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에너지정책, 낯선 구호보다 현실성 우선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2.21 10:00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에교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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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에교협 공동대표


대선 후보 토론회에 느닷없이 ‘알이백·택소노미·블루수소’가 등장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용어다.

물론 알이백은 ‘재생 에너지 100%’를 뜻하는 ‘RE100’이다. 산업부에서는 ‘리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알이백을 ‘R200’이나 ‘알(卵)이 100’으로 알아들은 시청자도 있었다고 한다. ‘5G’를 ‘오지’로 읽은 대선 후보 때문에 웃었던 지난 대선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금융 지원을 추구하는 ‘녹색분류체계’인 유럽연합의 ‘택소노미’가 원전에 초점이 맞혀져 있는 것도 아니고, 수소가 그레이·블루·핑크·그린의 화려하게 색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RE100’은 영국의 ‘더 클라이밋 그룹’(TCG)이라는 비영리 민간단체가 2014년에 대기업을 상대로 시작한 캠페인이다. 연간 100GWh의 전력을 소비하는 기업이 스스로 정한 기한 내에 100% 재생 에너지 사용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하도록 요구한다. 현재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인텔 등 351개 기업이 RE100의 회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 중에는 골드 회원의 자격을 얻은 고려아연·SK하이닉스·SK텔레콤을 비롯해서 12개 기업이 RE100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환경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RE100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기업 활동을 전기에 의존하는 정보·통신·금융·서비스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냉난방과 수송 등의 제한된 영역의 에너지만 전기화하면 RE100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화석연료를 훨씬 더 비싼 전기로 대체하는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만 한다.

국가 차원에서의 RE100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우선 국민생활과 산업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모두 전기로 대체해야만 한다. 전력화의 비율이 20% 수준인 우리의 경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100GW 규모의 발전 설비를 5배로 늘여야 하고, 송배전에 필요한 기반 시설도 확대해야만 한다. 전기화가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인 제철·시멘트·정유 산업은 통째로 포기해야만 한다.

중위도 지역에 위치한 좁은 반도 지형을 가진 우리가 충분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재생 에너지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경우에 지열·조력·조류·파력은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다. 무턱대고 남의 흉내를 낼 일이 절대 아니다. 2017년의 재앙적인 포항지진은 억지로 건설했던 소규모 지열발전소에 의해서 유발된 인재(人災)였다. 시화호의 극심했던 오염 해소를 위해 건설했던 세계 최대 규모의 시화호 조력발전소의 환경성·경제성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2009년 울돌목에 설치했던 세계 최대 규모의 조류 발전소는 경제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그마저도 선박과의 충돌 사고로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지난 5년 동안 정부가 무작정 밀어붙인 태양광·풍력의 문제도 심각하다. 국토가 좁은 우리에게 태양광·풍력 설비를 설치할 부지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극복하는 일도 간단하지 않다.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넘는 비용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과연 배터리로 작동하는 에너지 저장장치(ESS)만으로 국가 규모의 송전망을 가동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확인해본 적이 없다.

기술 개발만으로 에너지의 전환이 가능해지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재생 에너지의 수급에 필요한 기반 시설을 갖추기까지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19세기 말에 등장하기 시작한 전기의 소비를 일반화시키는 데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1887년에 고종 황제가 경복궁에 석탄 발전기를 처음 설치했던 우리가 본격적으로 농어촌에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한 것은 한 세기가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였다.

에너지 정책은 국가의 명운과 국민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과제다. 언론이나 인터넷에 오르내리는 선동적인 낯선 구호만으로 객기를 부릴 일이 절대 아니다. 탈핵·탈원전·에너지전환·그린뉴딜 사이를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에는 비현실적인 탄소중립에 도달해버린 지난 5년 동안의 어지러웠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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