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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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무엇이든 국가안보의 대상이 된다. 볼퍼스(Arnold Wolfers)는 국가안보라는 것이 ‘애매한 상징’이라면서도, 안보란 ‘획득한 가치’를 보호하는 것, 혹은 그 획득한 가치에 대한 ‘위협의 부재’를 측정한 정도라고 일찍이 그 개념을 정리한 바 있다. 탈냉전시대에는 웨버(Ole Wæver) 등으로 대표되는 코펜하겐 학파에 의해 ‘안보화(securitization)’라는 용어가 부상하기도 하였다.
요컨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심심치 않게 듣게 된 ‘경제안보’, ‘에너지안보’, ‘사이버안보’, ‘인간안보’, ‘생태안보’ 등의 용어들은 위와 같은 국제정치 이론가들의 개념화 작업을 거쳐 탄생된 것이다. 지금은 국가가 지켜내야 하는 ‘획득한 가치’의 범주 내에 군사안보 외의 여러 다른 사안들을 담아야 하는 시대이다.
한국은 북한과의 여전한 대치상황 속에서 군사안보적 차원에서의 위협에 굳건하게 대응해야 하면서도, 세계 8위의 무역대국으로서 경제안보에도 예민하게 대처해야만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이른바 ‘경중안미(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라는 현실 속에서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추구하려 해 왔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동맹이자 여전히 지구 상의 최강대국인 미국이 군사안보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전략물품의 글로벌 공급망, 그리고 에너지 공급망의 재편에도 속도를 내려 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런 경제의 안보화와 공급망 재편에 오히려 더욱 강력한 명분을 제공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란 운명공동체의 사활을 걸고 지켜내야 하는 전략 물품 중 하나로 반도체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반도체는 탄소중립,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패러다임 대전환의 시기에 ‘산업의 쌀’이라는 관용적 표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전기화가,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디지털화가 핵심인데 두 가지 모두 반도체가 받쳐주지 않으면 허공에 떠 있는 구호에 그치게 되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 대만 등 주요 생산국들의 경쟁이 그 치열함을 더해가는 것도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함이다.
삼성과 SK 같은 기업들이 아직까지는 선전하고 있지만, 이 역시 메모리반도체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은 여전히 미약하다. 한국 기업들의 전략이 양적 팽창이었다 보니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투자비용이 높고 고도의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그 존재감을 키우지 못했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전체를 두고 보면 시스템 시장이 메모리 시장의 두 배나 된다. 그리고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최강자들은 여전히 미국의 기업들이다.
미국이 경제안보의 기치를 내걸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는 때에, 반도체와 같은 전략 물품의 미래를 기업에게만 맡겨 둘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테슬라도, 중국의 알리바바도 그 뒤에 자국의 정치권은 물론 여러 행위자들의 뒷받침 없이 지금의 위치에 이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삼성이 망해도 대한민국은 온전할지, 안할지를 놓고 벌이는 논쟁은 경제안보의 시대를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대한민국호(號)의 탑승자들에게는 매우 불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이 더욱 강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스스로 투명한 경영과 건설적인 투자에 노력함은 물론, 대한민국의 경제안보를 위해 정부, 노조, 소비자, 기술전문가, 연구인력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지고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