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 증가에도 희망가격 괴리 커…거래량 급감
서울 아파트 매물 6만건 중 거래 900건도 안 돼
매도자 "더 낮게는 무리" vs. 매수 "시장 하락세"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의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김기령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 김기령 기자] #1 서울 구로구의 한 20년 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A씨는 종부세 부담에 집을 팔기로 결정했다. A씨는 해당 아파트 시세에 맞춰 11억5000만원에 매물을 내놨지만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답답하다. 설상가상 같은 단지 내에서 10억원에 급매로 거래됐다는 소식에 호가를 낮춰야 하나 고민 중이다. A씨는 "호가를 낮추면 매도는 할 수 있겠지만 기다리면 다시 집값이 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2 서울 영등포구의 구축 아파트에서 전세로 2년째 거주 중인 신혼부부 B씨는 전세 연장이냐 매수냐를 고민하느라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매수하려는 단지의 직전 실거래가는 9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000만원 정도 시세가 낮아졌고 B씨는 8억원대 매물이 나오면 매수할 생각이다. B씨는 "요즘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라서 쉽게 매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있는 매물이 모두 직전 실거래가를 넘는 9억원대"라며 "문의해보니 집주인들도 호가를 낮출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당장 매수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매수자와 집주인간 힘겨루기 장세가 펼쳐지고 있다. 세금 부담 등으로 시장에 나오는 매물은 늘고 있지만 집값 하락을 기대하는 매수자들이 매수를 망설이면서 거래량이 급감하고 있다.
30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33.6%가 증가했다. 지난해 5월 4만5676건이었던 매물 건수는 올해 들어 6만1024건으로 늘었다.
서울 내 자치구 중에서는 구로구 아파트 매매 매물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이날 기준 구로구 아파트 매물은 총 2782건으로 지난해 1707건 대비 62.9%가 증가했다. 강북·도봉·양천·노원구 역시 매물 증감율이 50%에 달한다.
매물이 늘어나는 이유는 다주택자들이 세금 부담으로 ‘똘똘한 한 채’ 전략을 펼치면서 상대적으로 하급지인 주택을 매도하고 있어서다. 정부에서 지난 10일 정부 출범과 동시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적 유예 정책을 시행하면서 매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외에도 상속세 재원 마련, 학군 수요에 따른 갈아타기 등도 매물 증가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거래량은 매물 증가량을 따라잡지 못하는 양상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날 기준 이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885건으로 지난해 5월(4901건)의 약 18% 수준에 그쳤다. 해당 자료는 실거래 신고자료를 계약일 기준으로 집계하기 때문에 아직 신고되지 않은 건수가 더 있을 수 있지만 지난해 매매건수만큼 증가하진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아파트 매물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구로구의 경우 이달 매매건수는 47건으로 지난해 278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데는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강화 등으로 수요자들의 매수 여력은 떨어지고 있는데 집값은 수요자들의 기대만큼 낮아지지 않아서다. 매도자와 매수자가 생각하는 매매가격의 괴리가 큰 것이다.
구로구 신도림동 내 C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매물은 현저히 많이 늘었지만 매수 문의가 거의 없다 보니 거래가 아예 안 되는 형국"이라며 "집주인들은 가격을 내리지 않고 매수인들은 저렴하게 사고 싶으니까 서로 희망하는 가격의 차이를 메울 수가 없어서 거래가 안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가격을 낮춘 급매물조차도 거래가 어렵다는 것이다.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급매물은 보통 많게는 1억원 가량 가격을 낮추는데 이 가격에도 매수자는 거의 없다"며 "워낙 집값이 높기 때문에 매수자들이 취득세 등을 고려해 호가가 더 낮아지기를 기다리면서 거래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주거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지역·주택가액별로 60~70%로 적용되던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를 80%까지로 완화하기로 했다. 또한 청년·신혼부부 대상으로 초장기 모기지 출시 만기 확대를 통해 대출총액을 늘린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규제 완화에도 거래 활성화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집을 살 사람들은 이미 2~3년 사이에 대부분 매수했기 때문에 신규 매수자가 없고 매물이 나오더라도 살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결국 남는 건 무주택 청년층인데 금리 인상, 대출 규제 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신규 매수자가 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LTV를 완화하더라도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부담과 주택가격 정체로 인해 지난해 만큼의 주택 구입열풍이 재현되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다만 오는 7월 갱신계약 종료로 인해 국지적으로 전세가격이 불안한 지역이나 아파트 입주량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 내집마련 수요가 일부 발현될 가능성은 열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giryeong@ekn.kr