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차등의결권 막은 국회의 재벌타령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1.24 10:13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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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국회 법사위가 차등의결권제도 도입 방안을 담은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논의 안건에서 제외함으로써 국회 처리가 무산됐다고 한다. 벤처기업은 커나가는 과정에서 외부 자본 유치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이 갈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기술을 보호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되는 것을 막으면서 창업자의 경영권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복수의결권제도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법사위 의원이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하고 재벌 세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면서 법안에 반대했다고 한다.

차등의결권제도는 선진국 대부분이 도입했고, 심지어 중국도 도입했다. 상하이 증권거래소 하이테크 기업 전용 증권시장으로 상하이판 나스닥인 ‘커촹반(科創板)‘이 그것이다. 커촹반 설립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역점사업으로, 상하이를 국제금융 및 과학기술혁신의 중심지로 육성하려는 것이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2019년 1월 커촹반 설립을 발표했다. 동시에 복수의결권 허용, 적자기업의 경우에도 상장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등의 조치도 발표했다. 2019년 7월 22일 커촹반 개장 당시 상장 기업은 25개에 불과했다. 개장 2주년을 맞이한 2021년 7월 기준, 커촹반 상장사는 311개에 달했다. 커촹반은 인공지능, 우주항공, 바이오, 반도체, 정보, 신소재, 신재생에너지, 스마트 제조 등으로 대표되는 최첨단 기술산업기업을 키우기 위한 시진핑 주석의 야심찬 전략이다. 이 전략은 아주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리 중기벤처부가 마련한 차등의결권제도는 아주 약소한 것이다. 예를 들면, 차등의결권제도는 벤처기업만이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정부로부터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회사는 3민9000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제도의 파급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기업이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먼저 정관변경과 주총결의를 해야 한다. 현행법상 정관변경은 발행주식총수의 1/3 이상과 출석의결권의 2/3 이상의 찬성을 요하는 특별결의사항이다. 그런데 정부안은 정관변경과 차등의결권주식 발행을 위한 결의는 주총 특별결의가 아닌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3/4 이상의 수’(가중특별결의)로써 이를 하도록 강화했다.

법안에서는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도록 한다. 미국 버크셔 헤서웨이의 대주주 워렌 버핏은 1주당 의결권이 ‘클라스(class) B’ 주식보다 1만 배 많은 ‘클라스 A’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자 또는 공동창업자에게만 보유자격을 인정했고 그것도 10년간만 존속하도록 했다. 이들이 10년 내 타인에게 주식을 양도하면 즉시 차등의결권은 소멸한다. 벤처기업이 상장하려면 보통 20년 정도 걸리는데 무엇을 하자는지 모를 지경이다.

이 뿐만 아니다. 복수의결권주식의 존속기간 변경을 위한 정관 변경, 이사의 보수, 이사의 책임 감면, 자본 감소, 감사(위원)의 선임 및 해임, 이익배당, 해산 등을 결의할 때에는 복수의결권이 아닌 1주 1의결권의 보통주로 환원된다. 이런 시시콜콜한 제약은 반대를 일삼는 의원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지만, 이럴 거면 안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자조(自嘲)의 목소리도 들린다.

압권은 차등의결권을 발행한 기업이 공정위가 정한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는 순간 복수의결권이 소멸하도록 되어 있는 점이다. 재벌기업은 원천적으로 차등의결권제도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의원은 "재벌 세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니 어이가 없다.

‘1주1의결권 원칙’이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하나의 정책일 뿐이다. 동일한 종류의 모든 주식회사에 통하는 통일된 룰만 있으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다. 세계는 지금 기업 키우기 국가대항전 형국이다. 세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대기업도 필요하고 벤처기업도 커 나가야 한다.

낡은 교조주의 이념에 사로잡혀 재벌타령으로 기업 발목이나 잡는 국회부터 바뀌지 않으면 ‘경제대통령 기업 키우기’도 헛소리가 된다.
성철환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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