을 개발했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은 덴마크의 경우 주변국들과 전력체계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0년부터 북유럽 전력 교환시장인 노드풀(Nord Pool)에 합류해 주변국과 전력을 거래했다. 이 점이 전력을 유연하게 관리하고 사용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됐다. 2015년쯤 ‘유럽형 조화로운 선불 시장(European harmonised day-ahead market)’이 실시되면서 전력수급균형조절 영역을 넓히고 값싼 전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44~50% 이상을 차지했던 2016년부터는 △새로운 기술 △기존 기술의 혁신적 이용 △디지털화 등 데이터 기반으로 추진되는 사업 모델들을 통한 유연한 전력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시장 설계도 계속 발전시켜 오는 2030년에는 재생에너지 100% 전력 체계가 가능하도록 시장의 유연성을 높일 계획이다.
피더슨 부청장은 덴마크가 "지난 2016~2020년 ‘계획됐거나 계획되지 않은 정전’ 소요 시간 측면에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 공급 안전성을 성취했다고 언급하고 싶다"며 "이는 덴마크가 택한 접근방식을 통해 ‘지속가능성·공급안정성·비용’이라는 ‘에너지 트릴레마’를 성취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에너지 자립 이룬 ‘기적의 섬’ 삼쇠…여유 전력 육지에 팔기도
▲덴마크 삼쇠섬의 육상풍력(왼쪽)과 해상풍력 발전기가 가동되는 모습. 오세영 기자 |
덴마크에는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자립도 100%를 이뤄낸 섬이 있다. ‘세계 최초 재생에너지 100%’인 삼쇠섬에서는 전력 수요 전부를 육상과 해상 등 풍력발전기로 생산하고 있으며 난방수요 70% 정도를 태양에너지와 바이오에너지로 만들어 내고 있다. 오로지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을 생산하는데도 여유분이 남아 외부로 팔기도 한다.
삼쇠섬은 1997년 이후 10년만에 재생에너지만으로 섬 전체 에너지를 충당하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지금은 섬에서 생산한 전력 가운데 40%가 남아 덴마크 도시나 독일 등 육지에 판매하고 있다. 안정적인 에너지 전환에 성공하면서 탄소배출량도 네거티브를 기록했다. 1997년 당시 15t이었던 1인당 탄소배출량이 10년만에 -3.7t으로 줄어 ‘탄소 네거티브섬’으로 거듭났다.
최근 유엔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진행된 ‘유엔 글로벌 기후행동상’에서 ‘기후지도자상’을 수상했다. ‘기후지도자상’은 혁신적이면서 지속가능한 기후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한 국가·지역·도시·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수여한다.
▲쇠렌 헤르만슨 삼쇠에너지아카데미 대표가 지난해 11월 23일 덴마크 삼쇠섬 삼쇠에너지아카데미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세영 기자 |
삼쇠섬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삼쇠 에너지아카데미’를 직접 찾아 쇠렌 헤르만슨 대표에게 재생에너지 전력 현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삼쇠섬에서는 1MW 규모 육상 풍력발전기를 11기 세워 22개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2002년에는 2.3MW 규모 해상 풍력발전기 10기를 추가로 설치해 전기자동차와 버스, 농업용 트랙터 등에 활용하고 있다. 삼쇠섬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관광지 특성상 겨울에는 관광객이 없어 여름이나 다른 계절보다 실제 전력이용률이 많지 않아 전력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
쇠렌 헤르만슨 대표는 "삼쇠와 덴마크 본토의 전력케이블이 서로 연결돼있다"며 "여름에는 일조량도 좋아 태양광 패널이 전력과 열복사도 많이 흡수한다. ESS 장치도 많이 발달돼있다. 저장배터리가 따로 있어 여름에 생산한 태양광 전력을 따로 비축한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지역 경제도 살아났다. 쇠렌 헤르만슨 대표는 "재생에너지 전환전까지 젊은 연령대가 일자리를 찾아 삼쇠에서 도시로 많이 나가는 등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였다"며 "그러나 재생에너지사업을 추진하자 오히려 외부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으러 삼쇠로 많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 "韓, 안정적 에너지전환 가능…풍부한 재원·기술발전 속도·정치적 이해관계 영향 축소"
▲핀 모텐슨 스테이트오브그린 대표가 지난해 11월 25일 덴마크 코펜하겐 스테이트오브그린 사무실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세영 기자 |
한국에서는 덴마크처럼 주변국들과 전력연결장치가 마련돼 있지도 않다. 게다가 삼쇠섬 규모는 우리나라 강화도 3분의 1, 속초시 보다 조금 큰 114㎢에 불과하며 인구 수도 4000명으로 한국 인구 수의 0.008%다.
재생에너지 산업 현장에서 만난 덴마크 당국 관계자들은 환경적 요인이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주변국들과 전력연결장치가 마련돼 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발전할 수 있는 재원이 풍부하고 앞으로 탄소중립까지 30년 동안 공급의 유연성을 지키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피터 마커슨 덴마크 에너지넷 시니어 디렉터는 "한국의 경우 태양광이나 풍력, 조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 재원들이 풍부하다"며 "한국이 실현할 수 있는 많은 자연적 재원들을 활용해 친환경 전력 생산에 돌입하고 전력 예측 시스템도 촘촘하게 마련하고 여기에 소비 탄력성이 더해지면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전력망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쇠렌 헤르만슨 대표는 "한국도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전력자립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미 농업화에서 산업화를 3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뤘던 나라다. 재생에너지 발전과 저장 기술 등이 더 발달하고 또 산업 속에서 그 기술이 필요해지면서 서로 수요공급심리가 맞아 떨어지면 한국도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덴마크에서는 오는 2030년까지 △빈되 에너지 인공섬(3GW) △본홀름 에너지 섬(2GW) 등 2개의 에너지섬을 만드는 계획도 세웠다. 어느 정도 재생에너지 전환에 성공했지만 거대한 재생에너지 허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세계 최초 에너지 인공섬인 빈되섬은 덴마크 연안에서 약 100km 떨어진 북해에 건설된다. 덴마크 정부는 2030년까지 설비용량 3GW에 달하는 해상풍력 발전기 200기를 설치하고 2050년 10GW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또 발트해 본홀름섬에는 총 설비용량 2GW 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조성해 이웃 국가인 독일과 벨기에, 네덜란드에도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스테이트오브그린 관계자가 지난해 11월 25일 덴마크 코펜하겐 스테이트오브그린 사무실에서 덴마크 전력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세영 기자 |
덴마크가 에너지 전환을 전력 공급난 없이 안정적으로 이루면서 주변국 송출을 위해 대규모 재생에너지섬까지 구축할 계획을 할 수 있던 건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장기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덴마크 녹색성장 민관협력기구 ‘스테이트오브그린’의 핀 모텐슨 대표는 "덴마크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한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이루는 데 중요한 건 바로 변동성 있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에너지전환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장기적·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짚었다.
그는 "국민 대다수가 에너지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국가적 차원의 동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정부가 바뀌더라도 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는다"며 "사회전반에 걸친 이해로 도출된 결과는 장기적 계획들을 실행할 수 있으며 비용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덴마크 내에서도 녹색전환쪽으로 바꾸지 않으면 협력이나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압박이 있기 때문에 기업 스스로 바뀔 수 밖에 없다"며 "현재 본홀름섬 등 재생에너지 인공섬 계획에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마냥 정부에서만 비용을 부담하는 게 아니라 민간이나 펀드, 노동연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돈을 투자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claudia@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