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서 기업과의 연대·협력 통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회복'을 최우선 순위
전임 정부들이 제시했던 '747 공약·일자리 중심 창조경제' 등의 구체내용은 없어
구호성·보랏빛 목표 빠진 배경 놓고 “거품 뺐다” “정책방향이 흐리다” 평가 무성
"상황 엄중, 스태그플레이션 등 현안 산적...구체적 대책 마련에 시간 필요"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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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구체적인 경제 비전이나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은 것을 두고 그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들이 제기된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경제적 상황이 엄중하고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저성장) 공포까지 커지고 있어서 새 정부가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둘러 목표를 제시하기 보다 시간을 두고 발표하기 위해 이번엔 전략적으로 뺐다는 해석이다.
일각에선 국정 목표를 제시하지 않아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각 부처가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 운동 과정에서, 혹은 취임식에서 국민들에게 재임 기간 경제 목표를 한 단어로 축약해 제시하곤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747 공약(7% 경제성장률,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을 앞세웠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문재인 전 대통령은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러한 경제운영 방안들은 취임 초기 국민들에게 경제 성장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보랏빛”, “개념까지 모호한 ‘실현 불가능한 구호성 목표” 등의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에 비해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지난 10일 취임식에서 취임사의 화두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회복’으로 정하면서 아무런 경제구호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국민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는 ‘거품’을 제거했다’는 긍정론이 제기되지만 일각에선 이것만으로 현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윤 대통령은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해결책으로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해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고도 했다. 또 “자유와 창의를 존중해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이뤄낸 많은 기업들과 협력하고 연대해야만 한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이 발언들 어디에서도 구체적인 정책 방향성을 가늠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경제성장은 한 단계씩 떨어졌다”며 “이를 과학 기술로 끌어올리겠다는 건데, 이를 구체화한 건 아직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유나 시장경제에 대한 강조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나, 경제정책 관련해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건 아쉽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1기 내각 인선이 주로 정통 관료 출신들로 포진된 만큼 대통령의 경제 철학을 한 단어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이 슬로건을 제시하면 각 부처와 담당자들 사이에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구호로 내걸었던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이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윤 대통령이) 어떠한 형태로 국가 경제를 이끌겠다거나 중점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발언이 없기 때문에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은 상당히 있다고 봐야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사태에다 물가 상승,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등 정치·경제적 난제들이 선적해 있는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정부가 뚜렷한 비전이나 슬로건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현재 우리 경제가 장기적 경기 침체를 겪고있는 일본과 2009년 이후 장기 호황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의 경계선상에 있다는 점도 앞을 가늠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때문에 윤 대통령도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 경제의 상황은 장기침체기 초입이었던 1989년도의 일본과 상당히 비슷하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가동할 수 있는 방안은 재정, 금융, 구조조정 등 세 가지인데 미국이 주로 가동한 구조조정의 경우 대규모 실업을 양산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새 정부는 산업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재들을 어떻게 교육시키고, 어떤 방식으로 재배치할 것인지 등을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