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라 금융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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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의 뜻’을 두고 여야의 주도권 경쟁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한 것을 두고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불리는 검찰개혁을 놓고는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반대쪽도 만만치 않다. 대선 직후 여야는 윤 당선인이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공약한 것을 두고 하루가 다르게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윤 당선인의 집무실 위치는 당초 광화문에서 용산 국방부청사로 급하게 변경됐다.
국민(國民)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쓰는 듯 하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국민의 뜻"이라고 강조하고, 상대방을 비난할 때는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다"고 맞받아치는 식이다. 하루가 다르게 핏대를 높이며 싸우는 여야를 보면 "국민의 뜻"의 본 의미는 "우리 정당의 뜻"이고, "국민의 눈높이"는 "우리 정당의 눈높이"가 아닐지 의구심이 든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검수완박이 정말 국민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집무실 이전이 국가와 국민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것이 수순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국민의 눈높이’라는 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허물은 덮으려고 급급한 이들이 재계의 허물, 최고경영자(CEO)의 허물은 한 마음이 되어 득달같이 달려든다. 물론 기업들이 잘못한 것은 따끔하게 야단치고, 이를 바로 잡는 것도 정치권의 역할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때는 기업들을 ‘훈육’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비난’의 대상으로 낙인찍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 정부는 달라져야 한다. 기업들을 철없는 어린아이로 바라보지 말고, 우리나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응원을 불어넣어야 할 국가대표로 봐야 한다. 정부 역시 엄격한 심판이라는 하나의 역할에서 벗어나 ‘카멜레온’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 때로는 기업들의 잘못을 꾸짖는 엄격한 심판으로, 때로는 기업들의 페이스 조절을 돕는 ‘페이스 메이커’로, 때로는 기업들의 불편한 점을 앞장서서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
현 정부 아래 기업들은 언제나 죄인처럼 숨기 바빴다. 금융사를 비롯한 기업들은 정부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이를 어기면 안 된다는 무언의 으름장이 기업들을 위축시켰다. 그러나 무언의 으름장은 그들이 그렇게 외치는 ‘국민의 뜻’이 아니다. 스타트업은 육성하고, 대기업들은 상생과 협력에 힘써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글로벌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다. 새 정부는 국민이라는 단어 뒤에 숨고, 국민으로 상대방을 헐뜯기 전에 정말 국민의 의중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기업들과의 관계에서도 권위적인 ‘심판’의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두 달 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정부, 국민, 정치권 모두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하던 그 간절한 마음을 기억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