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제기 할 수 없다·사업취소 또는 지연'만 덩그러니 명시
LH "본청약 때 일정부분 책임 지겠다…보상 근거 규정 없어"
"사전청약 단점 고스란히 드러나…결국 입주예정자 책임"
▲사전청약 입주자 모집 공고문. |
[에너지경제신문 손희연 기자] 정부의 공급 정책 일환인 사전청약 제도를 두고 정부가 무책임한 정책 운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사전청약 사업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정 분양가격과 주택공급면적 변경, 입주지연 등의 책임을 사실상 입주예정자에게 떠넘겨 논란을 빚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사전청약 입주자 모집 공고문에 사업지구·단지와 관련해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는 내용과 향후 사업 취소나 지연이 될 수 있다고만 명시돼 있어서다. 특히 사업취소나 지연이 될 경우 어떠한 피해 보상이나 방안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사전청약에 당첨된 입주예정자는 향후 사업에 문제가 생겨도 어떠한 이의 제기나,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는다.
이와 관련해 LH는 현재 시점에서 사업 계획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상황이 없기 때문에,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는 것이며 피해 보상 근거 규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그간 우려했던 사전청약의 문제점이 노출됐다고 입을 모은다.
◇ 사전청약 모집공고에 "이의제기 못해" 규정
16일 LH와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4차 사전청약 공공분양주택·신혼희망타운 입주자 모집 공고문에는 ‘사업지구 및 단지의 주변 생활여건, 시공관련 사항 등 현재 시점에서 알 수 없거나 확정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 향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어 ‘소송, 지구계획 변경, 문화재 발굴 및 사업 지연 등 기타 불가피한 사유로 사전청약 모집 단지가 사업취소 또는 지연이 될 수 있다’라는 내용도 담겼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정부의 공급 정책 중 핵심으로 꼽히는 사전청약을 무책임하게 운영하며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입주자 모집 공고문만 보면 사전청약에 당첨된 입주예정자는 사업지구 및 단지와 관련해 어떠한 이의 제기를 할 수 없고, 사업이 취소되거나 지연이 되더라도 예비입주자가 고스란히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해석한다.
사전청약은 본청약 1~2년 전에 주택을 조기 공급하는 제도이다. 사전청약 당첨자는 본청약 입주자모집공고 때 최종입주자로 선정되기 전에는 언제든지 사전청약 당첨자의 지위를 포기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시행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공급 정책 성과를 위해, 사전청약을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물"이라며 "지구·단지 별로 향후 사업 추진에 있어서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입주예정자는 이의 제기도 할 수 없고, 사업이 취소되거나 지연돼 입주를 못하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결국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은 입주예정자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사전청약 공급정책인데 계약자만 애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 LH,"사전청약 특성상 변수 많은 점 이해를"
이와 관련해 LH는 "사전청약은 사업지구별 지구계획 승인 이후 공급하고 있으나, 개발사업 특성상 본청약까지 지구계획 변경, 문화재 발굴 등 사전청약 시점에 예측 불가한 여건 변경 등이 수반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사전청약 신청자들에게 성실한 안내를 위해 사전청약 입주자 모집공고문을 통해 안내하는 것이며 사전청약 신청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단계별 일정관리 등을 면밀히 해 사업지구별 사전청약이 본 청약까지 차질없이 추진되도록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이는 현재 사전청약에서는 사업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이 없기 때문에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LH는 본청약 때는 미확정 돼 있는 사업 내용을 기재할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LH 관계자는 "현재 사전청약 공고에서 미확정돼 있는 사업지구 및 단지의 주변 생활여건, 시공관련 사항 등은 본청약 공고에 기재될 예정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향후 사업이 취소되거나 지연이 될 경우 입주예정자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없다라는 점이다.
LH는 "사전청약 지구에 대한 사업취소 또는 지연과 관련해 보상 근거 규정은 없다"며 "사전청약에 당첨돼도 청약통장의 효력이 상실되거나, 사전청약 당첨자 지위 포기 시 민간 사전청약과 본 청약자격이 제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는 사전청약의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사전청약은 무주택 실수요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합리적인 분양가로 조기에 주택을 공급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사업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택 공급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급 불확실성이 크다. 사전청약이 공급될 신도시는 토지보상 문제 등으로 사업 지연이 우려되고 있다. 이는 사전청약 공급에 있어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정부가 공급확대 측면에서 사전청약 제도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이며 사업의 불확실성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현재 입주시기나 모든 것들이 유동적이라, 향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입주예정자들 입장에서는 피해보상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결국 사전청약 입주예정자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다"며 "정부가 이 부분에서 현재로서 방안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son90@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